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 들먹이는 일본, 강제징용 배상판결 두고 ‘3권분립’무시·추가보복 명분 쌓기?

고노 외상, 남관표 대사 불러 “한국 국제법 위반 방치 매우 유감”

일본, 강제징용 ‘개인배상 청구권 소멸 아냐’ 한국 대법결론에 ‘청구권협정위반→국제법위반’ 주장

한국 “사법부 존중…3권분립 무시 못해”

일본 국제법 거론 ‘추가보복 명분쌓기’ 분석도

일본 정부가 19일 남관표 주일 대사를 불러 초치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한국이 중재위 개최에 응하지 않아 “매우 유감”이라며 “(한국이)국제법 위반 상태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연합=헤럴드경제]

[헤럴드경제=윤현종 기자] 일본 정부가 19일 남관표 주일 대사를 불러 초치했다.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해 자국이 18일까지로 요구한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중재를 거부했다며 항의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한국이 중재위 개최에 응하지 않아 “매우 유감”이라며 “(한국이)국제법 위반 상태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로써 일본 정부는 대법원이 약 9개월 전 내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따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사실상 마무리 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핵심 명분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빌미로 한 국제법 위반이다. 그러나 우리 측은 이 사안이 ‘개인배상’에 대한 판결로 청구권협정 적용대상과 무관하며, 사법부 판단인 만큼 ‘3권분립’ 차원에서 응당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쉽게 말해 일본이 국제법 위반을 이유로 다른나라의 민주주의적 가치까지 뒤흔드는 모양새다.

▶韓 사법부 판결에 ‘국제협정’ 들먹인 日 = 청와대는 이미 17일 한국 대법원이 판결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두고 일본이 ‘제3국에 의한 중재위원회 구성’을 제안한 것에 대해 ‘수용 할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도 16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이 제시한 제3국 중재위 설치 시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묻자 “18일은 일본이 언급을 하고 있는 날짜인 것 같다”며 “현재로서는 말씀드릴 게 없다”고 했다.

18일 당일에도 같은 입장을 반복했다. 그간 한국 정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한 대법 승소 판결을 ‘3권분립’ 차원서 존중할 것이란 입장을 기회 있을 때마다 국내외적으로 피력해왔다.

정부 관계자는 17일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도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3권이 분립돼 있다 민주주의 국가 인 한국은 1965 년 협약이 인신 매매에 대한 범죄와 강제 노동에 대한 인권 침해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한국이 일본의 이같은 제안을 받지 않은 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다. 해당 제안의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선 지난해 10월 30일 우리 대법원이 내린 강제징용 배상판결 후 일본과 한국의 움직임을 먼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 판결 이후 지난 1965년 6월 체결한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분쟁 해결 절차에 들어갔다. 근거 조항은 ‘협정 3조’다.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이 발생하면 ‘양국간 외교적 협의(3조 1항)→제3국 포함 중재위 구성(3조 2항)→제3국에 의한 중재위 구성(3조 3항)’ 등 3단계로 해결하게 돼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은 지난 1월 초 3조 1항에 의거 ‘외교적 협의’를 요청했다. 5월 20일엔 3조 2항 근거로 ‘제3국 포함 중재위 구성’을 제시했다. 청구권 협정이 정한 중재위 구성 답변 시한은 30일이다.

한국 정부도 반응을 안 한 것이 아니다. 5월 20일서 한달이 지난 6월 19일, 외교부는 강제징용 피해자 판결에 대해 한일 양국 기업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 피해자에 위자료를 주자고 일본에 제안했다. 이 때 한국 정부는 일본이 해당 제안을 받는다면 일본 정부가 요청했던 청구권 협정 3조 1항 협의 절차(한일 양국 외교채널을 통한 분쟁해결)를 검토한다고 덧붙인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정부는 즉각 이를 거부했다. 청구권 협정 3조 3항에 의거, 제3국 중재위 구성을 요구했다. 청구권 협정 3조 1항이 아닌 3항의 마지막 절차로 가자는 입장이었다. 일본이 주장하는 ‘중재위 구성 시한’이 그로부터 30일이 지난 이달 18일로 잡혔던 이유다.

앞서 외교부 당국자도 16일 기자들과 만나 “협정 3조의 발동 요건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다”면서 “(한일 간에 발동하자는) 합의가 없었고 어떤 전문가도 3조 적용에 강제성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는 지난 6월 19일 일본 쪽에 제시했던 제안을 고수하고 있다.

▶추가보복 명분 쌓나= 그러나 일본 정부가 남 대사 초치 등으로 으로 우리 측 거절에도 ‘중재위 구성’을 꾸준히 주장한 것엔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사회에 ‘한국이 협상에 불응한다’고 주장하며 추가 보복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 축적이라는 것이다. 외무성 간부는 이날 요미우리 신문에 “국제법 위반 사실이 더 축적됐다. 일본은 국제법이 인정하는 대항조치를 언제든 취할 수 있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 적용이 개인배상과 무관하다는 우리 사법부 판결을 거부하는 것과 별개로 향후에도 ‘중재위 구성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빌미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를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할 계획을 갖고 있지만, 제소에 한국 정부 동의가 필요한 만큼 당분간은 제소하지 않은채 상황을 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관세인상 등의 보복 조치도 카드로 갖고 있지만, 일단은 한국 정부에 판결 후속대책 마련을 촉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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