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를 가다②) 나일강 발원 바하르, 루시의 아디스

한국인들에게 손을 흔드는 에티오피아 어린이

[바하르다르= 헤럴드경제 함영훈 선임기자] “엔데멘 아데루~!” (에티오피아 아침인사)

에티오파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아침은 여느 아시아, 유럽의 대도시 처럼 분주하다.

수도의 중심가는 가운데엔 철도가 놓였고, 좌우로 도로가 뚫려 차와 기차가 나란히 달린다. 트리니티 성당 앞 대중교통 정류장에는 직장과 학교로 가려는 어른과 청소년들이 질서 있게 자기가 탈 차례를 기다린다.

아디스아바바는 통일 에티오피아의 세번째 수도이다. 지명은 새로운 꽃이라는 뜻이다. 곳곳에 한자로 표기한 중국기업들의 빌딩 신축사업이 한창이다.

유럽차와 일본차가 꽤 많이 보이는 가운데, 현대차, 기아차도 심삼찮게 눈에 띈다. 유럽에 일찌감치 출시됐다가 최근 국내에도 선보인 기아의 해치백 ‘씨드’가 이국적인 외양인데도 한국 상표를 달아 이채롭다. KT는 지금 아디스아바바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아디스아바바는 고대도시 악숨, 중세도시 랄리벨라, 곤다르에 비하면 신도시이다. 20세기 부터 현대 에티오피아의 중심이 됐다.

교육과 단합된 국민의 힘으로 부국강병을 꾀했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족적이 곳곳에 배어있다.

1940년대 이탈리아 제국주의 군대를 물리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시간을 소중히 하라. 찬란한 미래를 위해’라는 말로 청년과 아이들을 다독였다.

에디오피아의 부흥과 발전을 위한 그의 이 훈시는 국립박물관 앞마당에 청소년들을 격려하는 조각상과 함께 걸려 있다. 황제가 도모한 근대화와 제국주의 세력 척결을 목도한 국제사회는 갖가지 선물로서 에티오피아를 응원했는데, 멀리 멕시코 까지 강인한 표정의 석상을 보내오기도 했다.

318만년전 최초의 인류, 에티오피아의 루시

국립박물관은 최초의 영장류로 판정된 ‘루시’의 화석을 보관하고 있다. 루시는 약 318만년전 최초의 직립보행 유인원이며, 1974년 고고학자 요한슨 등이 에티오피아 북동부 하다드 사막에서 발견했다. 구석기의 선진기술이던 주먹도끼도 발견됐다. 이 석기는 한국 연천,단양, 프랑스 애쉴리에서 발견돼, 생래적으로 우수한 기술 DNA를 가진 인류의 징표로 회자된다.

에티오피아에 가면 기린, 영양, 물소 실컷 보겠지 하는 마음으로 찾았던 한국의 여행자는 에티오피아의 수천년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유물들과 이 나라 예술가들의 회화, 부조 등 작품을 보면서 감동의 ‘반전매력’을 느끼고 만다.

그림 같지만 가까이 가보면 철재와 마티에르의 질감이 독특한 물감 덩어리가 혼합된 추상 부조를 보면서, 에티오피아 예술가의 독창성을 느낀다. 맹기스투가 그린 ‘우먼 오브 스트리트’에서는 에티오피아 미녀들의 발랄함이, 게브레키리스토스의 ‘협동을 통한 발전’에서는 미래를 향해 의기투합하는 국민들의 결집력이 잘 드러난다.

툴루구야 작가의 ‘아프리카’ 작품

이탈리아 침공을 물리진 전쟁기록회화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점, 툴루구야 작가의 ‘아프리카’를 보노라면 가슴 한 켠이 아리다. 아프리카 지도 모양의 나무 밑둥지가 아프리카 사람의 고통스런 얼굴인데, 나뭇가지들은 짜임새 있게 위로 뻗어나가며 인간의 두뇌와 지혜를 구현하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원래 잘 할수 있는 사람들인데, 제국주의자들 때문에 힘겨웠지만, 지혜롭게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트리니티 성당에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숨결이 느껴진다. 에티오피아의 두 번째 규모 정교회 성당으로써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함을 자랑한다. 황제가 이탈리아에 대항해 싸운 에티오피아 용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했다.

내부에는 셀라시에 황제 부부의 무덤과 121명의 한국전 참전 에티오피아 군인들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한국여행객들은 이곳에서 짙은 동지애를 느낀다.

엔토토산은 해발 3300m로 아디스아바바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벽화와 박물관으로 유명한 마리암(Maryam) 교회 등도 이 산에 있어 자연생태와 문화재의 향기를 모두 흡입한다. 마리암교회는 랄리벨라 암굴교회군에도 있다.

인천 대불호텔과 비슷한 시점인 120년전 아디스아바바에도 최초 근대호텔 타이투호텔이 생겼다. 19세기 바이올린 등을 보면서 이들이 클래식음악에도 관심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바하르다르(Bahar Dar)로 가기 위해 아디스아바바 볼레공항 국내선 청사에 가면, “손님들, 좋은시간 보내세요(Have a Nice time)”라는 인사말이 벽 한켠을 가득 채운다.

하라르다르 타나호의 아침

바하르다르는 호수의 도시이다. 적도에서 지중해까지 6700㎞에 달하는 나일강 중 수원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청(靑)나일의 발원지, 나타호수를 낀 호반의 도시이다. 이 호수는 해발 1830m의 고원지대에 있어 유람선을 타면 늘 시원한 바람이 여행자의 이마에 닿는다.

크기가 서울 면적의 6배인 에티오피아 최대 호수이다. 그래서 호수에서 수평선을 볼 수 있다. 강 줄기 네 개가 흘러드는 이 호수는 청나일강의 유수지이다.

타나호 페리카나의 우아한 자태

유람선 주변엔 페리카나 가족이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은 채 유유자적 헤엄치며 노닌다. 페리카나가 축 처진 턱주머니를 자랑하며 날아가는 사진을 많이 봤지만, 헤엄치는 모습은 처음 본다. 턱주머니가 감춰지면서 부리가 아랫쪽으로 향하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약간 숙이게 되는데 그 자태가 우아하다. 물을 박차고 날아오를 땐, 엘레강스 우아미(美)가 상남자 포스로 돌변하며, 역동적이다.

장판 같은 물결 위로 주민 몇몇이 길다른 쪽배를 노저어 온다. 속도가 의외로 빠르다. 마치 1인승 카누경기 선수 같다. 다인승 조정경기를 보듯 파피루스를 엮어 만든 길다란 배 ‘탕크와’에 일렬로 올라탄 어부들이 호흡 맞춰 노젓는 모습도 보인다.

이 호수 안에는 37개의 섬들이 있고, 섬과 반도에는 20여개의 수도원이 있다. 종교 갈등 국면에 숨어든 에티오피아 정교회 수도사들이 지었다.

한국인을 위해 베일에 가려있던 성모-예수 성화를 잠시 공개한 미레트 수도원

그 중 미레트 수도원(Ura Kidane Mihret Monastery)은 단순한 수도원을 넘어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신앙을 매개로 모여 기도하고, 마을의 일들을 공유하며, 비상시엔 돌종을 두드려 피신하고 중지를 모았다. 황토에 풀입을 엮어 단단하면서도 통풍이 되도록 벽을 쌓았고, 대나무 지붕 위에는 멀리 지켜보는 능력을 가진 타조의 알 모양 흰돌 8개를 엮어 성물을 얹었다. 신이 늘 혜안으로 지켜보며 수호해준다는 뜻이다. 벽에는 예수와 성모의 일대기가 묘사돼 있다. 성물 지팡이는 자기 몸을 의탁하기도 하는 다용도 신앙생활물품이다. 우리의 장구같은 악기를 두들기며 흥이 있는 신앙생활을 이어가기도 했다.

벽화로 성경의 가르침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성모가 예수를 안고있는 그림은 신성시 여겨 베일로 가린다. 수도원 관리자는 한국인 여행자들을 위해 1초간 베일을 걷어주는 특별배려를 했다. 화산활동으로 호수와 구릉이 만들어졌음을 말해주듯 제주도 같은 현무암이 많다. 화산활동때문에 빚어진 돌들은 울림이 크고 길다. 수도원앞에 있는 돌종을 작은 돌로 치면 쩌렁쩌렁 울린다.

우기때의 바하르다르 청나일 폭포. 건기때엔 두세 줄기가 내린다. [사진=혜초여행 김홍명 매니저]

장쾌한 블루나일 폭포로 가려면 나루터에서 작은배를 타고 건넌 뒤 15분가량을 걷는다. 잘 생긴 가이드가 유창한 영어로 이곳 식생을 친절하게 설명하다 문득 씨익 미소짓자, 한국인 여성여행자들의 입이 귀에 걸린다. 이 나라엔 희한하게도 미남 미녀가 유난히도 많다.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최고 46m 높이의 블루나일폭포는 현지어로 ‘연기가 나는 물’이라는 뜻의 ‘티스 아바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우기때엔 아프리카 제1폭포 빅토리아 처럼 바위둑을 범람하듯 두툼한 물줄기가 떨어지면서 물안개와 작은 무지개를 빚어내지만, 건기때엔 물의 양이 크게 줄어 두세 줄기를 바닥에 꽂는다. 한국인 여행자들이 찾은 5월은 건기라서 떨어지는 물의 양은 적었어도 나일강 문명을 빚어낸 원천이라는 커다란 의미는 변치 않았다.

이제 우리는 옛 수도 곤다르, 악숨 쪽으로 향한다.

[자료협조= 에티오피아 정부, 에티오피아 항공, 혜초여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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