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땅’ 스리랑카, 폭력의 역사…민족-종교 갈등으로 학살과 보복 거듭

영국 식민지 독립 이후 싱할라족-타밀족 민족 갈등 지속

1983년 타밀족 분리독립 무장단체 결성되면서 내전 본격화

10만명의 사망자 남긴 내전 2009년 끝났지만, 전쟁 범죄 논란

WP, 부활절 교회 겨냥 테러라는 점에서 종교 갈등 전환 분석

스리랑카 부활절 자살폭발테러 대상이 된 교회 내부 모습.[로이터]

[헤럴드경제=박도제 기자] 700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낸 스리랑카 부활절 자살폭발테러는 2009년 내전 종식 이후 가장 처참한 폭력으로 기록되고 있다. 영국 식민지 독립 이후 촉발된 민족 갈등과 오랜 내전으로 1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남긴 스리랑카에서 이번 폭발테러가 정치 불안을 넘어 종교 갈등으로 확산되는 전환점이 될지 우려된다.

스리랑카는 지난 1948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국가로 2200만명이 살고 있다. 전체 인구의 74%는 싱할라족으로 이들 대부분 불교를 믿으며, 소수인 타밀족은 18%로 대부분 힌두교 신자다.

이들의 갈등은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하면서 시작됐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싱할라족 중심의 정부 체계가 구성되었다. 당시 싱할라족은 대부분의 공직자에서 타밀족을 배제했으며, 공식 언어로 싱할라어, 국교로 불교를 일방적으로 정했다.

다수의 횡포는 1976년 타밀족의 분리 독립 무장단체인 ‘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LTTE: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를 낳게 된다.

LTTE는 1983년 매복 공격을 단행해 스리랑카 정부군 13명을 사망하게 했으며, ‘검은 7월(Black July)’로 기록되는 정부군의 대규모 보복이 단행됐다. 이로 인해 타밀족 3000명이 집단 학살되면서 스리랑카 내전이 본격화됐다.

1987년 인도는 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파병했으나, LTTE의 거센 저항으로 3년 뒤에 철수했다. 1991년 타밀족은 스리랑카 파병을 결정한 라지브 간디 인도 전 총리를 자살폭탄테러로 암살하기도 했다.

스리랑카 정부를 겨냥한 둘러싼 테러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1993년에는 스리랑카 대통령이 암살됐으며, 2001년에는 수도 콜롬보 공항을 공격해 국적기와 군수송기를 파괴하기도 했다. 미국은 1997년 LTTE를 테러 리스트에 올리기도 했다.

싱할라족 중심의 스리랑카 정부군과 타밀 반군 사이의 정전협정은 2002년 노르웨이 중재로 이뤄지기도 했으나, 2005년 스리랑카 외교부 장관이 저격수에 암살되면서 정전협정은 지켜지지 않고 양측은 교전을 지속했다.

30년 가까이 이어진 내전은 2009년 스리랑카 정부군의 승리로 끝났다. 내전 종전 직전 몇개월 간의 전쟁으로 많게는 4만명의 타밀족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UN이 보고하면서 스리랑카 정부는 전쟁 범죄 논란에 휩싸여 있는 상태다.

스리랑카의 오랜 내전 속에 LTTE가 33명의 불교 수도승을 사살하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주로 민족간의 갈등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내전 종식 이후 불교 민족주의자들은 폭력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부활절 자살폭발테러는 종교 갈등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주말 자살폭탄테러가 부활절에 교회를 겨냥했다는 점에서 종교에 기초한 폭력으로 향하는 또다른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2013년 스리랑카 불교 신자들이 모스크를 공격해 12명의 부상자를 남겼으며, 불교 수도승이 기독교 행사를 방해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부활절 폭탄테러가 ‘한 국가 두 총리’라는 정치적인 혼란을 틈타 폭력이 터져 나왔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스리랑카 대통령은 기존 총리를 해임하고 새로운 총리로 마힌다 라자팍세 전 대통령을 지명했으며, 격력한 찬반 거리 시위 속에 의회의 과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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