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류현진의 투구 내용을 살펴보면 한 가지 눈에 띄는 기록이 있다. 바로 리그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의 포심 패스트볼 구속이다. ‘팬그래프닷컴’에 의하면 류현진의 올 시즌 포심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은 시속 90.9마일(약 146km)을 기록했다. 지난해 MLB 평균 포심 패스트볼 구속인 92.8마일(약 149km)보다 현저히 느리다.
투수에게 최고의 무기는 빠른 공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빠른 구속은 그 자체로 훌륭한 무기다. 그렇다면 류현진은 리그 평균 이하의 구속을 가지고 어떻게 MLB를 평정하고 있는 것일까? 비결은 바로 변화구의 완성도와 제구력이다.
류현진은 올 시즌 포심 패스트볼과 더불어 투심 패스트볼, 커터, 체인지업, 커브 등 총 5가지 구질을 사용하고 있다. MLB 데뷔 이래 포심의 구사 비율(30.8%)이 가장 낮아진 반면, 지난해 장착한 투심 구사율이 14.3%에 달한다. 류현진의 투심은 시속 90.4마일(약 145km)로 포심과 거의 구속차가 나지 않으며, ‘지저분한 공끝’으로 무수히 많은 땅볼을 유도해내고 있다.
커터의 성공적인 장착 또한 눈에 띈다. MLB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은 체인지업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재, 커터라는 또 하나의 무기가 추가됐다. 류현진은 지난해까지 주로 우타자를 상대로만 땅볼 유도 목적으로 커터를 구사했다. 올 시즌에는 좌타자를 상대로도 헛스윙을 유도해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커터를 던지고 있다. 현재까지 류현진의 커터는 피안타율 0.150, 피장타율 0.275을 기록하며 체인지업(피안타율 0.121, 피장타율 0.207)에 이어 두 번째로 훌륭한 기록을 보이고 있다.
제구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류현진은 자타공인 현재까지 MLB 전체를 통틀어 가장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다. 9이닝 당 볼넷 허용 1위(0.516), 탈삼진/볼넷 비율 1위(18.0)의 압도적인 기록이 보여주듯 많은 탈삼진을 잡아내면서도 볼넷을 거의 내주지 않고 있다. 아무리 변화구의 각이 예리하더라도 원하는 곳으로 제구가 되지 않는다면 타자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아직 시즌 초반에 불과하지만, 현지 언론에서 사이영상 후보로 류현진의 이름이 언급되는 등 류현진은 그야말로 ‘역대급’ 페이스를 보이고 있다. 100마일을 넘나드는 강속구를 뿌리지는 않지만, 완성도 높은 변화구와 제구력을 바탕으로 리그를 정복하고 있다. FA 재수 시즌을 맞아 지금의 환상적인 모습을 시즌 끝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