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패션 런웨이 본류는 제3세계”

‘자연주의’ 홍미화 패션 디자이너

가나·남아공서 세차례 신작 발표

“본능미(美) 간직한 패션이 더 감각적

지구촌 변방무대로 작업 이어갈것”

홍미화 패션 디자이너. 1993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데뷔 이후 30여년 동안 ‘자연주의’를 고집했다.

“미래의 패션 주인공은 가나, 남아공 등 제3세계 국가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세계적인 컬렉션 무대는 현재 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 등이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미국과 유럽 중심의 획일적인 패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패션 본고장’이라며 고정적인 관념에 사로잡힌채 말이다. 패션 본고장은 아프리카를 주제로 패션쇼를 선보이면서도 정작 아프리카를 패션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동정의 대상으로 볼 뿐인데, 이젠 그동안 글로벌 패션업계에서 조명받지 못했던 제3세계 국가의 잠재력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는 패션 디자이너 홍미화(63ㆍ여) 씨다. 서울 중구 신당동 작업실에서 최근 만난 홍 디자이너는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앳된 소녀 같았다. 그는 불과 한달 전에 다녀온 ‘지구촌 문화교류 패션쇼’를 떠올리곤 발그스름 상기된 표정을 짓는다.

홍 디자이너는 20여일 동안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ㆍ움프말랑카, 가나 쿠마시 등을 순회하며 세차례 신작 발표회를 열었다. 2015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첫번째 지구촌 문화교류 패션쇼를 선보인 이후 꼬박 3년만이었다.

“사전에 제작한 옷 500여벌을 챙겨가 20일 동안 세 번이나 패션쇼를 했어요. 파리 컬렉션도 일 년에 두 번하는데, 그야말로 생사람 잡은 거죠(웃음). 100여가지 옷 조합을 구상했지만 결국 현지에 도착해서 모델에 맞게 옷을 자르고, 찢고, 뒤집는 등 리폼해야 했어요.”

홍 디자이너는 매 패션쇼가 동네축제 같았다고 했다. 모델을 섭외하기 위해 10~20대 지원자를 모집하면 순식간에 수십 명이 몰려들어 애를 먹었다. 특히 가나 쿠마시의 현지 학교인 ‘실로암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기억에 남는다. 모델에 지원한 학생들은 긴장한 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면서도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나를 간택해 달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 새침데기 같은 당돌함에 매료된 그는 최대한 많은 학생들을 무대에 올렸다. 모델들은 런웨이 위에서도 흥(興)을 자제할 줄 몰랐다.

“현지 주민들은 패션쇼가 끝나도 패션쇼장을 나가지 않더라고요. 패션쇼가 뭔지 모르기에 더 열정적으로 즐기는 것 같았어요.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느꼈어요. 국가와 지역을 초월한 진정한 패션 교류의 장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이처럼 홀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그의 행보는 어느정도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데뷔 이후 30여년 동안 기성무대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거부했다. 1993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데뷔 때부터 파리컬렉션협회가 마련한 기성무대의 런웨이를 버리고 뱅센 숲 속에서 이색 패션쇼를 열었다. 한밤중에 몽환적인 달빛을 배경삼아 일본에서 공수한 반딧불이 500여 마리를 날려 조명을 대신했다. 당시 디오니소스적인 황홀경에 취했던 관객들은 아직도 그를 자연주의 패션작가, 로맨틱 디자이너 등으로 기억한다.

“저는 본질적인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자연적인 것, 가장 나다운 것을 찾으려고 하죠. 가령 가장 편한 옷을 만들다보면 아기가 입는 배내옷 같은 디자인이 나와요. 한국의 한복처럼 보이기도 하고, 네팔이나 몽골의 전통 의상처럼 보이기도 해요. 어느 쪽이든 인간이 태초에 지어 입었던 원초적 의상에 가까운 형태일 겁니다.”

그가 현재의 서구 패션도 원초적 의상에서 파생된 한 갈래에 불과하다고 믿는 까닭이다. 본질적인 미를 간직한 아프리카, 남아공 등의 패션은 투박하지만 더 감각적이고 아름답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홍 디자이너는 아프리카, 남아공 등이 머지 않아 미래 패션업계의 주역이 될 것으로 그래서 확신한다. “가나 학생들의 열의에 놀랐어요. 패션쇼가 돌아가는 과정을 몸소 체험한 학생들은 다시 기회가 주어져도 뛰어들 것 같았어요. 누가 알겠어요? 나중에 가나에 패션 스쿨이 생겨 한국과 교류하게 될 수 있을지….”

그의 머릿속엔 이미 세번째 지구촌 문화교류 패션쇼 구상이 담겨 있다. “쿠바도 가보고 싶고 볼리비아 유우니 소금사막도 가보고 싶어요. 아직 정해진 건 없지만 본능이 이끄는 대로 가야죠.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여행을 다닌다고 하는데, 여행보다는 지구촌 문화교류 패션쇼가 더 좋지 않겠어요?”

박로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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