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한국의 위기탈출 ‘울타리 세우기’부터 시작하라

‘총·균·쇠’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인류의 위기극복 성공요소 12가지 제시

자기평가 통한 선택적 변화가 미래 결정

“아무런 전조도 없이 위기가 닥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개인과 국가의 경우 대부분의 위기는 오랜 기간 축적된 점진적 변화의 결과이다. 오랫동안 갈등을 겪은 부부는 이혼하기 마련이고, 칠레의 쿠데타도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축적되어 나타난 결과였다. ‘위기’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압력이 갑자기 폭발할 때 닥친다.”

인류역사의 발전 과정을 큰 그림으로 제시해온 ‘총·균·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60여년 문명 대탐험의 현재진행형 버전을 내놨다. 신작 ‘대변동:위기, 선택, 변화’(김영사)는 전작 ‘총균쇠’ ‘인류의 문명’ ‘어제까지의 세계’를 잇는 연장선상으로, 인류가 당면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지 통찰과 혜안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닥치면 더 나은 대처법을 찾거나 부적절한 대처법을 시도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게 된다. 이런 과정은 보통 6주 이내에 이뤄진다.

저자는 위기를 성공으로 전환시키는 지점을 날카롭게 포착, 어떤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는지 일반화를 시도하는데, 1942년 500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낸 보스턴 나이트클럽 화재사건과 자신의 위기경험을 털어놓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이트클럽 화재는 개인적 위기이자 희생자가 너무 많아 사회적으로도 새로운 해결책의 필요성이 제기된 위기였다. 그의 첫 위기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캠브리지에서 생리학으로 대학원과정을 밟던 중 과학자로서의 진로에 대한 회의였다. 공부를 계속해나갈 지에 의혹이 깊어졌고, 통역사가 되겠다고 부모님께 털어놨다. 묵묵히 듣고 있던 아버지는 반년 정도 더 연구하다가 그 때도 아니라면 포기해도 늦지 않을 거라는 조언을 해줬고, 그는 순순히 이를 따랐다. 케임브리지로 돌아가 쓸개 연구를 다시 시작한 그는 주목할 만한 연구성과를 얻어 박사학위를 끝내고 하버드와 UCLA에서 생리학자로서 교수직을 얻게 된다.

처음 위기 상태에 빠지면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워지는 일종의 공백, 마비상태가 된다. 저자는 이런 위기 상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12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그 중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울타리 세우기’가 있다. 실제로 잘못된 것을 구체적으로 찾아내 “내 문제는 이 울타리 안에 있어. 바깥쪽에 있는 것들은 모두 정상이고 전혀 문제가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문제를 명확히 해, 변해야 할 것과 계속 고수해야 할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 외에 도움요청, 정직한 자기 평가, 인내, 유연한 성격, 개인의 핵심가치 등이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된다.

저자는 이런 개인의 위기 극복 대처법이 국가에게도 해당된다고 말한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기 평가와 울타기 세우기를 통해 제도와 정책에서 변화가 필요한 것과 변할 필요가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핀란드, 독일, 일본, 인도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칠레 등 일곱 국가의 위기 사례를 집중 분석한다. 외부의 군사적 위협으로 격변을 맞은 핀란드와 일본,국내의 정치적 타협이 결렬돼 위기에 처한 칠레와 인도네시아, 점진적으로 누적된 비폭발적 위기에 시달린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 세계적 차원으로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현재진행형 위기 등이다.

일본은 근대화 과정과 2차 세계대전 두 번의 위기를 경험했다. 1853년 페리 제도의 강압에 문호를 개방한 일본의 경우 봉건제도를 포기하고 헌법과 내각제, 금융제도, 새로운 교육제도를 받아들이는 선택적 변화를 통해 독립을 지키고 열강에 진입했다. 제2차 세계이후의 위기에서도 군사강국과 천황제의 신성을 버리고 민주주의와 새로운 헌법을 택함으로써 수출경제를 발전시켰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일본이 처한 현재의 위기 상황, 이를테면 정부 부채와 인구감소, 자원 관리,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 등을 지적하면서, 낙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과거의 성공경험과 실패와 패배를 딛고 일어서는 인내심과 역량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미국이 현재 직면한 위기는 어떤가. 저자는 우선 미국 위기의 성격이 전후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처럼 서서히 진행되는 위기라는 점을 지적한다. 경제적 불평등 심화, 정치적 타협의 실종, 시민의 품격 같은 사회적 자본의 쇠퇴, 공공투자의 감소와 고급노동 인력의 경쟁 우위 상실 등이다. 풍부한 자원과 지리적· 문화적 이점에도 위기가 진행중인 미국에 대해 저자는 무엇보다 위기진단과 자기평가가 없는 점을 우려한다.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쪽을 탓하는 습관, 문제를 바로 잡으려 하지 않고 자기 보호에 급급한 태도와 오만함 등이 진짜 위기라는 얘기다. 미국이 자초한 문제를 현명하게 풀기는 커녕 이점을 헛되이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지적하는 미국 위기 해결의 관건은 울타리를 제대로 세우느냐다. 미국에서 제대로 기능하는 부문과 그렇지 않은 부문을 구분하고, 울타리 내에서 위기를 재촉하는 부문을 바꿔나가는 게 관건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7개 나라의 예는 우리의 과거, 현재 위기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저자의 위기탈출의 핵심은 ‘울타리 세우기’와 ‘선택적 변화’로 모아진다. 한국 사회도 냉정한 자기 평가를 해 볼 때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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