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식 익숙한 젊은층 ‘제2의 뇌’ 위험신호

염증성 장질환 증가 추세

4주 이상 복통·혈변 동반땐 ‘궤양성대장염’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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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김모(22)씨는 고향이 전라도지만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보니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자취를 하다 보니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 먹기가 힘들다. 그래서 먹기 편한 편의점 음식이나 패스트푸드, HMR(가정간편식)을 자주 먹게 된다. 그런데 김씨는 몇 달 동안 설사에 시달리고 있다. 원래 장이 예민한 편이었지만 요즘에는 그 증상이 점점 심해지 고 있다. 며칠 전에는 결국 복통이 심해지고 피가 묻은 변까지 나오자 병원을 찾았다. 대장내시경 검사 결과 궤양성대장염 진단을 받았다.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염증성 장질환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즉석식품이나 간편 음식을 즐겨먹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환 자가 증가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80년대 드문 질환에서 최근 젊은층 환자 증가=‘염증성 장질환(Inflammatory Bowel Disease)’이란 장내 세균을 포함한 인체 외부의 자극에 대해 몸이 과도한 면역반응을 보이면서 만성 염증이 발생하는 희귀 난치성 질환이다. ‘크론병’과 ‘궤양성대장염’ 두 가지 질환을 모두 포함하는데 두 질환은 유사하면서도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둘 다 만성적인 염증을 동반하지만 크론병은 입부터 항문까지 모든 소화기관에, 궤양성 대장염은 대장에 국한되어 증상이 발생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크론병보다는 궤양성대장염이 더 흔하다.

염증성 장질환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아주 드문 질환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서 환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최근 아시아지역 염증성장질환 발생 보고 연구에 따르면 국내의 경우 크론병은(1986~1990년) 10만명당 0.05명, 궤양성 대장염은 0.34명이었던 것에 비해 2006~2012년에는 크론병 3.2명, 궤양성 대장염 4.6명으로 그 발생 빈도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높은 발생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대~30대의 비교적 젊은층에서 자주 발견되는 것이 특징인데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자주 나타난다.

4주 이상 혈변과 설사한다면 ‘궤양성대장염’ 의심=궤양성대장염은 점액이 섞인 혈변과 설사 증상이 여러 번 반복되고 대변 절박감이나 잔변감, 복통 증상 등이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지속적인 염증은 대장암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요인이다.

궤양성대장염의 경우 유전·환경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데 북미와 북유럽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지만 최근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와 개발도상국에서 발병률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서구화된 식생활이 궤양성대장염 증가의 주된 원인이라고 보는 연구들이 많다. 이런 식습관을 통해 장에 흡수되는 물질이 아시아인의 장 속에 분포하는 미생물들과 조화하지 못해 장을 공격하는 염증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제설탕이나 패스트푸드, 마가린 같은 고당질, 고지방 식품을 많이 먹으면 궤양성대장염 발생이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궤양성대장염과 같은 염증성 장질환은 설사나 복통이 한 달 이상 지속된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이창균 경희대병원 염증성장질환센터 교수는 “나이나 성별을 떠나 설사나 복통이 4주 이상 지속되거나 혈변이 보일 때는 대장내시경 검사를 해야 한다”며 “흔히 대장내시경을 50대 이후 대장암 검진을 위한 검사로만 생각하는데 젊은 사람들도 증상에 따라 필요한 검사”라고 말했다.

반면 크론병은 복통, 설사, 전신 나른함, 항문 통증, 하혈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크론병 역시 꾸준히 느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크론병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4년 1만6700명에서 2018년 2만2400명으로 34%나 증가했다. 특히 사회생활과 경제활동이 활발한 15~35세에 진단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최근에는 10~20대의 젊은 연령에서 눈에 띄게 늘어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차재명ㆍ곽민섭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크론병 10대 발병률이 2009년 10만 명 당 0.76명에서 2016년 1.3명으로, 20대는 0.64명에서 0.88명으로 각각 증가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육식과 즉석식품의 섭취가 증가한 것이 발병률을 높인 것으로 분석됐다.

차 교수는 “젊은 나이에 크론병이 생긴 경우 더욱 조심해야 한다”며 “40세 이후에 발병하면 증상도 비교적 경미하고 경과도 좋은 편이지만 10대에 발병한 경우 증상이 심할 가능성이 높다. 복통·설사에 자주 시달리고 장에 염증이 생기면 영양분의 흡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체중감소나 성장부진까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크론병의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유전적 소인, 생활환경, 비정상적인 면역계 반응, 장내 세균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 피하고 금연ㆍ금주 필요=염증성 장질환의 다양한 원인 중에는 음식도 하나의 원인으로 추측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진 원인 음식은 없다. 차 교수는 “음식을 가리기 시작하면 오히려 잘못된 식습관 때문에 영양결핍이 생길 수 있으므로 염증이 심한 급성기가 아니라면 음식을 가리지 않아도 한다”며 “어느 한 영양소가 부족해지지 않도록 골고루 잘 먹고 영양상태가 좋아지는 것이 오히려 약물에 대한 반응도 좋게 하고 전신 상태를 호전시켜 성장을 촉진한다”고 말했다.

다만 술이나 커피는 장을 자극하여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병이 악화된 상태라면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김현건 순천향의대 소화기내과 교수는 “약물치료와 동시에 중요한 것이 바로 환경 인자의 조절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자극적인 음식과 기름진 음식, 인스턴트 음식, 음주, 흡연 등은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증상 악화 유발 요인은 되도록 피하고 바른 영양섭취 및 지속적인 약물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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