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스 기획] 오거스타내셔널의 아이콘 10개

 

클럽하우스 맨 꼭대기는 까마귀 둥지로 불리는 아마추어 선수의 숙소다.

클럽하우스 맨 꼭대기는 까마귀 둥지로 불리는 아마추어 선수의 숙소다.

1932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과수원에 아마추어 선수로 은퇴한 보비 존스와 뉴욕의 금융업자 클리포드 로버츠가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을 개장했다. 1934년부터 매년 마스터스 대회를 여는 오거스타내셔널은 다양한 골프 역사의 창고다. 언제 어떤 역사가 새겨졌는지 오거스타내셔널의 10개 아이콘을 소개한다. 까마귀 둥지: 1854년에 과수원 관리동이 지금의 클럽하우스다. 옥탑방에는 까마귀 둥지(crow’s nest)라는 전망대를 두었는데, 계단을 따라 옥탑방으로 올라가면 침대 5개가 있는 너비 111.4 제곱미터의 침실이 나온다. 마스터스에 출전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묵는 공간이다.

매그놀리아 래인: 목련 나무들이 늘어선 330야드의 진입로 매그놀리아 래인은 1850년대 농장 시절부터 있던 진입로였다. 이곳은 마스터스 대회 기간에는 선수들만 통과할 수 있다.

홀마다 과수 별칭: 마스터스 기간이면 오거스타내셔널에는 15종의 꽃들이 홀마다 피어나고 코스는 20만 송이 이상의 꽃이 만발한다. 오거스타내셔널은 매 홀마다 특징적인 꽃나무의 별칭을 달았다. 13번 홀에 피는 1600송이의 꽃은 진달래다. 2년 전에 우승한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가 딸의 이름을 ‘아잘리아’라고 지었다.

이미지중앙 클럽하우스 옆 챔피언에게 그린재킷을 입히는 버틀러 캐빈.

버틀러 캐빈: 오거스타내셔널 코스 내에는 10개 오두막이 있는데 그중에 버틀러 오두막은 1964년에 지어졌다. 대회가 끝나면 우승자가 그린재킷을 입는 의식이 거행되는 텔레비전 스튜디오로 쓰인다.

3개의 돌다리: 래의 샛강을 넘어 12번 홀 그린 왼쪽으로 향하는 호건의 돌다리는 마스터스에서 두 번 우승한 벤 호건을 기려 1958년에 헌정되었다. 호건은 1951년에 이어 1953년에도 14언더파 코스 레코드로 우승했다. 13번 홀 티샷을 하고는 바이런 넬슨을 딴 넬슨의 돌다리가 있다. 1937년 대회 마지막 날 11번 홀까지 6타 차로 뒤지던 넬슨이 12번 홀 버디에 이어 13번 홀 이글로 랄프 굴달에 3타차 역전 우승한 것을 기념했다. 넬슨은 이 해에 이어 1942년에도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15번 홀 그린 앞에 진 사라센의 이름을 딴 사라센 다리가 있다. 사라센이 1935년에 이 홀에서 알바트로스를 잡은 것을 기념했다.

아멘 코너: 미국의 명망있는 작가 허버트 워런 윈드가 1930년대 재즈곡에서 영감을 얻어 1958년 아놀드 파머의 우승에 맞춰 기사를 쓰면서 이름지어졌다. 11번 홀 어프로치에서 시작해 13번 홀의 티샷까지 이르는 난이도 높은 구간으로 ‘아멘’이라는 탄식이 나온다고 한다.

래의 샛강: 1700년대에 살던 주민 존 래(John Rae)의 이름을 딴 너비 18.3미터, 깊이 1.22미터의 시내가 파3 12번 홀 그린 앞을 가로지른다. 조던 스피스(미국)는 2016년 선두로 달리다가 마지막날 여기서 공을 물에 두 번이나 빠뜨렸다.

이미지중앙 오거스타내셔널에는 빨강과 녹색으로 언더오버를 표시한다.

독특한 리더보드: 마스터스에는 붉은 색은 언더파, 녹색은 오버파로 스코어를 기재한다. 1947년에 처음 사용된 이래 패트론에게 생동감 넘치고 드라마같은 정보를 준다. 코스 내 10곳에 신속하게 스코어가 반영된다. 이는 홀당 타수를 기록하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다르다.

퍼스트컷: 오거스타내셔널은 마스터스 기간에 페어웨이 옆으로 잔디 높이를 다르게 깎아 난이도를 조절한다. 페어웨이를 벗어난 세미 러프를 이 대회에서만 부르는 명칭으로 ‘퍼스트 컷’이라고 하며, 좀더 벗어난 잔디 길이가 긴 러프는 ‘세컨드 컷’이라 한다.

유리알 그린: 마스터스의 그린은 빠르기가 살벌하기로 악명 높아 ‘유리알 그린’이라고 불린다. 올해는 비가 예보되었지만 비가 오지 않으면 일요일로 갈수록 그린 스피드가 빨라지면서 그린 스피드가 4.7~4.8m까지 나온다. 골프장은 단단하게 다진 그린의 잔디를 하루 8번이나 깎아 0.3cm 정도로 짧게 관리한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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