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브랜드에 밀려…씨 마른 ‘K패션’

패션업체, 수입브랜드 유치 집중

글로벌 SPA 브랜드만 승승장구

해외본사 수입선 정리 후 직진출

전문가 “국내 브랜드 근력 키워야”

필립플레인 [필립플레인 공식 홈페이지]

한국내 패션업체들이 해외 유명 브랜드와 판권 계약을 맺는 수입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패션 시장 불황이 장기화되자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자체 브랜드 개발 대신, 해외 브랜드 도입에 집중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 안착한 수입 브랜드가 판권 계약이 끝남과 동시에 직진출하는 사례가 늘면서 “사업 기반은 국내기업이 닦고, 실속은 해외본사가 챙겨간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신세계인터내셔날ㆍ삼성물산 패션부문ㆍ한섬ㆍLF 등 4개 주요 패션기업들이 지난 2년간 신규 론칭한 브랜드 수는 총 25개. 이 가운데 해외 브랜드는 18개로 전체의 72%를 차지한다.

기업마다 포트폴리오 전략은 다르지만 신규 브랜드 육성에 소홀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패션 업계 관계자는 “대다수 패션업체가 수입 브랜드로 전향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국내업체 중 가장 많은 수입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53개 브랜드 중 40개가 해외 브랜드로 전체의 75.4%다. 2017년 폴스미스ㆍ끌로에ㆍ딥디크에 이어 지난해 리스ㆍ아워글래스, 올해 존 하디ㆍ필립플레인 등 총 7개 브랜드의 국내 독점 계약권을 따냈다.

작년에는 플립ㆍ스토리 어스ㆍNNDㆍ연작 등 총 4개의 자체 패션ㆍ뷰티 브랜드를 론칭해 국내 브랜드 비중을 확대했지만 여전히 라이선스 브랜드 비중이 높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1996년 신세계백화점 해외사업부에서 분리해 설립한 회사다보니 해외 브랜드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국내 브랜드도 지속적으로 개발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있다”고 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최근 2년 동안 들여온 것도 해외 브랜드들이다. 2017년에는 수트서플라이와 캐나다구스를, 지난해에는 메종키츠네ㆍ브룩스러닝ㆍ아스페시ㆍ그라니트 등 총 6개 브랜드의 국내 판권을 확보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현재 패션시장은 국내 브랜드를 개발해 수익을 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다만 장기적으로 자체 브랜드에 투자해 국내 대표 브랜드로 키워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삼성물산은 올해 캐주얼 브랜드 빈폴을 리뉴얼해 다시 도약할 기회를 마련할 예정이다.

한섬은 2017년 SK네트웍스 패션부문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다. 기존 브랜드에 더해 DKNYㆍCKㆍ스티브J&요니Pㆍ클럽모나코 등 12개 브랜드를 추가로 운영하게 됐다. 여기에 2017년 포츠 1961ㆍ로샤스와 지난해 타미힐피거 풋웨어ㆍ필립림 등 수입 브랜드만 4개 들여왔다.

한섬은 당분간 신규 브랜드 개발에 몰두하기보다, 타임ㆍ시스템ㆍ마인 등 수익을 내는 ‘알짜’ 브랜드 운영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LF는 국내 브랜드 비중이 64.7%로 주요 업체 중 가장 높다. 브랜드 포트폴리오가 자체 브랜드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체 브랜드는 2017년 질스튜어트스포츠와 블루라운지마에스트로를, 지난해에는 남성 화장품 브랜드 헤지스 맨 룰429를 선보였다. 해외 브랜드의 경우 2017년 핏플랍을 들여왔다. LF 관계자는 “수입 브랜드로 기업의 볼륨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자체 브랜드를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주요 패션기업이 해외 브랜드 유치에 집중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작기 때문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제조ㆍ직매형 의류(SPA) 브랜드가 국내 패션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며 “온라인 브랜드까지 치고 올라오면서 자체 브랜드를 성공시키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과거에는 신규 브랜드를 성공시킬 확률이 10~20% 가량이었다면, 현재는 5% 미만이라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수입 브랜드 범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수입 브랜드가 국내에 자리를 잡으면 해외 본사가 수입선을 정리해 직진출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명품 브랜드 지방시ㆍ돌체앤가바나ㆍ델보 등이 한국 시장을 직접 공략하기 위해 국내기업과 판권 계약을 종료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해외본사가 운영 노하우만 습득해 국내에 직진출하거나, 재계약 시 더 무리한 조건을 내거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글로벌 패션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내 브랜드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국내 패션산업이 침체기를 지나 다시 성장할 때를 대비해 국내 브랜드의 근력을 키워야 한다”며 “향후 막강한 소비력을 갖추게 될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국내 브랜드의 주요 소비자로 부상할 경우 시장 분위기가 180도 바뀔 것”이라고 했다.

박로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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