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된 비트코인 아직은 1단계 수준…2년후 변곡점 올것”

 

이신혜 GBIC 파트너·블록72 대표가 말하는 블록체인 현주소

20190118000341_1영어사전에서 ‘uncertain’을 찾으면 ‘확신이 없는’, ‘불확실한’, ‘불안정한’, ‘불분명한’ 등 부정적인 의미 투성이다. 누구나 인생에서 불확실성을 피하려 한다. 대부분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안정된 삶을 추구한다. 공무원, 대기업, 교직 등으로 취업준비생들이 몰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uncertain’이 전혀 다른 의미기도 하다. 사전적 정의를 뒤집어 ‘정답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개척할 여지가 많은’, ‘결과물이 더욱 값진’ 등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이신혜(사진ㆍ35) GBIC 한국파트너 겸 블록72 대표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한국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4년간 근무했다.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로 시작했지만 동료들이 대기업이나 금융권에 진출할 때 이 대표는 다른 세상에 눈을 떴다.

이 대표는 “맥킨지에 입사하면 2, 3년 후 각자가 관심 있는 업계로 진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소위 성공하는 커리어 트랙이라고 정해진 길보다는 조금 더 큰 세계가 있을 거 같아 MBA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스탠포드 대학 MBA에서 이 대표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영감을 얻었다.

이 대표는 “미국 가서 공부하면서 군인, 스타트업 실패한 사람, 반대로 성공해 야후에 매각한 사람, 페이스북 10번째 인플루언서, 컨설턴트, 헤지펀드 관계자 등 여러 유형의 친구를 통해 배웠다”며 “MBA 후에 커리어를 고민할 때 당시가 가장 큰 모험을 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스타트업이었다. 스타트업에 대해 갖고 있던 막연한 환상과 두려움이 오히려 이 대표에겐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 대표는 2014년 결제 전문 스타트업 코인의 비즈니스 개발 디렉터로 영입됐다. 당시 직원이 10명도 안되는 작은 기업이었지만 코인은 2016년 세계적인 웨어러블 기업 핏빗에 인수될 정도로 기술력을 갖고 있었다.

2016년부터는 재무설계 전문 기업 너드월렛에서 근무했다. 입사 당시 직원이 300명 정도로 코인보다는 훨씬 큰 기업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보다 안정된 직장에서 오히려 답답함을 느꼈다.

그녀는 “여러 채널을 거쳐야 해 업무 속도가 느리고, 내가 하는 결정이 바로 반영되지 않는 현실과 직면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코인에서 일할 때보다는 너드월렛이 안정적이었지만 성취감은 더 적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4년간의 ‘실리콘밸리 라이프’를 보내면서 이 대표가 얻은 가장 큰 자산은 자신감이었다.

그녀는 “어느 누구도 몇시에 출퇴근 하는지, 하루 하루 무엇을 하는지 체크하지 않지만, 매달과 분기별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했는지 까다롭게 평가했다”며 “그런 곳에서 일하면서 원어민 수준이 아닌 영어로도 현지인들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그런 자신감이 있었기에 새로운 진로를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대표는 “다른 사람들이 왜 리스크가 큰 길을 가냐고 묻는데 사실 남들이 리스크라고 보는 것이 나한테는 리스크가 아니었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실제로 대학 다닐 때도 스타트업이 리스크가 크다며 교수들이 만류했지만 정작 그녀는 맥킨지와 스탠포드 MBA라는 화려한 이력으로 스타트업이란 황무지를 택했다. 바로 “10개 중 9개가 실패하더라도 단 1개가 성공하면 굉장히 의미가 깊고 영향력도 더욱 클 수 있다”는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소신으로 핀테크 업계서 블록체인으로 넘어왔다. 안정적인 벤처캐피털 제의를 고사한 결과였다.

이 대표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벤쳐캐피털에 합류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백인 남성들 위주고, 이미 체계가 많이 잡혀 있는 미국 벤쳐캐피털 업계 보다는 아직은 체계가 덜 잡혀있지만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블록체인 업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작년 초부터 현재의 GBIC 파트너로 들어오게 됐다.

GBIC는 뉴욕, 상하이,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블록체인 전문 투자회사다. 약 600억원 규모로 50여개 글로벌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작년 9월 중국 테크 전문 매체 36Kr(36)이 발표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크립토 펀드’에 선정되기도 했다.

GBIC의 다른 파트너들도 이 대표와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다.

이 대표는 “GBIC의 다른 파트너들은 원래 컬럼비아 대학교 출신인데 모두 좋은 직장들을 그만두고 2016년부터 블록체인 업계에 승부를 건 도전 정신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 미국, 중국 등 광범위한 활동무대도 그녀를 사로잡았다.

이 대표는 “중학교 때 중국에서 잠깐 살았던 경험,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했던 이력을 활용하고 싶었는데 현재 GBIC에서 아시아를 담당하고 있어 평소 한ㆍ미ㆍ중을 잇는 일에 대한 열망을 실현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그녀가 가장 많이 언급했던 말 중 하나가 ‘uncertain’이었다.

이 대표는 이 불확실성을 자신 인생에서 주요 가치로 삼고 있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니 결국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이것은 자신한테 오는 기회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늘 편한 곳에 있으면서 uncertain을 떠안지 않으면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대표에게도 불확실성은 두려움이었다. 핀테크와 블록체인 모두 이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영역이다. 하지만 이 ‘기회’를 찾기 위해 이 대표는 기꺼이 불확실성을 떠안았다.

그러다보니 치열하게 사는 것이 몸에 배었다. 중국에서 살 때 중국어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언어를 익혔고, 맥킨지에서는 무려 주 100시간을 일했다.

현재 업무 스타일도 하루하루 다르다. 어떤 날은 한ㆍ미ㆍ중에 퍼져 있는 30명 넘는 GBIC 및 블록(Block72) 파트너 및 팀원들과 보내고, 다른 날은 국내외 블록체인 프로젝트 및 관련 업계 사람들과 외부 미팅을 한다. 작년 한 달의 반 정도는 해외 출장을 갈 정도로 변화무쌍한 스케줄을 소화했다. 업무의 대부분은 미팅이다.

이 대표는 “많은 사람을 만나는것이 때론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만나는 사람들과 30분 혹은 1시간 미팅하는 동안은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이 같은 길을 걸으면서 그간 삶은 한계를 극대화시키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이 대표는 “편한 곳에서 스스로 벗어나 불확실성에 도전하면서 성장할 때 가장 큰 희열을 느꼈다”고 강조했다.

지금 블록체인에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획기적인 기술로도 평가받는 동시에 실체가 없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지금 흔하게 접하는 자동차, 인터넷도 상당한 시간이 걸려 지금의 모습이 된 것처럼 블록체인도 이제 막 열린 세계이므로 시간이 필요하다”며 “아직은 미성숙 산업이지만 좋은 인재가 계속 몰리는 만큼 가능성을 믿는다”고 말했다.

급변하는 세상을 보면서도 이 대표는 블록체인의 미래를 점치고 있다. 그녀는 “SNS 인플루언서가 억대 연봉을 받고, 새로운 방식의 1인 기업이 생겨나고 있다”며 “블록체인이 생기면서 어디 국민, 어디 회사 직원과 같은 기준 없이 어디서든 기여하는 만큼 보상받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태계 형성이 완성되는 시기를 묻는 질문에 이 대표는 “어떤 사람은 최소 20~30년 걸린다고 하고 더 걸린다고 보는 사람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예상 시기가 일치하지 않아도 우리가 그리는 세상이 온다고 믿는 것”이라며 “앞으로 블록체인 업계에서 세상이 변화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고 밝혔다.

정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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