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조기반환하라” 왜? 미국-중국 사이 ‘국익외교’ 시동

청와대 “국익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

미국 주도 방위비 협상판 뒤집을 수도

주한미군, ‘중국견제’ 미 전략의 핵심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 등이 청와대에서 국무회의 전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연합=헤]럴드경제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30일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 등으로 이전 완료 및 이전 예정인 총 26개 미군기지에 대한 조기 반환을 추진한다고 발표함에 따라 한미 방위비 협상의 판이 바뀔 지 주목된다.

청와대 NSC의 미국에 대한 이런 요구는 그동안 한미 방위비 협상에서 ‘돈을 더 내놓으라’고 요구해왔던 미국에 대해 우리도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중간의 총성 없는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국은 미국이 중국을 대적하기 위한 최적의 전략적 요충지다. 미국의 외교전략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중국 견제이고, 주한미군 주둔은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에게는 핵심적 요소다. 주한미군 주둔 자체가 미국의 세계전략에 있어 핵심적 요건인 셈이다.

물론,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해 주한미군의 주둔은 한국에도 큰 도움이 되지만, 중국 견제 차원에서 약 3만명의 주한미군 주둔 여건을 최대한 보장해주고 있는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5조원 인상 요구는 과도한 것 아니냐는 신호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에는 미 본토를 제외한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 기지가 있다.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로, 판교신도시보다 넓은 면적을 정부가 미국에 제공해 사실상 ‘미군신도시’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경기도 평택 일대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을 이행하기 위한 군사기지로 ‘세팅’되고 있다. 원래 전국에 걸쳐 총 91개 구역, 2억4000만㎡에 분산돼 있던 미군기지는 최근 10여년간 미군기지 이전사업을 통해 중부(경기 평택)와 남부(대구)의 2개 허브로 재편되고 있다.

미군기지 조기반환 요구..방위비 협상에도 영향?=평택 미군기지는 한반도에서 중국을 겨냥하고 또한 방어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평택역과 캠프 험프리스를 연결하는 13.5㎞의 미군 전용철도가 개설돼 미군의 초대형 군수물자를 손쉽게 보급할 수 있고, 평택항과 오산 공군기지를 통해 미군 해공군 증원전력이 언제든 신속히 전개될 수 있다. 대구 일대는 주일 미군기지에서 증원된 미군 전력 등이 집결하는 후방기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62년 캠프 험프리스로 명명된 평택 미군기지 면적은 502만㎡에 불과했지만, 10여년 전 미군기지 이전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주변 땅을 수용해 약 1465만㎡로 확대됐다. 평촌신도시가 510만㎡, 판교신도시가 921만㎡, 분당신도시가 1963만㎡, 세종시 행정복합도시가 7290만㎡ 규모인 점을 감안하면 캠프 험프리스 기지 자체가 수도권의 웬만한 신도시를 능가하는 수준인 셈이다.

게다가 경기도 평택시 송탄동 일대에 조성된 약 930만㎡의 미 공군 오산기지 부지까지 합하면 평택 소재 육군과 공군 미군기지 면적만 2400만여㎡에 이르게 된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뿐만이 아니라 미군이 주둔하는 유럽, 일본, 중동 등에도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1년에 1조원을 낸 한국에게는 1년에 5조원, 1년에 2조원을 낸 일본에는 1년에 10조원을 내라고 압박하고 있다.

유럽에 주둔하는 미군 방위비 인상도 요구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내년 112조원을 인상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국은 중동의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에도 대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일본, 유럽, 중동과 다른 전략적 요충성을 미국에 강조해 방위비 인상 시도를 상쇄하려는 것은 아닐까.

일단, 청와대 NSC 상임위는 용산기지의 반환 절차를 올해 안에 개시한다는 방침이다.

미군기지 반환이 장기간 지연됨에 따라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는 원주, 부평, 동두천 지역의 4개 기지(캠프 롱, 캠프 이글, 캠프 마켓, 캠프 호비사격장)에 대해서도 최대한 조기 반환을 추진할 계획이다.

반환이 예정됐던 주한 미군기지 중 미반환 기지는 26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80개 주한미군 기지 가운데 54개를 반환했다. 남은 26개 기지 중 19개는 반환절차 개시를 협의 중이며, 7개는 반환절차 개시 협의마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군기지 반환을 위해서는 반환개시 및 협의-환경협의-반환건의-반환승인-이전 등 5단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환경협의에 머물러 진행되지 않고 있었지만, 이번 청와대의 입장 발표는 3단계인 반환건의를 시작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이런 결정사항을 공식 발표하기 전에 미국 측에 사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협의에 따라 미국 측이 반환 승인을 하면 사실상 반환 논의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한국 정부가 일본 측에 종료 의사를 밝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에 대해 미국 측이 불만을 표출한 것과 이번 발표를 결부짓기도 한다.

미국이 한일 지소미아 종료를 두고 비판적 입장을 보이자 청와대가 “아무리 동맹 관계여도 대한민국 이익 앞에 그 어떤 것도 우선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고 대응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와 관련해 “미국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 ‘할 말은 한다’는 메시지를 미국과 우리 국민을 향해 동시에 전달한 것”이라면서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대등하게 끌고가기 위한 포석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향후 방위비분담 협상을 앞두고 우리 측이 미군을 위해 간접적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양보했는지, 이로 인해 우리 국민이 겪는 불편과 손해 역시 얼마나 큰 지에 대해 얘기하려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향한 고도의 심리전”..청 “정해진 절차 밟을 뿐”=일단 청와대는 이면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하면서 정해진 절차를 따르려는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한편, 현재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는 한미연합사령부 본부, 드래곤힐 호텔만 남아 있다. 주한미군사령부, 미8군사령부는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이전을 마쳤고, 한미연합사 본부도 평택으로 옮겨갈 예정이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지난해 6월 평택기지로 옮겼고, 미8군사령부는 그보다 앞서 2017년 7월에 옮겨갔다. 한미연합사 본부는 지난 6월 3일 평택 이전계획을 밝히면서 한미 공동실무단을 꾸려 구체적 방안을 논의하기로 해 이들도 조만간 이전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용산 미군기지 내 초중고등학교는 올해 과정을 마지막으로 폐교할 계획이고, 병원은 이미 평택으로 이전한 상태다.

애초 정부는 올해 용산기지 일대 토양 정화작업을 시작하고, 2022년부터 본격적인 공원 조성에 들어가 2027년까지 공사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올해 환경오염 치유비 등에 대한 한미 견해차로 토양 정화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용산 공원조성계획은 더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원주, 부평, 동두천 지역의 4개 미군기지에 대해서도 2013년 반환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지만 협의는 미뤄지고 있다. 여기서도 환경오염 치유비 부담 문제에서 양측의 대립이 팽팽한 상황이다.

정부는 미국과 기지 반환을 협의하면서 환경오염 치유비용을 먼저 부담하고,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미국 측에 비용을 내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환경오염 치유비용을 충당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향후 방위비 분담금으로 요구할 금액은 천문학적 수준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요구 금액을 크게 올린 뒤 적당히 깎아주는 식으로 체면도 차리고 실속도 차릴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김수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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