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물가 비상①-르포]“벼는 쓰러지고, 고추ㆍ배추는 썩고…멀쩡한 농작물 없어” 속타는 농심

[사진=경기 파주의 한 논의 모습. 지난달 400㎜ 이상 내린 폭우에 대부분 논이 힘없이 쓰러졌다. 최근까지 복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복구되지 않은 곳도 많아 농민들은 추석을 앞두고 한숨을 짓고 있다]

-“한순간에 1년 농사 물거품” 허탈한 농민들
-폭염에 폭우까지…농가 피해 아직도 복구 중
-“농산물 가격 올라도 팔 물량 없어” 하소연

[헤럴드경제(파주)=유오상 기자] “모내기 때부터 열심히 가꾼 논인데, 하루아침에 쓸려나가니 다시 복구할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논 뿐만 아니라 밭도 피해를 입었는데, 치솟는 수매가가 야속하기만 하죠.”

경기 파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태원(68) 씨는 한해 농사가 결실을 보는 추석을 앞두고 고민이 깊다. 최근 쏟아진 폭우에 논이 물에 잠겨 피해가 심한데다 고추 농사도 예년만 못하기 때문이다. 소출이 줄면서 가격은 치솟고 있지만, 쑥대밭이 된 논을 바라보는 김 씨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김 씨는 “공무원들이 나와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이미 망한 농사를 어떻게 복구할 수 있겠느냐”며 “썩어버린 농작물을 보면 지금도 울화통이 터진다”고 했다.

실제로 찾아가본 논의 상태는 멀리서도 확연히 보였다. 가지런히 서 있어야 할 벼는 모두 제각기 방향으로 쓰러졌다. 이미 상당수 벼는 뿌리 부분부터 노랗게 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논 전체 벼가 쓰러지다 보니 복구할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벼가 다 누워버렸으니 한 해 농사는 끝났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8일부터 경기 파주 일대에는 이틀 동안 400㎜가 넘는 물 폭탄이 쏟아졌다. 새벽부터 내린 폭우에 호우경보가 발령됐지만, 대응은 속수무책이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날 폭우로 전국에서 농작물 635.7ha가 침수되고 농경지 3.9ha가 파묻혔다.

[사진=지난달 폭우에 무너진 논둑을 방수포를 이용해 임시조치한 모습]

김 씨의 고추밭 역시 대부분 물에 잠겼다. 뒤늦게 복구 작업을 하려고 했지만, 500평에 달하는 밭에 성한 작물은 거의 없었다. 밭 옆에 만들어뒀던 비닐하우스 10개 동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출하를 앞두고 있던 열무는 노랗게 썩어 아예 올해 농사를 포기하고 밭을 갈아엎었다.

폭우가 내린 지 2주 가까이 지났지만, 복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논농사를 짓는 권민국(59) 씨는 줄어든 소출량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권 씨는 “10마지기 논이 하루아침에 물에 잠겨 1년 농사를 모두 망쳤다”며 “한창 여름에는 물 대느라 고생했는데, 추석을 한 달도 남기지 않고 물난리를 겪을 줄이야…”라며 황망한 모습이었다.

권 씨는 최근까지 무너진 둑을 다시 쌓느라 고생을 했다. 직접 굴삭기를 빌려와 무너진 둑을 다시 쌓아올리고 임시조치로 방수포를 덮었다. 제대로 복구를 하려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그는 “무너진 농로를 다시 정비하는 것만 해도 많은 돈을 썼다”며 “소출량은 줄어드는데 복구비로 적자만 나게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추석과 김장철로 값이 오르고 있는 배추도 큰 피해를 입었다. 이모(52) 씨의 3300㎡ 배추밭 중 멀쩡한 배추는 몇 포기 되지 않았다. 지난 폭우 내내 밭에 머물며 양수기를 돌렸지만, 쏟아지는 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 씨는 “지금 소매상에서는 배추 3통에 3~4만원까지 부르고 있다”며 “다 상해버린 배추밭만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폭우 피해에 농민들도 울상이지만, 소비자도 부쩍 오른 채소 가격에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사이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으로 채소 가격은 일주일 새 4.1% 올랐다. 조사대상 21개 품목 가운데 15개 가격이 모두 올랐다. 특히 배추는 잇따른 폭우 피해에 10% 안팎까지 값이 껑충 뛰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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