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기업가-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 엔터테인먼트 ‘A to Z’ 바꾸다

비디오 연체료 40달러 내고 ‘불만’…대안으로 ‘정액제 모델’ 떠올려

1997년 DVD 대여사업 창업…2007년 아이폰 탄생 보며 변화 직감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갈아타…가입자들 시청습관 ‘빅데이터’ 활용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2년 안에 모든 텔레비전에 와이파이와 넷플릭스(Netfilx)가 설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09년, 리드 헤이스팅스(59)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유ㆍ무선 네트워크로 연결된 ‘스마트TV’와 온라인 스트리밍 시대를 예언했다. 넷플릭스가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했다.

10년 후 헤이스팅스의 말은 적중했다. 스마트 기기와 와이파이가 대중화되면서 시청자들은 ‘언제나’, ‘어디서든’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됐고, 그 사이 넷플릭스는 비디오 대여와 케이블TV구독시장을 차례로 무너트리며 1억 4800만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됐다.

리드 헤이스팅스에게는 ‘파괴적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이 따라다닌다. 파괴적 혁신은 시장의 ‘A to Z’를 파괴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고, 혁신을 바탕으로 기업이 시장 지배적인 위치까지 오르는 과정을 말한다.

실제 넷플릭스의 성장은 기존 미디어 산업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비디오대여와 케이블TV 구독 중심의 영상 콘텐츠 소비 시장을 완전히 대체했다. 바뀐 것은 시청자도 마찬가지다. 과거 보고 싶은 콘텐츠를 스스로 찾아야 했던 시청자들은 이제 넷플릭스가 시청 취향에 맞춰 ‘알아서’ 추천해주는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즐긴다.

넷플릭스가 개척한 시장은 이제 세계 최고 기업인 애플과 영화ㆍ콘텐츠 왕국인 디즈니마저 ‘도전’을 선언한 분야가 됐다. 현재 가장 뜨거운 승부처, 챔피언은 넷플릭스다.

수학교사 헤이스팅스, 비디오연체료로 40달러를 물다=넷플릭스는 현실 세계의 문제에서 태어났다.

20년 전, 헤이스팅스는 대여점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빌린 후 제때 반납하지 않은 탓에 40달러의 연체료를 물었다. 당시 그는 자신이 설립한 소트트웨어 개발툴 제작사 ‘퓨어 소프트웨어’를 다른 회사에 넘기고 사직한 후 수학교사로 자원봉사 중이었다.

헤이스팅스는 ‘수학선생님’답게 과도한 연체료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연체료의 대안으로 ‘정액제 모델’을 떠올렸다.

사업 아이디어를 얻은 헤이스팅스는 퓨어소프트웨어에서 함께 일했던 엔지니어 마크 랜돌프와 함께 1997년 실리콘밸리에 ‘넷플릭스’를 창업하고 DVD대여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넷플릭스의 초기 사업모델은 사람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원하는 것을 정확히 반영했다. 사람들은 편하기를 원했고, 연체료에 대한 부담없이 여가를 보내고 싶어했다. 넷플릭스는 사용자가 홈페이지에 접속해 DVD를 주문하면 이를 우편으로 배달해줬다.

반납일이 되면 사용자는 빌린 DVD를 우편으로 다시 보내면 됐다. 대여점까지 가야하는 수고를 없앤 것이다. 이어 1999년 넷플릭스는 월 마다 일정 금액을 내면 무제한으로 DVD를 즐길 수 있는 ‘정액제’를 도입했다. 물론 헤이스팅스가 그토록 불만을 가졌던 연체료도 없었다.

▶경쟁업체 ‘블록버스터‘의 몰락,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 진출=당시 6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대형 업체로 성장한 넷플릭스는 2007년 또 다른 혁신을 꾀했다. 아이폰의 탄생, 그리고 네트워크의 고도화를 지켜본 헤이스팅스는 시대가 변했음을 직감했다. 넷플릭스는 곧바로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에 진출한다.

처음에는 기존 가입자에게 추가비용을 받지 않고 DVD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그리고 2010년 본격적으로 사업의 축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옮겼다.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신념을 따랐다. 반면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 머물렀던 DVD 대여 경쟁업체 ‘블록버스터’는 같은해 파산했다.

이후 여러 제작사와 계약을 맺으며 콘텐츠를 쌓아가던 넷플릭스는 또 한 번의 큰 혁신을 감행한다. 새로운 알고리즘을 도입해 시청자에게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넷플릭스는 사용자의 시청패턴을 철저히 분석했다.

헤이스팅스는 “인터넷의 장점은 개인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라면서 “TV를 반쯤 보다가 식사를 준비하고, 저녁을 마친 뒤 다른 기기에서 본다 해도 정확히 누가 어디까지 시청했는지 다 안다는 건 큰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동일한 플랫폼에서도 개인화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영화는 출연배우, 주제, 장르, 배경 등 세분화된 카테고리로 쪼개졌고, 알고리즘에 의해 개별 시청자는 자신에게 최적화된 콘텐츠를 추천받았다.

이 같은 추천 서비스를 도입한 목표는 단순하면서도 명료했다. 바로 고객 만족이다. 헤이스팅스는 한 인터뷰에서 “넷플릭스의 성장 원동력은 ‘고객 만족’에 있다”면서 “콘텐츠 추천 서비스 역시 모든 고객에게 최상의 시청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빅데이터와 ‘하우스 오브 카드’=미 경영매거진 패스트 컴퍼니의 빌 테일러는 지난해 하버드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오늘날 넷플릭스의 진정한 경쟁력은 ‘빅데이터’에 있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는 1억 명이 넘는 가입자들의 시청 습관이 담긴 데이터를 ‘콘텐츠의 성공 여부’를 예측하는 데 활용했다.

넷플릭스는 2013년 공개한 첫 오리지널 제작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통해 빅데이터로 인기 드라마까지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영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원작을 검색하거나 시청한 사람들의 데이터를 분석, 이를 바탕으로 시청자들이 선호할만한 배우와 감독을 캐스팅했다.

별도의 마케팅을 하지 않은 ‘하우스 오브 카드’는 단숨에 인기작으로 떠올랐고, 전체 넷플릭스 유저의 85% 이상이 이 드라마를 시청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성공은 헤이스팅스의 시선을 단숨에 ‘오리지널 콘텐츠’로 이끌었다. 기술 기업이 ‘미디어 기업’의길을 본격적으로 가게 된 것도 이맘때다. 무엇보다 헤이스팅스에게 자체 콘텐츠에 대한 확신을 준 것은 ‘하우스 오브 카드’ 공개 이후 넷플릭스 가입자가 10%나 늘었다는 사실이었다.

오리지널 콘텐츠 증가와 미디어 산업의 변화로 넷플릭스가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는 오늘날 전통적인 방송 콘텐츠마저 위협하고 있다. 실제 넷플릭스는 미국 에미상에서 2017년 91개 작품이 후보로 선정된 데 이어 2018년 ‘블랙 미러’와 ‘ 더 크라운 등’을 포함해 112개가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는 디즈니와 같은 미디어기업이다”=넷플릭스는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21세기 혁신의 아이콘이자 최대 IT 기업인 애플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전통 강호인 디즈니가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다. 두 기업의 목표는 동일하다. 바로 ‘넷플릭스를 넘어서는 것’이다.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을 독식해 온 넷플릭스는 이제 최고의 기술 기업, 콘텐츠 기업과 경쟁해야 한다.

‘왕좌’를 방어하기 위한 넷플릭스의 선택은 ‘콘텐츠 강화’다. 지난달 18일 미국 할리우드 넷플릭스 오피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헤이스팅스는 “우린 기술 기업이 아니라, 디즈니 같은 미디어 기업”이라고 선언했다.

넷플릭스에 대한 헤이스팅스의 새로운 정의는 “넷플릭스는 기술 위에 쌓아올린 엔터테인먼트 회사”라던 과거의 정의와 분명히 다르다. 이면에는 디즈니의 콘텐츠 파워에 대한 견제와 향후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의 경쟁력은 콘텐츠가 좌우할 것이란 강력한 믿음이 존재한다.

넷플릭스는 오지리널 콘텐츠 제작 등을 통해 콘텐츠 풀을 확대하기 위해 투자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지난해 넷플릭스는 콘텐츠에 약 120억 달러(한화 약 13조 4280억 원)을 쏟아부으며 700여개의 콘텐츠를 확보했다. 시장은 올해 넷플릭스가 콘텐츠 확보를 위해 지난해보다 약 20% 많은 150억 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내다봤다.

헤이스팅스는 “비디오 스트리밍 시장에서 아마존은 연간 40억~50억 달러를 콘텐츠에 투자하고 있다”라면서 “하지만 우리는 그 두 배 이상을 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손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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