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시장·소비자라는 근본 이유를 잃어버린 규제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정부나 공권력이 개별 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18세기 이후 발생한 미국과 유럽의 많은 역사적 사건들도 사유재산 보호를 위한 투쟁의 결과였다. 우리나라 역시 헌법에 이를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마냥 손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강력하게 특정 기업을 규제하고 심지어 해체하기도 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대표 국가인 미국에서도 최근 100여 년 동안 몇 차례 정부가 특정 기업 경영뿐 아니라 지배구조까지 흔든 경우가 있었다. 1911년 스탠더드 오일은 정부에 의해 30개로 분할됐다. 또 아메리칸 타바코는 16개 회사로 분리됐고, 비교적 최근인 1984년에는 AT&T가 8개 독립 회사로 쪼개졌다.

이유는 바로 소비자 보호였다.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 석유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송유관까지 장악하며 경쟁 기업의 진입을 가로막았다. 비싼 석유값에 대한 소비자와 다른 기업들의 불만은 당연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셔먼 반트러스트법을 새로 만들고 법무부 내 독점금지국이라는 기구까지 창설했다. 우리 공정거래위원회의 원조다.

16개로 쪼개진 아메리칸 타바코도 한때 미국 담배시장의 95%를 장악했다. AT&T 역시 미 전역의 장단거리 전화 시장을 사실상 나홀로 쥐락펴락했다. 정부의 기업 규제는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역시 과거 수많은 개별 기업에 대한 다양한 규제가 있었다. 특정 회사를 강제 매각시키거나, 심지어 그룹 전체가 공중분해되기도 했다. 다만 훗날 시간이 흘러 ‘불법’이 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정부의 기업 규제에 필요한 명분, 즉 소비자와 시장 보호가 아닌 정치적 목적에 따른 개입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경제 산업 뉴스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정부의 기업 압수수색, 또는 경영자의 검찰출두다. 소유지배구조를 정부가 원하는 대로 맞추지 못했다거나, 회의 중 물컵을 던졌다거나, 노조설립을 방해했다는 의혹이 있거나 등 그 이유도 다양하다.

반대로 조용한 곳도 있다. 지난 여름 아시아나 항공은 기내식 사고로 수많은 고객들을 여행 시작부터 굶주리게 만들었다. 심지어 연착으로 예약해 놓은 숙소를 그냥 날리는 고객도 적지 않았다. 하루 이틀, 한두 편이 아닌 일주일 이상 사고가 계속됐지만, 정부가 조사를 했다거나 경영진을 소환했다거나 하는 소식은 아직까지도 찾아보기 힘들다. 회의 중 물컵을 던졌다는 이유만으로 오너 일가가 몇 차례 검찰에 출두해야 했던 경쟁 항공사에 대한 일처리와 겹쳐지며, 쉽게 납득하기 힘든 순간이다.

정부의 기업 규제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 목적은 소비자와 경쟁기업, 즉 시장이 되어야 한다. 특정 그룹의 지배구조가,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막는다면 규제는 당연하다. 반대로 지주회사가 됐건, 순환출자가 됐건 시장과 소비자 복리후생에 영향이 없다면, 정부의 간섭은 규제를 위한 규제가 될 뿐이다.

‘규제’는 자유방임이 대원칙인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에게 주워진 권한이다. 하지만 이유를 망각한 칼 휘두르기는 결국 훗날 스스로를 찌르는 칼이 될 뿐이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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