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연의 외교탐구] 특사단, ‘전달자’ 아닌 ‘중재자’의 레토릭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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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으로서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비핵화 의지를 일부 미국과 한국의 보수층에 답답함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북미관계 개선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2021년 1월)에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이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이번 방북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2021년 1월)에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지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공식적으로 비핵화 시점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특사를 통해 북미 합의사안이어야 할 비핵화 및 체제보장에 대한 진전된 협의내용이 공개되기는 어렵다. 특사단은 정상의 의지를 전달하는 메신저의 역할이고, 한 정권의 정상이 협상테이블에 올랐으면 이에 상응하는 정상이 올아와야 하는 게 외교의 세계이다. 따라서 중재외교의 ‘하이라이트’를 기대한다면 특사파견 결과가 아닌 남북ㆍ한미 또는 남북미 정상회담을 주시해야 한다.양무진 북한대학교 대학원 교수는 “대북 특사단은 대통령의 의지를 전달하는 전달자들이지, 협상단이 아니다”며 “정상과 정상 간 간접소통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고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제 몫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특사단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에서 ‘중재외교’를 펼치고 있는 문 대통령의 역할을 강조하고자 했다면 미국이 제기해온 ‘디테일’들에 대한 김 위원장의 입장을 정리해줬어야 한다. 설득의 미학은 비단 직접 커뮤니케이션뿐만 아니라 간접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특히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국민외교와 공공외교 영역에서 어떤 레토릭(수사)를 사용했느냐에 따라 현안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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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취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선의의 조치가 아닌가’

‘북한은 관영매체든 어떠한 창구든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실험장을 폐기했다고 발표한 적이 없는데 검증 없고 발표 없고, 공식 인정 없는 조치를 우리 정부는 비핵화 조치로 인정하는가’

‘종전선언에 상응하는 북한의 보다 적극적인 비핵화 조치들은 국제규범에 근거한 것인가’

‘국제규범이 아닌 자의적 해석에 따른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인정하고 종전선언을 하면 결과적으로 군축회담이 되는 것 아닌가,다른 국가들의 핵 확산을 촉발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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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핵문제를 전담하는 관료들을 비롯해 학자, 기자 등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져왔다. 하지만 정 실장이 공개한 김 위원장의 ‘호소’는 위의 질문들에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미국이 상응하는 체제보장 조치를 해준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에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할 뿐이었다.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와 동창리 미사일엔진 시험장 폐기를 언급했지만, 미국이 지적해온 ‘검증’에 대한 답은 여전히 주지 않았다. 더구나 현재 동창리 미사일엔진 시험장의 해체여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안이다.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의 해체 가능성을 제기한 건 그동안 북한의 핵ㆍ미사일 시험장을 민간 인공위성을 통해 모니터링해온 미국의 언론이었다.

북미교착의 가장 큰 원인이 된 질문들 중 하나가 해결되지 않은 채 “김 위원장이 체제보장을 전제로한 비핵화 의사를 재확인했다”고 주장하면 이를 수용할 사람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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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문 대통령의 대미특사로 정 실장이 방미한다면, 정 실장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국제규범에 따른 비핵화 조치를 취하면 미국은 체제보장을 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미국은 리비아 정권이 시민혁명에 직면했을 때 체제를 보장하지 못했다. 북한에 제시할 체제보장 수단이 있는가’

‘한미 연합 군사훈련 이외에 미국이 제시할 수 있는 동시행동 조치가 존재하는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신뢰할 수 있는가’

‘트럼프 행정부 이후에도 미국은 북한의 체제보장을 확약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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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질문들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알아야 북한도 약속한 비핵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또, 국내 보수층도 시각을 달리할 여지와 반박할 수 없는 명분이 생긴다. 비록 특사 단계에서 오고간 메시지라 공개범위에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북미가 각각 제기해온 의문 중 단 하나에 대한 답이라도 공개한다면 북미협상판을 바라보는 전 세계의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국면에 빠진 것은 미국이 단순히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불신해서가 아니다. 아울러 북한도 미국을단순히 불신하지 않는다. 북미교착은 비핵화와 체제보장 방법론을 둘러싼 ‘디테일의 악마’에서 촉발됐다.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 ‘동시행동원칙’에서 ‘동시’의 물리적 가능성과 상응행동의 판단 기준, 국제규범에 따른 비핵화 절차에 대한 동의여부 등을 두고 북미간 인식과 전제는 여전히 다르다.

당장 종전선언과 북한의 비핵화 초기조치에 대한 북미간 이견도 조율되지 않았다. 방법론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시간표는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다. 지난달 예정됐던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의 개소식조차도 예정된 일정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북미 대화를 중재한 순간부터 우려한 ‘디테일의 악마’들이다. 악마는 여전히 살아있다. 악마를 죽이려면 단순 전달자가 아닌 중재자로서의 레토릭이 필요하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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