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기업가] 유니클로 다다시 회장, ‘의류의 맥도날드’ …글로벌 SPA 제패를 꿈꾸다

정장 판매서 ‘캐주얼의류체인점’ 전환 시골양복점을 ‘시총 600억달러’ 기업으로

낮은 가격 한계…‘ABC 개혁’으로 돌파 갭· 넥스트와 견줄 SPA 꿈꿔

숱한 실패에도 ‘도전·혁신’이 성공비결 ‘플리스’ 대히트…연간 2600만벌 판매 “싼데도 좋네”인식 변화…15년연속 성장

“앞으로 야마구치 만으로는 안됩니다.”

1984년 야나이 다다시 ‘오고오리상사’ 사장은 “남성 정장 판매로 가업을 승계하라”는 부친에게 처음 맞섰다. 그리고 그해 일본 히로시마에 ‘유니크 클로딩 웨어하우스 1호점(현 유니클로 1호점)’을 열었다. 그는 ‘캐주얼 의류체인점’을 꿈꿨다. 야마구치 현의 작은 양복점이 글로벌 기업 ‘유니클로’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순간이다.

그는 “아버지는 늘 무서웠고,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혼난 기억 밖에 없다”고 회고한다. 그런 아버지에게 처음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고 이를 관철시킨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오고오리상사에 입사한지 12년째 되던 해, 35살 청년이 해낸 도전이다.

의류브랜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69) 회장은 사양산업으로 여겨지던 의류업을 세계 3위 브랜드로 키웠다. 시골양복점을 시가총액 600억달러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는 현대자동차의 3배 규모다. 그는 “좋은 옷을 만들어 고객을 즐겁게 하겠다는 신념과 산업의 근본을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말한다.

▶“맥도날드 방식, 의류에 도입”=야나이 회장은 1972년 오고오리상사에 입사했다. 당시 그는 23살의 ‘백수’였다.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한 그는 유통 대기업 ‘자스코’에 들어갔다가 적성에 안맞아 9개월 만에 그만뒀다. 그는 자신을 ‘판매에는 소질이 없는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열정을 쏟으니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입사 2년째 되던 해, 아버지는 아들에게 오고오리상사의 전권을 위임했다.

“대기업에 잠깐 다닌 경험을 내세워 알지도 못하면서 이것저것 간섭하자 양복점 직원 7명이 사표를 쓰는 바람에 직원 한명과 점포를 운영했다. 혼자서 구매, 총무, 회계까지 맡으면서 사업을 배워 나갔다.”

야나이 회장은 입사 초기를 이렇게 회고했다. 직원들의 줄사표(?)로 위기를 맞았지만,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이를 계기로 상품조달, 진열, 판매, 재고관리 등 밑바닥부터 일을 배웠다. 그는 재고품과 반품을 고려해 처음부터 이윤을 높게 책정하는 의류사업의 문제점에 주목했다. 기존 사업구조와 관행을 깨뜨리면, 충분히 사업을 키울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특히 1980년대 일본에 진출한 맥도날드가 햄버거로 수백억엔의 매출을 올리는 것을 보고, 이를 의류업에 도입하면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의류도 햄버거처럼 소비자의 기호에 맡는 상품을 빠르게 만들어내자는 구상이다.

오고오리상사는 야나이 다다시 회장의 부친 야나이 히토시 회장이 1949년 일본 야카구치현 우베시에 창업한 신사복 소매점 ‘멘즈십 오고오리상사’가 그 시초다. 오고오리상사가 22개의 체인점을 거느리게 된 1984년 그는 사장이 됐다.

그해 문을 연 ‘유니크 클로딩 웨어하우스’는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제품을 기존처럼 옷걸이에 걸지 않고, 선반에 가지런히 진열했다. 점원이 따라다니지 않고 마트처럼 마음껏 구경한 뒤 구매하도록 했다. 인원 감축으로 원가를 낮추는 효과를 기대했다. 학생 고객 확보를 위해 매장 오픈시간을 오전 6시로 4시간 앞당겼다. 기본적인 색상과 디자인의 청바지와 티셔츠를 주력 상품군으로 택했다. 가격도 1000엔대로 낮추자 매출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ABC 개혁…‘SPA회사’로 전환=야나이 회장은 1991년 사명을 ‘오고오리상사’에서 ‘패스트리테일링’으로 바꾸면서 “판매력을 키우기 위해 3년 간 매장을 매년 30개씩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의류소매업은 이미 포화상태였다. 그는 100개의 점포를 개장한 뒤 상장할 계획을 세우고 주거래은행을 찾았지만 ‘퇴짜’를 맞았다.

야나이 회장은 “그때 지점장이 많은 돈을 빌려줬더라면 오히려 실패했을 수도 있다”며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고 회고했다.

유니클로는 낮은 가격을 무기로 1990년대 전반 실적이 오르면서 1994년 히로시마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성과가 크게 오르지 않았다. 위기감을 느낀 야나이 회장은 젊은 간부들의 조언을 수용해 ‘ABC(All Better Change) 개혁’에 착수했다.

ABC개혁은 1998년 6월 유니클로가 전사적으로 들고 일어선 업무 개선 운동이다. “이미 만들어진 상품을 어떻게 팔 것인가가 아니라, 잘 팔리는 상품을 얼마나 빨리 파악하고 많이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 이는 100% 상품 판매를 전제로 기획부터 생산,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유니클로가 총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중국 내 위탁공장 수를 140여 개에서 40개로 축소했다. 국내 제조업체 생산을 위탁하는 중간과정도 없앴다. 각 계절별로 400품번까지 있던 상품번호를 절반 이하로 줄였다.

야나이 회장은 일찍이 유니클로를 미국의 ‘갭’이나 영국의 ‘넥스트’와 견줄 만한 제대로 된 SPA(자가상표부착 유통방식ㆍ의류 기획 디자인부터 생산, 제조, 유통판매까지 전 과정을 한 회사가 맡는 사업방식) 회사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는 1985년 태국을 방문해 중국산 캐주얼 의류가 매우 싼값에 대량판매되는 것을 목격했다. 이에 중국 상하이, 광저우 등에서 직접 수입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생산비를 10분의 1로 줄였다. 이후 1987년 홍콩의 지오다노가 갭과 흡사한 SPA모델로 성공한 사례를 보고, 유니클로에도 SPA 모델을 도입키로 결정했다.

ABC개혁은 야나이 회장이 꿈꿔온 ‘SPA회사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일본의 의류회사들은 통상 하나의 상품을 수천개 단위로 발주한다. 이에 비해 유니클로는 ABC개혁 이후 10만개, 20만개를 발주할 수 있었다. 유니클로는 공장의 최대 수주처가 됐고, 충성심을 얻을 수 있었다.

▶“반품없는 100% 완전 매입”…‘플리스’ 대히트=오고오리상사와 유니클로는 매출과 사업규모 면에서 굉장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세가지 공통점이 있다. 반품없는 매입 거래를 하고, 염가판매를 무기로 삼은 것, 그리고 각 상품별로 따로 관리를 했다는 점이다.

그 첫번째인 ‘반품없는 100% 완전 매입’은 지금의 유니클로 경영방침에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오고오리상사는 위탁판매 위주였던 일본 의류업계에서 나홀로 완전매입을 해오면서 업계의 아웃사이더로 간주됐다. 하지만 이런 고집은 유니클로가 1980년대 후반부터 중국 현지 생산계획을 추진할 때 강력한 무기가 됐다.

유니클로의 기본 방침은 패션성이 있는 고품질의 기본 캐주얼을 최저가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최저가 전략으로 거둔 성공이 바로 ‘플리스(fleece) 붐’이다.

당시 유니클로가 미국의 유명 제조업체로부터 매입해 팔고 있던 폴라 플리스 가격은 4900엔(약 5만1000원)과 5900엔(약 6만1000원)이었다. 이를 유니클로가 자체 생산해 1900엔(약 1만9800원)에 판매해, 대히트 상품이 됐다. 캐주얼 업계에서는 50만벌 이상 판매하면 히트상품이라고 한다. 유니클로는 1998년에 플리스 200만벌, 1999년에는 850만벌, 2000년에는 2600만벌을 판매했다.

플리스는 대히트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유니클로는 싸네, 별로겠지”라는 인식을 “유니클로는 싼데도 좋네”라는 쪽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저가정책 포기”…15년 연속 성장=야나이 회장은 새로운 사업에 도전했다가 여러번 실패했다. 야심차게 진출한 영국과 중국에서 고전했고, 유기농 식품과 야채사업을 시작했다가 철수하기도 했다. 새로 론칭한 여성복과 남성복 브랜드도 실패했고, 몇 차례 인수합병(M&A)에서도 좌절을 겪었다. 이에 매출이 2002년 3442억엔, 2003년 3098억엔으로 하락했고, 영업이익도 감소했다.

그러자 “고객 수요가 포화점에 이르러 대량생산판매 방식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유니클로는 2004년 9월 전국 신문에 “유니클로는 저가 정책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가격에 비해 좋은 상품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좋은 상품을 만들테니 사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는 일본 도레이 사와 소재 개발에 나서 발열기능 내의 ‘히트텍’을 선보였다. 히트텍은 전세계에서 1억장 넘게 팔렸다. 2004년 말에는 미국 뉴욕에 연구개발(R&D)센터도 만들어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디자이너들을 기용했다.

그 결과 유니클로는 2003년 이후 15년 연속 성장했다. 매출은 그 사이 7배가 됐다. 과거 일본에서 사양산업으로 불렀던 의류업으로 아시아 최대, 세계 3위 의류브랜드를 일궜다. 유니클로는 스페인의 ‘자라’, 스웨덴의 ‘H&M’에 이어 글로벌 SPA업계 3위다. 현재까지 전세계 21개국에 진출해 약 2068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세계 유니클로 직원수는 12만4679명에 달한다. 한국에서는 2005년 진출 이후 13년 연속 성장하고 있다.

장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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