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동 제친 최대산유국…유가 결정권 쥐었다

중동 지정학적 위기보다 트럼프 관세에 더 민감하게 움직인 유가

2011년 셰일오일 본격 생산 이후 OPEC보다 영향력 커져

2025년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원유 생산량 합친 것보다 더 많을 것으로 전망

 

[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이란 혁명수비대가 영국의 유조선을 나포했다. 가뜩이나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로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가 높아진 상황에서 터진 대형 악재였다. 하지만 유가(WTI·서부텍사스산원유)는 5거래일 동안 오히려 0.20% 떨어졌다. 유가가 더이상 중동 긴장의 척도가 아님을 보여준 상징적인 날들이다.

올해 WTI는 배럴당 40달러 중반대에 시작해 60달러 선을 오가고 있다. 4월 미국이 이란산 석유제재 유예를 일괄 폐지한 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유가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 미국이 국방수권법(NDAA)을 통해 이란의 석유 수출 제한 및 대이란 금융거래 중단 등 제재조치를 취했을 때 유가가 100달러 가까이 치솟았던 것을 떠올리면 이란의 미군 드론 격추로 직접적 무력충돌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현 상황에서 60달러란 가격표는 오히려 싸 보인다. 미국이 이란과 관계 개선에 별다른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있고 이란도 강경파가 여전히 득세한 상황에서 지정학적 변수는 유가의 상수로 여겨지고 있다.

이제 유가를 움직이는 건 미국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퍼미안 분지를 중심으로 퍼져 있는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자들이다. 미국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원유생산국가가 됐다. 지난 2011년부터 생산에 들어간 셰일오일이 미국을 석유강국으로 만들고 있다. 셰일오일은 미국 전체 석유생산량 증가분의 97%를 차지한다.

유가는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무역협상 결렬을 선언한 뒤 무역전쟁에 따른 경기둔화 우려가 확산되면서 6월 초까지 줄곧 하락했다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하 기대감을 발판으로 반등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출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지난 1일 벌어졌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3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 소식에 유가는 7.9%나 급락하며 2015년 이후 하루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글로벌 수요 감소 우려 때문이다. 미국 CNN비즈니스는 대중국 추가 관세가 전세계 석유 수요를 하루에 25만 배럴에서 최대 50만 배럴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당초 올해 석유 수요가 전년 대비 하루에 154만 배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최근엔 122만 배럴로 낮췄다.

미국의 원유 재고량도 유가를 좌우하는 중요 변수가 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0월 인도분 WTI는 배럴당 1.7% 올랐다. 최근 사흘 연속 유가를 끌어올릴 동력은 미국의 원유 재고다. EIA는 지난주 미국 원유재고가 약 1000만 배럴 급감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석유패권 확보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CNBC방송은 미국이 전세계적으로 원유 시장이 공급과잉 상태임에도 계속해서 원유를 퍼올리면서 석유 수출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고 지난 27일 보도했다.

20190830000371_0특히 셰일오일 생산지인 퍼미안 분지에서 텍사스까지 대규모 파이프를 연결하는 유통 환경 개선으로 원유 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씨티그룹은 새 파이프라인이 미국의 석유 수출을 현재 하루 300만 배럴에서 올해 연말까지 100만 배럴 더 늘리고 내년에 추가로 100만 배럴 증가시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루에 400만 배럴의 미국산 원유가 전세계로 퍼날라질 날이 임박했다. 이는 북해산 브렌트유 전체 생산량보다 큰 것이라고 에드워드 모스 씨티그룹 글로벌상품연구 책임자는 설명했다. 만약 파이프라인 용량이 더 커져 하루 800만 배럴을 생산·유통하게 된다면 글로벌 유가 벤치마크로 손색이 없는 규모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이 되면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러시아와 사우디를 합친 것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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