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 10개월…달라진 기업문화]“회사에 몰래 왔다 몰래 가요”

52시간 10개월…기업문화 신풍속도

출퇴근 시간 자율제 도입 확산…“좋은 아침” ”내일보자” 인사 사라져

자유복장에 사장도 청바지 출근…공유오피스 늘며 원격소통도 증가 # .“‘좋은 아침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와 같은 인사는 이제 하지 않습니다. 각자 출퇴근 시간이 달라 조용히 왔다 조용히 가죠.”(식품업체 마케팅팀 차장)

#.“(회의 중에) 자네 퇴근시간? 그럼 다음에 얘기합시다.”(화장품업체 R&D 팀장)

#.“저녁 회식하려면 ‘자발적 참여’ 공지는 필수입니다.”(서비스업체 인사팀장)

‘주52시간 근로제’ 도입 10개월이 지나며 사무실 풍경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관련기사 3면 300인 이상 사업장의 유연 근무제 확산으로 과거 흔하게 듣던 출퇴근 인사말은 사라진지 오래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정착을 위해 육아대디ㆍ워킹맘 지원을 늘리는 ‘패밀리 케어’ 제도는 더 촘촘해지고 있다.

스마트 오피스ㆍ자율 좌석제 등으로 명명된 ‘공유 오피스’와 사장님도 청바지를 입는 ‘완전 자율복장’도 확산하는 추세다. ‘저녁이 있는 삶’을 기치로 내세운 유연한 근무환경이 자리를 잡으며 기업문화가 젊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하는 방식의 대대적 변화는 정체된 조직 문화에 새 바람을 불어넣으며 기업의 혁신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몰래 왔다 몰래 가요”…형식이 사라진 출퇴근=자율 출퇴근제는 부산했던 출퇴근 풍경을 바꿔놨다.

식품 대기업 A사에서는 출근을 해도 아침 인사 없이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맞벌이 부부들의 자녀 등ㆍ하교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출근 시간대를 오전 8~10시에서 오전 7~11시로 확대하면서다.

이 회사에 다니는 40대 차장은 “오전 10시에 출근하는 직원들이 많아졌다”며 “그 시간에 한창 일하는 동료들도 있기 때문에 바로 자리로 직행해 일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아침 인사가 당당해졌다는 직장맘도 있다.

전자업체에 다니는 워킹맘 B씨는 “주 52시간 이후 자율 출퇴근이 적용되면서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8시30분에 출근한다”며 “전에는 눈치 보이고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지금은 떳떳하고 씩씩하게 아침 인사를 하며 사무실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사내 방송도 짧아진 근무시간에 맞춰 조정됐다.

유통 대기업 C사는 사내 방송 시간을 오후 1시30분으로 늦췄다. 종전에는 오전 9시에 일괄 방송됐지만 전 직원이 볼 수 있는 점심시간 직후로 옮긴 것이다. 전자업체 D사는 사내 방송이나 공지사항을 아예 개인 PC를 켜면 자동으로 볼 수 있도록 바꾸기도 했다. 저녁 회식은 더 엄격해졌다.

저녁 회식이 서서히 점심으로 대체되더니 이젠 저녁 회식을 하려면 ‘강요가 아닌 자발적 참여’라는 공지를 반드시 내보내야 하는 회사도 생겼다.

▶반반연차ㆍ육아대디 지원…촘촘해진 패밀리케어=일과 가정의 조화를 조직문화로 뿌리내리게 하기 위한 보완책은 더욱 촘촘해지고 있다. 하루 2시간 연차인 ‘반반연차’와 육아대디ㆍ워킹맘을 위한 ‘신생아 돌봄 근로시간 단축제’를 새로 도입한 기업도 있다.

CJ는 새롭게 부모가 된 임직원을 위해 생후 3개월까지 1일 2시간 단축 근무가 가능하다. 또 초등학교 입학 자녀를 둔 임직원은 ‘자녀 입학 돌봄 근로시간 단축제’를 통해 최장 1년간 1일 1시간씩 단축 근무를 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난임 유급 휴가제를 신설하고, 남성 직원의 배우자 출산휴가를 기존 최장 5일에서 10일로 늘린 바 있다.

LG전자는 ‘안식휴가제도’를 도입해 회사에서 제공하는 유급 휴가에 본인 연차를 붙여 최소 2주에서 최장 5주까지 쉴 수 있다.

▶“일은 많은데 일할 시간만 줄어”…하소연 여전=주 52시간 근로제가 외형적으로 완연한 정착 단계에 들어섰지만 만족도에 대한 직장인들의 속내는 정작 다르다.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737명을 대상으로 한 ‘주말 근무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52시간 근무제를 시행 중인 직장에 다니는 응답자 중 46.1%가 제도 시행후 “주말 근무를 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주 52시간 근무제에 따라 주말 근무 제약이 심해졌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70.2%가 “차이가 없다”고 했다.

김원섭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세계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의 핵심은 고용 효과”라며 “워라밸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전후가 바뀐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 52시간 근로제가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임금 부분에서 노사정 협의나 정부의 추가수당 감독 강화와 같은 정책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천예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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