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파격의 김정은, 가시지 않는 불신

[제공=평양사진공동취재단]

파격의 김정은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안방으로 초청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평양 남북정상회담 기간 예상을 뛰어넘는 언행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의 파격은 문 대통령이 내린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부터 시작됐다.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부인과 함께 공항으로 직접 영접 나온 것은 남북관계는 물론 통상적인 정상외교에서도 전례를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2011년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김 위원장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연 것 자체도 처음이다. 평양 순안공항에서 펼쳐진 공식환영행사에 참석한 북한 인사들의 면면에서도 김 위원장의 성의가 확인된다.

헌법상 국가원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사실상 2인자인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을 위시해 당ㆍ정ㆍ군 고위인사가 대거 출동했다.

공항에 나타나지 않은 박봉주 내각총리는 문 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 미리 가있다 영접에 나섰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부위원장도 순안공항에서 김 위원장 부부를 수행하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의 최고위층 인사 모두가 나선 셈이다.

북한이 의장행사 때 국가원수에게나 하는 최고 예우인 21발의 예포를 발사한 것은 대한민국을 겨냥해 ‘남조선 괴뢰도당’이라고 비난해왔다는 점을 떠올리면 경천동지할만한 일이다.

파격은 순안공항 밖에서도 계속됐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순안공항을 떠날 때 각각 별도의 차량에 탑승했으나 평양 중심지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내려 함께 무개차에 올라 카퍼레이드를 진행했다. 북한은 김정일 집권 시기 2001년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유일할 정도로 카퍼레이드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김 위원장이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해 문 대통령에게 “발전된 나라에 비하면 초라하다”면서 “비록 수준은 좀 낮을 수 있어도 최대한 성의를 보인 숙소이고 일정”이라고 한 발언은 자존심 하나로 버틴다는 북한의 최고지도자 입에서 나왔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의 첫 회담 장소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를 잡은 것 역시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다. 당 중앙위 본부청사는 말 그대로 북한의 심장부라 할 수 있다.

지난 2000년과 2007년 각각 평양을 찾았던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도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가졌을 뿐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파격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의구심과 회의감은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 대화 상대인 미국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향한 의미 있고 검증가능한 조치를 강조하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장관급회의를 소집하는 등 대북압박의 고삐를 놓지 않고 있다. 강경파들 사이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미국의 대북압박 노력을 약화시킨다는 볼멘소리마저 공공연히 나온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억울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핵실험장과 탄도미사일발사장 폐기에 나섰고 미국인 억류자와 미군 유해까지 송환하는 등 나름 성의를 보였지만 받은 것이라곤 언제 재개할지 모르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밖에 없는데다 끊임없는 의심을 받고 있는 형편이니 말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스스로 자초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작년 한해에만 국제사회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 차례 탄도미사일 시험과 핵실험을 강행하며 한반도정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비참한 운명의 분초를 다투는 고달픈 시간을 보내고 있는 미국놈들”, “늙다리에게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최선”,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 단행 고려” 등 위험수위를 넘나든 아슬아슬한 발언 모두가 불과 1년 전 김 위원장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양적 변화가 쌓이면 질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파격이 반복되다보면 불신이 해소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정세는 몇 번의 파격을 허락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형식적인 몇번의 파격보다 내용적으로 진전된 단 한번의 결정적 행동이 절실하다. 결국 비핵화 해법 제시가 관건이다.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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