서울교육청 시민ㆍ학생 청원게시판 ‘주먹구구식’ 운영 눈총


- 조 교육감 1호 답변, “대성고 학생들이 청원제도 의미 확대 해석한 것”
- 시민, 학생 인증 없어 답변 기준 낮은 ‘학생 게시판’ 악용 우려

[헤럴드경제=박도제 기자] 서울교육청의 시민ㆍ학생 청원게시판이 뚜렷한 기준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청원 대상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것은 물론 청원인에 대한 구분 기준 역시 애매해 혼란이 예상된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지난 3일 서울 대성고 학생들이 제기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관련 청원에 대해 답변을 내놨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모델로 삼아 지난달 10일 시민학생 청원게시판을 개설한 이후 첫번째 답변이다.

‘교육감님은 왜 학생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사고를 폐지하십니까?’라는 청원에 대한 것이었는데, 조 교육감은 답변에 앞서 이번 내용이 청원 대상이 되지 않지만, 학생들과 소통의 기회로 삼고자 답변을 한다는 점을 밝혔다.

조 교육감은 “원래 청원제도는 시민들의 정책제안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만든 것”이라며, “그러나 학생들은 이 청원제도를 관련 법령에 따라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하고 있는 교육행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계기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학생들이 청원제도 의미를 확대 해석한 것으로 생각이 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하지만 조 교육감의 이 같은 설명은 당초 서울교육청이 시민학생 청원게시판 개설에 맞춰 설명한 내용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서울교육청은 청원 게시판의 개설을 알리면서 “서울교육정책 추진에 서울시민뿐 아니라 학생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 위해 ‘학생 청원게시판’을 별도로 구성해 서울학생이면 누구나 쉽고 빠르게 청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자사고인 대성고의 일반고 전환이 서울교육청의 정책과 관련된 것이고, 이에 대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 제시는 청원 게시판의 운영 취지에 부합함에도 불구하고 조 교육감은 “청원으로 수용하기 어려워 많은 고민했다”는 식으로 청원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교육시민단체인 국가교육국민감시단은 조 교육감의 1호 답변과 관련해 “한마디로 실망이다. 논점을 비켜간 교육감의 답변에 학생들이 수긍할지 의문이다”는 평가를 내놨다. 나아가 “조 교육감은 자사고 폐지 결정은 번복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학생들을 설득하기 위한 만남을 제안했다”며, “한 마디로 멋스러운 진보로 위장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며, 학생들의 진정어린 청원에 한술 더 떠서 찬물을 껴얹은 셈이다”고 혹평했다.

청원 대상에 대한 기준과 함께 청원인에 대한 기준 역시 명확하지 않아 향후 운영에 있어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서울교육청은 청원인을 시민과 학생으로 분리하고 있지만, 실명인증 등이 되지 않아 청원인이 실제 학생인지 여부를 알기 어렵다. 게다가 청원 답변 기준은 시민 청원의 경우 1만명 동의로 하고 있으며, 학생 청원의 경우 1000명을 답변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때문에 서울교육청의 빠른 답변이 얻기 위해 학생이 아닌 시민이 학생 청원게시판에 청원을 제기하더라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실제로 청원 게시판에는 청원인에 대한 명확한 인증을 요구하는 내용도 있다. 시민 게시판 1호 청원으로 실명 인증없이 글을 올리게 되면 사실 여부를 떠나 누군가를 비방하는 글을 올릴 수 있고, 그로 인해 피해보는 사람에 대한 명예회복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지적을 담고 있다.

청원 대상과 청원인에 대한 적격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서 실제로 시민학생 청원 게시판에는 서울 교육 정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청원이 다수 올라와 있다. 학생 게시판에는 태풍으로 휴업을 요구하는 청원이, 시민 게시판에는 고척동 교정시설 부지 개발을 촉구하는 청원이 다수 확인된다.

pdj2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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