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집단 지정 “녹슨 규제”하위 기업 성장만 막는다

기업규모차 83배지만 일괄 규제

IT벤처도 대기업집단…재벌 ‘낙인’

“낡은 틀 폐기…사후규제 전환을”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막기 위해 1987년 도입된 대기업 집단 지정 제도가 매년 실효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대와 맞지 않는 사전적 규제가 기업활동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59곳 내에서 자산 규모 최상위와 최하위 집단은 각각 1위 삼성 414.5조원, 59위 다우키움 5.0조원으로 그 격차가 82.9배에 달했다. 2009년 33.6배, 2016년 68.3배에서 빠른 속도로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대기업 간 격차가 100배에 달할 정도로 극심해졌지만 이들은 같은 감시망에 포함됐다.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34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내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계선에 있는 기업들은 규제에 막혀 성장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규모를 더 늘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기이한 모습을 보인다.

주먹구구식으로 대기업 집단이 지정되는 일도 되풀이되고 있다. 공정위는 각 대기업 집단을 규율하기 위해 먼저 동일인(총수)을 지정한다. 동일인을 중심으로 친족과 계열사, 임원 등의 범위를 확정하기 때문이다. 이때 동일인 개념이 법에 없어 매번 공정위의 자의적 판단이 이뤄진다.

올해도 공정위는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한진에 ‘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동일인을 적어 내라고 했다. 한진이 결정하지 못하자 공정위는 직권으로 조원태 한진칼 회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조원태 회장이 향후 그룹을 지배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게 판단 근거였다.

이 과정에서 공정위는 기한 내 자료를 내지 못하면 검찰에 고발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재판에 넘겨질 경우 2년 이상의 징역이나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조원태 회장은 아직 상속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그룹에서 발생되는 문제를 모두 법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자본시장법, 관세법 등 약 38개 법이 공정위의 기준에 따라 대기업 집단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제도를 현 체제에 적용하려다 보니 이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사회 중심 지배구조와 상충되는 현상도 불거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사회 독립성 강화를 통해 오너의 전횡이나 일감 몰아주기 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고, 실제로 삼성과 LG, SK는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했다. 하지만 법적 책임은 공정위가 지정한 동일인이 진다. 태생부터 상호출자 우려가 없는 IT벤처기업 카카오까지 감시대상에 포함되는 이상 현상도 나타났다.

‘재벌’이라는 낙인을 달고 사업을 해야 하고, 매년 수천 페이지의 공시자료를 준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겼다. 4세대 동일인까지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어 앞으로 친족, 혼인에 따른 친척인인족 관계를 따져 계열회사를 규정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전망이다.

낡은 규제 틀을 폐기하고 사후규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경제가 성숙되고 새로운 형태의 기업이 생겨나면서 누구를 동일인으로 볼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또 사전적으로 집단을 묶어 놓고 나중에 문제있으면 동일인이 책임지라는 방식은 현시대와 맞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제 제도를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지배구조 개선에 성과를 내면 제도상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홍대식 서강대 교수는 “독립경영으로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면 동일인을 ‘법인’으로 지정하는 등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며 “법인이 동일인으로 되면 사익편취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등 여러 혜택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서 재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달고 경쟁해야 하는 등 보이지 않는 장애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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