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광장] 전환기 인구정책에 노인 일자리가 필요한 이유

“너희 아빠는 나이 들면서 왜 저리 고집만 세지는지…”

요즘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푸념이다. 30년 된 낡은 단독주택을 관리하는 것이 힘들어지자 어머니는 최근 제법 오른 주택가격 소식을 듣고 집을 팔 생각을 하신 모양이다.

이 참에 낡은 집을 팔고 새 집에서 편안하게 살아보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운을 떼어 보지만,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서울의 어느 가정집에서는 오늘도 노부부의 말다툼이 격렬하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사람이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초기에 제시된 기준에 영향 받아 쉽게 수정하지 않는 현상을 ‘정박 효과’(Anchoring effect) 또는‘닻내림 효과’라고 한다. 이는 닻을 내린 배가 움직이는 범위가 제한적인 것처럼, 처음 접한 정보가 기준점으로 작용하여 의사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왜곡현상을 말한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위험에 대처하는 의사결정자의 태도가 보수적일수록 정박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또한 유사한 의사결정이 반복될수록 과거의 의사결정에 의존하여 더욱 무거운 닻을 내리곤 한다. 나이가 들거나 정보에 고립되어 있을수록 이렇게 될 확률은 더 높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세지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노인들의 고집만큼이나, 우리 사회가 노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정박효과가 심각하다. 생산가능인구와 노인인구를 구분하는 경계점은 연령 65세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UN, OECD, EU 등 국제기구들도 노인연령을 65세 이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노인 기준연령의 정의는 1889년 독일의‘노령연금법’에서 차용한 것이다. 당시 독일인의 평균수명은 50세 전후에 불과했다. 무려 130년 전에 세워진 기준을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할 때 이 기준이 과연 합리적이라 할 수 있을까.

한국은 지금 인구구조 변화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1970년 18.5세에 그쳤던 한국 인구의 중위연령(전 국민을 연령순으로 나열할 때 정중앙에 위치하는 사람의 연령)이 2018년 42.6세로 늘어난데 이어 2060년에는 58.9세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노인실태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조사에 따르면 노인들이 생각하는 노인 기준연령은 평균 71.4세다. 전체 응답자의 59.4%가 노인 기준연령을 ‘70~74세’라고 응답했고, ‘69세 이하’라는 응답은 13.8%에 그쳤다. 사회적 기준과 실질적 기준에 큰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노인에 대해 우리가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문제 중 하나는 그들의 경제활동과 관련되어 있다. 바로 일자리 문제다. 보호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노인들이 여전히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8.8%가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미 은퇴한 그들에게 사회활동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노인들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인지할 경우 노인 부양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된다. 복지예산 확보를 위해 가중된 조세부담은 젊은 세대에게 전가되어 향후 심각한 세대갈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고령화 현상의 사회문제를 먼저 경험한 일본은 2013년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을 통해 60세인 정년을 사실상 65세로 연장했다. 뿐만 아니라 66세 이상 고령인구를 고용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재정부담 전가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환기 인구정책에서‘노인 일자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2018년 한국사회에서 ‘노인’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기준은 어디쯤에 닻을 내려버린 것일까. 이제 더 이상 한국의 인구구조에서 노인을 빼 놓고는 설명할 수 없고, 그들 역시 사회적 기여를 원하고 있다. 일을 하고자 하는 노인들의 일자리를 고민하는 것, 이것이 전환기 인구 및 노인정책의 시작점이 아닐까.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