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립스틱·패션잡지…경제학자가 읽어낸 것은?

립스틱 많이 팔리면 경기악화…일상생활속 포착한 경제 신호

금융위기 감지하고 집 내다판 부시 경제정책 보좌관의 분석

“물가 신호는 세계 곳곳에서 사회 동요를 촉발하고, 이런 사회 동요는 세계 경제라는 천을 짜는 공통된 씨실과 날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공짜 돈과 저금리가 선진국의 자산 가격과 기관을 지탱해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초저금리 정책의 성공은 사회에서 의미가 큰 자산의 가격을 상승시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에 가난한 사람들이 받는 압박이 세지고 있다.”(‘시그널’에서)

#2009년 6월 패션잡지 영국판 보그는 벗은 몸의 진실이란 제목으로 세계적인 슈퍼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의 누드 사진을 표지로 실었다. 당시 보디아노바는 아름다운 몸매로 표지 전면을 장식했는데, 당시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였다.

보그가 이 사진을 통해 무엇을 의도했든 상관없이 경제학자가 여기서 읽어낸 건 간단치 않다.

경제학자이자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에서 경제정책 특별보좌관을 지낸 피파 맘그렌은 패션잡지가 아무런 패션도 제시하지 않은 이 표지에서 이상 신호를 포착했다.

금융위기로 신청만 하면 발급되는 신용카드로 겁없이 펑펑 써대던 젊은 고객 대신 새로운 고객 탄생의 신호를 읽어낸 것이다. 진짜 소득을 올리는 현실의 여자, ‘플러스 사이즈’ 모델의 기용이 늘어날 것이란 신호다.

금융위기 이후 패션산업은 누가 새 고객이 될지 감을 잡지 못한 상태였다. 맘그렌은 보그 패션팀이 당시 무언가 ‘신호’를 보내려는 의도같은 건 없었다는 걸 3년 뒤 확인했는데, 그 점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예술가를 비롯,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시대정신을 작품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보그 표지는 변화와 불확실성을 감지하고 알게 모르게 반영한 것이란 분석이다.

맘그렌은 공직생활과 오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일상 속에서 보내는 신호를 통해 경제를 읽는 법을 담은 ‘시그널’을 자비로 출판했는데, 아마존 경제분야 1위에 올랐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저자에 따르면, 경제는 상황이 바뀔 때마다 새 신호를 방출한다. 그리고 그런 신호는 숫자보다는 일상 생활 속에서 포착이 가능하다. 경제학자와 전문가들이 아집에 사로잡혀 숫자 계산만 하고 있는데, 작은 일화도 엄격한 숫자 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 예로 립스틱은 경기와 밀접하다. 립스틱은 경기악화에 더 느는 경향을 보이는데 옷은 포기해도 감당할 수준의 립스틱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때 에스티 로더의 립스틱과 립글로스 매출은 크게 늘었다. 립스틱은 심지어 전쟁과 기아의 공포에도 살아남는다. 한 증언에 따르면, 나치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영국 포로를 구하고 도착한 물품에 립스틱이 한 무더기 있었다. 립스틱은 희망의 신호이기도 한 것이다.

저자는 2006,7년 금융위기가 오기 직전, 감지했던 신호들을 열거하며, 당시 집을 팔고 싼 임대 주택으로 옮긴 자신의 얘기와 차고를 지으려던 이웃이 두 번이나 선수금을 날린 예를 들려주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 들에 결정적 신호가 있음을 강조한다.

흔히 이런 신호를 파악하는 건 경제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여기는데, 이 분야 전문가이기도 한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금융 전문가들이 신호를 놓치거나 잘못 해석하는 건 다반사다. 오히려 예술가와 의류 소매회사, ‘보그’ 편집자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신호를 간파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완벽하게 갖고 있다는게 저자의 분석이다.

중요한 건 신호를 어떻게 인지하고 해석하느냐다. 신호는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중요한 신호, 허섭한 신호가 있기때문이다.

한 예로, 디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이다. 절대다수는 디플레이션이 미래를 암담하게 만들 가장 큰 위협이라고 생각하는가하면, 극소수는 인플레이션을 가장 큰 위협으로 여긴다. 양쪽 다 신호는 있다. 역사상 최저 금리 시대에 채무 부담은 날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이는 디플레이션과 가격하락, 취업난 심화를 불러올 것이란 신호다. 인플레이션 신호도 있다, 부동산은 물론, 다이아몬드,미술품에 이르기까지 최고가를 경신하는 실물자산 가격이 그 신호다.

변화를 보여주는 다른 신호들도 있다. 대출담당자가 해고당하고 여신 담당자가 회의에서 배제되는 건 사람 보다 알고리즘을 더 믿는다는 신호다. 거래량과 거래속도가 은행 주가를 끌어올리는 주요 견인차가 됐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저자는 “거래의 질 보다 거래량이 주가 상승을 견인하는 요인이 된다면 무언가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유럽 이민문제는 재정 취약성과 관련이 있다. 영국으로 터전을 옮기는 유로존 이민자들의 증가는 뚜렷한 신호다. 특히 프랑스인들의 런던 이주 급증은 프랑스의 높은 세금, 고실업률, 저성장이 이유다. 영국의 학교들은 발빠르게 프랑스어 수업을 도입하고 있는데, 조만간 프랑스 레스토랑이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저자는 예상한다.

그런가하면 희소 자원을 놓고 벌이는 분쟁과 다툼은 세계 경제가 전쟁 프리미엄 기조로 변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저자는 “신호에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며, “신호가 보내는 의미를 알아챌 수 있다면 변화를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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