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조양호 회장 카메라 렌즈로 세상을 담았다

 ‘앵글 경영론’ 기업 경영에 접목…“조직 변화란 결국 관점을 바꾸는 것”

 찍은 사진으로 캘린더 만들어 선물하는 ‘캘린더 경영’도 펼쳐

 ‘일우(一宇) 사진상’ 제정 등 문화예술 지원 활동에도 힘써

2007년 창덕궁에서 찍은 이 사진은 조 회장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헤럴드경제=이정환 기자] 지난 8일 별세한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카메라 사랑이 유별했다. 그의 카메라 사랑은 취미를 넘어 경영에도 접목시킬 정도였다.

조 회장은 사진 촬영에서 얻은 취미를 ‘앵글 경영론’으로 기업 경영에 접목시킨 바 있다. 앵글을 바꾸면 전혀 새로운 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 것처럼 “조직의 변화란 결국 관점을 바꾸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사진 취미도 일의 일부였던 조 회장은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 캘린더로 만들어 매년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캘린더 경영’도 펼쳤다. 유망한 청년 사진가를 발굴해 세계적 작가로 육성을 위한 ‘일우(一宇) 사진상’을 제정하는 등 사진을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 지원 활동에도 힘썼다.

사진 솜씨에 관해서는 프로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조 회장. 그는 생애에 걸쳐 전 세계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한 권의 책으로 담은 사진집을 출간해 재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6년 1월 헬기를 타고 대관령을 넘어가면서 공중 촬영한 사진.

▶여행의 동반자, 카메라= 조 회장이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 부친으로부터 평소 좋아하던 카메라를 선물로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조 회장은 부친인 고(故) 조중훈 회장을 따라 여행을 자주 다녔다. 부친이 항상 카메라를 갖고 다니며 사진 촬영 하는 것을 보면서 사진 촬영에 대한 꿈을 키웠다. 조 회장은 이에 대해 “부친이 선물해주신 카메라를 메고 세계를 여행하며 렌즈 속에 담아왔던 추억들이 아직도 가슴속에 선연하다”고 말한바 있다.

조 회장은 바쁜 업무 속에서도 틈틈이 사진에 대한 안목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다. 그는 국내외 사진 전문 잡지를 보면서 마음에 드는 것은 스크랩해 두었다가 작품 활동에 참고했다. 또 사진 전문가와 만날 기회가 있으면 서로 의논을 하여 미진한 부분을 고쳐나가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국내외 출장을 떠나는 조 회장의 손에는 반드시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그는 어떤 목적의 여행이든 길을 나설 때면 항상 카메라를 챙겼다. 사진의 매력에 빠지고 난 뒤에는 바쁜 해외 출장 중에도 차창 밖의 멋진 풍광이 눈에 들어오면 지나치지 않고 차를 세워 촬영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조 회장의 ‘사진 사랑’은 ‘흥미로운 오해’를 불러일으킨 에피소드도 있다. 지난 2009년 10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유럽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는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놓고 우리나라의 평창, 독일 뮌헨, 프랑스의 안시가 치열하게 3자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결전의 프리젠테이션 전날, 당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었던 조 회장이 평소대로 주변의 풍광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외출하는 모습을 본 경쟁국 유치 위원들은 저마다 “평창 유치단은 이번 경쟁에서 여유가 있나 보다”고 한 마디씩 던지며 웅성거렸다. 프리젠테이션을 목전에 두고 머리를 맞대며 고심하던 경쟁국 위원들에게 조 회장의 여유로움은 경계심과 함께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조양호 회장이 2004년 1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상임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자동차를 몰고 스위스 체르마트 마을로 가는 도중에 촬영한 사진.

▶취미도 하나의 업무= 카메라와 함께하는 조 회장의 여행은 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의 연속이었다. 신규 시장 개척을 위해 미 취항지를 중심으로 해외의 많은 곳을 찾아 여행에 적합한 곳인지 직접 확인했다.

조 회장은 지난 2002년 10월 중국 양쯔강을 탐험하면서 쌴샤댐과 거대한 양쯔강 물줄기, 주변의 도시들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소회한 바 있다. 2002년 당시는 대한항공이 지난, 옌타이, 샤먼 등 중국 대륙에 공격적인 진출이 이뤄지는 시기였다. 조 회장은 양쯔강에서 중국의 잠재력을 봤다.

그는 새로운 여행지를 좋아했다. 마음에 든다고 해서 한 곳을 여러 번 방문하기보다는 안 가본 곳,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곳,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를 선호했다. 베트남의 하롱베이나 터키의 이스탄불, 중국의 황산 등은 여행을 통해 그 시장 잠재력을 간파하고 항공노선으로 개발해 성공한 사례다.

조 회장은 자신의 사진으로 만든 달력을 선물하는 CEO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사진 취미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2001년 말부터다. 당시 조 회장은 자신이 찍은 사진으로 만든 새해 캘린더를 제작해 외국 기업 CEO, 주한외교 사절 등 국내외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 촬영 중인 조양호 회장의 모습.

▶2009년 사진집 출간= 조 회장은 2009년 국내 및 해외 각지를 다니면서 틈틈이 촬영한 사진 중 대표작 124점과 이에 대한 해설을 260여 페이지에 담아낸 사진집을 출간했다.

이 사진집에는 하늘에서 지상의 풍경을 담아낸 다양한 사진을 비롯해 아름다운 하늘의 모습, 창공을 날아가는 새, 광활한 대지에 뻗은 길 등 글로벌 종합 물류 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사진이 빼곡히 수록돼 있어 당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스위스 출장 중 알프스의 이국적인 겨울 풍경을 담아낸 ‘제네바에서 체르마트를 가는 길’을 비롯해 이집트 지혜와 미의 여신인 이니스를 모시는 아스완 필래(Philae) 신전의 회랑의 모습을 찍은 사진, 중앙아시아의 위대한 정복자였던 티무르 왕조의 영묘인 누르 에미르의 모습을 광각렌즈로 담아낸 사진, 세계적인 화가 르누아르가 마지막 생애를 살았던 집 정원의 올리브 나무 숲의 평화로운 모습을 렌즈로 담아낸 작품에서는 사진에 대한 조 회장의 열정과 애착을 느낄 수 있다.

조양호 회장은 바쁜 업무 중 틈틈이 찍은 사진으로 매년 달력을 제작해 국내외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2009년에는 사진집을 출간해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사진은 조양호 회장이 매년 제작한 달력과 사진집 및 애장 카메라.

▶사진으로 나눔 경영 실천= 조 회장은 사진을 나눔 경영으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호를 딴 ‘일우(一宇) 사진상’을 2009년 8월 제정해 2019년까지 10년간 이어지고 있다.

한진그룹 산하 공익 재단인 일우재단이 주관하는 ‘일우사진상’은 올해의 주목할만한 2~3명을 선정, 이들을 국제적 경쟁력을 지닌 세계적인 작가로 육성하기 위해 작품 제작과 전시, 출판 등을 지원하고 있다.

조 회장의 유지로 설립된 ‘일우사진상’은 전문적인 심사방식과 수상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특전으로 인해 국내 최고 권위의 지원 제도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조 회장은 2010년 4월에는 서울 서소문 사옥 1층에 시민들을 위한 문화전시공간인 ‘일우 스페이스’를 개관했다. 이는 서울 도심 속의 문화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작음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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