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제출’ 양승태 USB…재판거래 의혹 증거 나올까

-‘혼자 하지 않았다’ 해명 필요한 임종헌 USB에서는 증거 다수 발견
-양승태 모든 의혹 부인, ‘몰랐다’고 해명해야 하는 상황
-사실상 자진제출한 USB 메모리에서 ‘스모킹건’ 기대 어려울 듯 

검찰이 양승태(70) 전 대법원장의 USB메모리를 확보하면서 향후 중요 증거자료로 쓰일지 주목된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이 사실상 증거물을 ‘자진제출’한 셈이어서 사법행정권 남용에 관한 각종 문서가 나왔던 임종헌(59) 전 법원행정처 차장 압수수색 때와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2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지난달 30일 양 전 대법원장이 자택 서재에 보관하고 있던 USB메모리 2개를 확보해 내용을 검토 중이다. 당초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의 차량에 한정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고, 자택은 제외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과 변호인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퇴직하면서 가지고 나온 USB가 있다’고 진술했고, 검찰은 증거물을 확보했다. 검찰이 발부받은 영장에는 압수수색 범위를 양 전 대법원장의 차량에 한정하되, 예외적으로 ‘참여인 등의 진술에 의해 압수할 물건이 다른 장소에 보관돼 있음이 확인되는 경우 그 보관장소’도 포함하는 것으로 기재됐다.

이처럼 양 전 대법원장 측이 USB메모리를 자진해서 제출한 동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도 여기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 USB메모리에 임 전 차장의 사례처럼 사법행정권 남용이나 소위 ‘재판거래 의혹’을 뒷받침할 내용이 들어있을 가능성 낮을 것으로 보인다. 각종 보고서 작성에 직접 관여해 혐의 전면 부인이 어려운 임 전 차장의 경우 법원행정처의 권한 남용이 자신의 주도 하에 이뤄진 게 아니라는 해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과 언론에서 의심하는 모든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거나, 적어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을 몰랐다’고 부인해야 한다. 굳이 불리한 자료를 제출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이번에 확보한 양 전 대법원장의 USB메모리에서 사법행정권 남용이나 재판거래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발견된다면 수사는 급진전될 수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세부사항에 관여했다거나, 최소한 내용을 보고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검찰로서는 가장 이번 수사 난제 중 하나인 ‘윗선 개입 여부’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검찰은 지난 7월 임 전 차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여직원 가방 속에 있던 USB메모리를 확보했고, 여기에는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를 빼내거나 비위 의혹이 일었던 판사에 대한 언론 취재를 저지할 방안을 검토하는 등 법원행정처의 부적절한 활동 내역을 담은 문서가 다수 저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임 전 차장이 압수수색을 대비하고 있던 점을 미뤄볼 때 USB메모리를 쉽게 내준 것은 책임을 분산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좌영길 기자/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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