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애의 스크린에서 삶을 묻다] 택시 드라이버

저는 꿈을 꿉니다. 길을 잃고 미로를 헤매는 꿈을… 꿈속의 저는… 길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며, 구호를 외치며 나타날 선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침내 학교에서 눈에 익었던 선배의 외마디 목소리가 들리고 하늘에 유인물이 뿌려집니다. 제 주위에는 그 선배가 외치는 구호를 따라 주먹을 불끈 쥔 채, 손을 하늘로 높이 쳐드는 학생들이 모여들죠.

하지만 저는 꿈속에서 구호 한 마디 외치지 못한 채… 두려움과 겁에 질려 어쩌지 못하고, 그렇게 학생 시위대에 휩싸입니다.

동시에 최루탄 터지는 소리와 자욱한 연기로 거리가 뒤덮이죠. 시위대의 뒤 언저리에서 헤매고 있던 저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다 저를 향해 달려오는 전경들을 보았습니다. 곤봉을 휘두르며 쫓아오는 그들을 보는 순간…

몸이 얼어붙는 듯한 극심한 공포로 저의 발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입을 벌려 소리를 지르려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괜히 손만 허둥대고 있습니다.

그때 저를 향해 내미는 손이 보입니다. 저는 그 손을 잡고 거리 한가운데로… 전경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 갑니다. 그러다 한 순간, 시위대에 휩쓸려 손을 놓치고…. 전경의 손이 제 머리카락을 움켜쥘 때쯤…. 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80년대 초반을 대학생으로 살아냈던 저는,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운동가요와 학생들이 마신 막걸리의 잔해물로 이곳저곳이 더럽혀져 있던 신촌 골목의 밤거리를… 젊음의 상징처럼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오랜만에 걸어보았던 신촌의 밤거리는 성숙되지 않은 치기 어린 욕망으로만 가득 차, 터져 버릴 듯한 아찔한 젊음만이 활보하는 곳으로 바뀌어버렸더군요.

깃털처럼 가볍게… 바람처럼 자유롭게… 세상은 이렇게 살아야 행복한 것이라며…

달콤한 환락을 보장하는 형형색색의 이글거리는 네온사인이 온 골목을 뒤덮어… 진지함을 숨 막혀하고, 삶의 무거움을 고리타분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아니… 사회를 받아들이지 못해, 불순물을 게워내듯 사회를 토악질해대던 예전의 우리들은 지금 평범한 일상인이 되어 사회의 보다 높은 곳에 자리잡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누군가의 가슴을 짓밟으며 그의 숨통을 끊어놓고 있습니다.

신촌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저 역시… 이 사회의 구조 속에서 똬리를 틀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였지요. 그렇다 보니 대학 시절만큼 밤거리를 배회할 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타의에 의해(?), 아니 밤거리의 이곳저곳이라도 기웃거리지 않으면 제 가슴속의 치미는 불길을 어떻게 참을 수가 없어서… 저 스스로의 선택으로 밤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방황했던,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왔습니다.

밤이슬을 맞으며 돌아다니다 보니, 아주 잠깐은… 그 생활이 참으로 자유롭고…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듯하여, 누군가가 이리도 즐기던 이 생활의 묘한 해방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더군요.

하지만 아주 잠깐, 해방감을 느끼게 하던 시간이 지나자… 밤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일이 너무 외로운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새벽 시간, 편의점에 앉아 하염없이 창 밖을 내다보며 커피를 마셔보아도… 밤새워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나온 후에도…

그 늦은 시간… 어디에서 모여들었는지, 북적거리는 포장마차의 한가운데에서 소주를 마셔보아도…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그 외로움과… 그럴수록 더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는 그리움으로 인해, 저는 늘 허덕이고 목말라했죠.

그때쯤 저는 두 다리로 밤거리를 헤매는 대신, 차를 운전하며 깊은 밤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밤 운전을 해본 사람이라면… 아마 알 겁니다. 그 어두컴컴한 한 밤의 운전이 얼마나 사람을 삶에 취하게 하는지… 얼마나 외로움을 가슴 사무치게 하는지…

새벽이면 새벽, 늦은 밤이면 늦은 밤… 무서울 것 없이 올림픽대로와 경인고속도로, 강변도로, 자유로를 달리며 노란 나트륨 등불과 뿌옇게 깔리는 강가의 젖은 안개로부터 제 외로움의 깊이를 재보고 기약 없이 흐르는 시간의 무심함을 야속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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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는 뉴욕의 밤거리를 달리는 사회 부적응자 ‘트래비스’의 이야기입니다.

트래비스는 월남전 참전 용사입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전투병이었으며, 어떤 정신적인 상처를 입었기에 심야 택시를 운전하고 일을 끝낸 후에도 잠을 잘 수 없는지…

그리하여 퇴근을 한 아침마다 어이하여 포르노 극장으로 향하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트래비스는 노란색 택시를 몰고 뉴욕의 밤거리를 헤맨다는 사실뿐이죠.

지하철 배기구에서 올라오는 하얀 수증기를 헤치며, OFF DUTY라는 글자를 선명하게 밝혀주는 램프를 켜고, 노란색 택시가 등장합니다.

이 노란색 택시는 우리를 도시의 온갖 더러움과 추악한 욕망으로부터 안전하고 편안한 곳으로 안내하는 현대판 요술 마차이지만 한편으로는 또 쓰레기들로 가득한 도시의 밤거리로 우리를 안내하는 악의 전령사이기도 하지요.

트래비스는 이 위험한 욕망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어두운 거리의 실체를 스크린 너머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욕망의 경계선을 뚫고 나와야 하는 전장은 만만한 싸움터가 아닙니다. 때로는 흑인 아이들의 달걀 세례를 받기도 하고 심지어 아이들이 던진 돌멩이나 휘두르는 각목에 차창이 깨지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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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 노란색 택시는 이 비정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나약한 모습에 다름 아닙니다. 자신이 없는 틈을 타, 바람난 자신의 아내를 침실 창으로 올려다보며 권총으로 복수를 다짐하는 남편의 은신처가 되어도…

술에 취해 뒷자리에 오른 두 남녀가 추잡한 욕망을 불사르는 러브호텔이 되어도… 아무 말 없이 미터를 꺾고 ‘철커덕철커덕’ 돈을 계산해야 하지요.

이는 정의에 어긋나는 불의를 보아도 못 본 척… 더러운 욕망을 채우려는 타인의 비열함도 모른 척하며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도시인과 같은 슬픈 운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뉴욕의 밤거리를 헤매던 그에게, 어느 날 금발머리의 이상적인 여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통령 선거 캠프의 홍보 담당인 베시…

하지만 그녀는 마치 모든 세상의 악과 대결하여 그것을 소탕할 이는, 세상에 자신 단 하나뿐인 것처럼 과장된 제스처를 쓰는 정치인의 앵무새에 불과합니다.

트래비스는 그녀를 이 세계의 가장 순결한 여인이라 생각하지요. 마침내, 대통령 선거 사무실에 자원봉사자를 신청한다는 명목으로 그녀 앞에 서서는 ‘당신은 외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라고 속삭입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내겐 외로움이 따랐다’라고 고백하죠.

트래비스는 결국 베시로부터 데이트 약속을 받아냅니다. 트래비스와 베시가 레스토랑에서 커피와 피칸 파이를 먹고 향한 곳은 포르노 극장…

머뭇거리는 베시에게 트래비스는 ‘이 영화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요.’ 트래비스와 베시가 자리를 잡고 앉자 화면에는 집단 난교 장면이 나옵니다. 구역질을 하며 극장을 뛰쳐나가는 베시…

베트남으로부터 뉴욕의 밤거리에 버려져… 노란 택시에 웅크린 채… 리얼 미러로 세상을 바라보고… 포르노 극장에서 삶의 위로를 받던… 그에게 자신이 위로받던 영화를 누군가와 함께 본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었겠죠.

그리고 아마도 사랑하는 연인(?)들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을 겁니다. 하지만 베시는 포르노 극장을 뛰쳐나간 후, 그의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은 물론 그가 보낸 꽃다발을 돌려보내지요.

트래비스는 역시 그녀도 차가운… 그저 그런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세상은 오직 쓰레기와 차갑고 냉정한 철면피들로만 가득 차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 트래비스…

이제 그에게 쓰레기가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짓을 일삼는 정치인, 이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정치인을 끼고도는 엘리트들… 그리고 뉴욕의 밤거리를 마약과 매춘으로 물들이는 밤의 지배자들…

그는 이 쓰레기를 자신이 직접 처단하겠다 마음먹죠. 그리고는 총을 구입해, 사격 연습을 시작합니다. 오로지 쓰레기들을 처리하기 위해서지요.

택시 운전을 끝내고 쉬는 낮 시간, 그는 쉬지 않고 거울을 보며 살인 동작을 연습합니다. 거울을 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살인 동작에 열중하는 트래비스는 절대자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거울을 보며, ‘나? 나 말이야?’라고 속삭이는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는 소름이 끼칠 만큼 오싹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침대를 구르고 바닥을 구르고 총격전의 모든 가능한 상황을 미리 재현하며 살인을 준비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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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통령 후보를 저격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머리를 모히칸족의 장렬한 전사처럼 바꿔 경호원들의 눈을 따돌리려고 해 보지만 더 상황은 어려워집니다. 트래비스는 악을 응징하는 대상을 바꾸기로 하죠. 언젠가 거리에서 자신의 택시를 타고 아무 곳이나 가달라고 애원하다… 결국 포주에게 다시 끌려갔던 13살짜리 매춘부를 떠올리고는 그녀를 거리로 내몬 쓰레기 같은 포주를 처치하기로 합니다.

로버트 드 니로가 사회의 쓰레기를 처치하기로 마음먹고 저격을 연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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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매춘부 거리에 미끄러져 들어오는 노란 택시에서 트래비스가 내립니다. 그리고는 그녀의 포주를 찾아 그녀와 지내려면 얼마가 필요한지를 묻습니다. 13살의 매춘부 아이리스… 조안 포스터가 13살의 매춘부로 나와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던 바로 그 장면인 거죠.

‘나는 너와 관계를 맺으러 온 게 아니야, 너를 구하러 온 거야’… ‘나를 기억 못 하겠니, 네가 내 택시를 타서는 어디든 데려가 달라고 소리 질렀잖아’ 트래비스는 그녀에게 이런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가라고 설득하지만 아이리스는 빨리 끝내고 가라면서 트래비스의 바지를 벗기려고 합니다.

마침내 그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장면… 트래비스는 자신이 가진 돈을 아이리스에게 남긴다는 편지를 적어 아파트 테이블 위에 놓습니다.

그리고는 베시로부터 반송되어 자신의 아파트에 쌓여있던 꽃다발들을 불태우죠. 그리고는 마지막 최후의 전투를 치르는 용감한 전사처럼 밤거리의 지배자를 처단하기 위해 달려갑니다.

포주에게 돈을 건네는 대신 총을 쏘는 트래비스… 트래비스는 다시 건물로 들어가 돈을 받는 이를 향해 총알을 날리고… 그 남자의 왼쪽 손에서는 피가 뿜어집니다.

뒤쫓아온 포주가 쏜 권총에 맞아 트래비스에게도 피가 흐르고… 다시 트래비스에게 칼로 손등을 찍히는 남자, 이어 트래비스의 총이 포주의 뺨을 겨누고… 온통 빨간 피로 범벅이 된 건물, 아이리스 위에 올라 타있던 늙은 여관 주인이 마지막으로 꼬꾸라지죠.

겁에 질린 아이리스는 구석에서 울고 있고… 트래비스는 세 사람이 모두 죽은 걸 확인하고는 자기 머리에 총신을 겨눕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방아쇠를 당겨도 총알은 나오지 않습니다.

총알이 없음을 안 트래비스는 피 흐르는 자신의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대고 허무한 웃음을 지으며 총알을 발사시키죠.

이제 인간 트래비스는 죽고 사회의 영웅이 새롭게 탄생을 한 것입니다. 자신의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겨누며 피식거리던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를 기억하시는 분, 많을 겁니다.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이라는 찬사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트래비스의 그 멍한 눈동자와 약간 올라가며 뒤틀리는 입가… 그리고 흐르는 피가 낭자했던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길 때 접히던 근육의 섬세함까지…

이 모든 것들이, 보는 이의 숨을 멈추게 하죠.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된 것은 1991년… 그나마 지금 말씀드린 장면은 잘려나간 채… 살인 장면이 너무 잔인하고 가혹하다는 심의 기구의 지적이었다고 하더군요.

뉴욕의 뒷골목에서 도시의 쓰레기들을 청소한 사회 부적응자의 영웅적인 행동… 그 어떤 지도자도 해내지 못한 위대한 일을 해낸 것이 한국의 지도자들에게는 불편했겠죠.

이 사건이 일어난 뒤 아이리스는 집으로 돌아가 부모의 품에 안깁니다. 언론들은 13살짜리 창녀를 쓰레기 더미에서 구해낸 트레비스를 영웅으로 만드느라 난리들이죠.

영화의 마지막… 다시 사회로 돌아온 트래비스는 우연히 길가에서 택시를 잡고 있는 베시를 태웁니다. 그리고는 무언가 말을 건네려는 그녀를 뒤로 한 채,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집 앞에 내려줍니다.

트래비스가 운전하는 택시의 리얼 미러로 뉴욕의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사회의 부적응자, 트래비스는 영웅이 되어 돌아오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뉴욕의 밤거리는 여전히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고, 트래비스는 지금도 밤거리를 떠돌며, 노란 택시 안에 웅크린 채, 고독을 곱씹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신주쿠의 새벽 거리를 친구와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도쿄의 대표적인 환락가라 할 신주쿠의 새벽 역시, 처절할 정도로 스산하고 을씨년스럽더군요. 거리는 모두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밀물 듯이 빠져나가면, 온갖 쓰레기들만이 굴러다니죠. 이른 새벽부터 청소부는 사각거리며 도시의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네온사인마저 꺼진 신주쿠의 새벽을 밝히던 라멘집의 노란 등불이 유난히 정겨워, 저와 친구도 그곳에서 라면을 한 그릇씩 먹었었지요. 그리고 호텔로 돌아오기 위해, 거리를 나서자… 마치 뉴욕의 거리에서처럼 노란 캡을 밝힌 택시 한 대가 우리 곁에 미끄러져 왔죠.

아!… 그러고 보니, 지금 그 친구는 뉴욕에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뉴욕의 밤거리를 배회한다며 가끔 제게 소식을 전해 오지요.

오늘 그 친구가 보고 싶습니다. 저보다 먼저 한국 땅을 떠났던 그 친구와 헤어지기 전, ‘내년 크리스마스는 뉴욕 감미옥에서 보자’라며 약속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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