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최종현과 반도체 그리고 하이닉스

지금은 그룹의 효자이지만 지난 2011년 SK가 하이닉스를 인수한다고 했을때 두가지가 의아했다.

우선 문닫는게 시간문제인 회사를 3조3000억원이나 되는 거금을 주고 왜 사느냐는 거였다. 당시 하이닉스는 누적결손만 10조원에 달하고 8000명을 구조조정하고도 모자라 무급순환휴직을 하는 애물단지 회사였다.

두번째 궁금증은 최태원 회장이 “SK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오랜 꿈이 실현됐다”고 말했을 때다. 석유화학통신 주력의 SK와 반도체는 도무지 생소한 조합이다. 그런데 오랜 꿈이었다니.

궁금함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그건 최종현 회장의 ‘꿈’이었던 것이다. 하이닉스 인수는 유훈사업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요즘에야 재조명됐지만 선대 최 회장은 미래산업의 중심이 반도체라는 걸 누구보다도 빨리 직감하고 있었다.

그가 선경반도체를 설립한 것이 1978년이다. 이병철 회장이 일본의 반도체 전문가들을 만나기 시작한게 그 즈음이고 대규모 반도체투자를 공표한게 83년 도쿄선언이다. 최 회장이 반도체에 얼마나 선지적이었는지 알만한 대목이다.

선경반도체는 오일쇼크로 경영환경이 불안해진데다 유공인수를 염두에 둔 상황 때문에 제대로 투자도 못해보고 문을 닫는다. 사실 당시의 반도체 수요는 대부분 전자제품이었다. 도시바 등 주요 생산 업체가 대부분 전자계열인 것도 이때문이다. 74년 삼성전자의 한국반도체 인수도 일본에 수급을 전적으로 의존했던 TV와 VCR용 전자칩 생산을 위한 것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인수사실을 몰랐다는게 정설이다.

어쨌거나 섬유 직물 석유화학의 일관생산체제 구축에 매달리던 당시 선경과 반도체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최종현 회장의 반도체 관심은 식을 줄 몰랐다. 80년 유공 인수 직후 한 직원이 “회장님! 다음 신규사업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곧바로 ‘반도체와 이동통신’이라고 답하더라는게 손관호 전 SK건설 부회장의 회고다.

치킨게임이 극에 달했던 1990년대 중반 반도체 시장은 누가봐도 혼돈의 시대였다. 선경반도체를 접은지 20년 가까이 흘렀는데도 최 회장은 줄곳 반도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보통신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고 얼른 감도 안 오겠지만, 21세기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진전될 것이다. 이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다.” 1995년 국가경쟁력강화 민간위원회 12차 회의 중에 그가 한 얘기다.

반도체 경험이 전혀 없고,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내부 경영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태원 회장이 하이닉스 인수를 강행한데는 2년간의 철저한 분석이 주효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도체 인식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오늘날 4차 산업 혁명은 최종현 회장이 예견한대로 진행되고 있다. 정보통신의 세상은 이제 상상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감을 잡을 수 있는 곳이 되어간다. 사물인터넷과 AI로 인해 이제 반도체는 모든 곳에 장착된다. 이른바 컨슈머 메모리다. 그리고 그것들은 무선통신으로 연결된다. SK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최종현 회장은 오래전에 그걸 알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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