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애의 스크린에서 삶을 묻다]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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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남미 댄스 열풍이 불면서 탱고, 룸바, 자이브, 차차차, 살사… 다양한 종류의 춤들을 배우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미 춤 열풍의 원조는 아마도 탱고라고 할 수 있는데요… 남미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90년대 가수 윤상 씨가 진행하던 월드 뮤직이라는 FM 음악 프로그램 청취자 게시판에 글을 올릴 만큼 즐겨 들으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마 제가 남미 문화의 최고봉이라 할 탱고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음악을 먼저 접하고 다음으로 탱고를 다룬 각종 영화를 찾아보면서였던 것 같습니다.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건 요요마의 첼로 연주로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리베로 탱고(Libero Tango)를 들은 후부터였죠.

요요마
요요마가 1997년도에 발표한 ‘Soul of Tango’ CD 커버.

https://youtu.be/WpEpS1FX5ic

https://youtu.be/WpEpS1FX5ic

요요마가 1997년도에 발표한 ‘Soul of Tango’ 음반에 수록된 리베르 탱고는 각종 CF와 드라마에도 많이 사용된 음악입니다.

요요마가 첼로로 피아졸라를 찬양했다면 기돈 크레이머는 바이올린으로 피아졸라를 찬양했죠. 기돈 클레이머가 1996년도에 발표한 ‘오마주 피아졸라(Homage a Piazola)’는 피아졸라에 대한 기돈 클레이머의 존경을 멋지게 담아낸 음반입니다.

전 이 음반에서 ‘Oblivion’ 연주를 가장 좋아하는데… 요요마의 리베르 탱고가 정열적인 탱고 리듬을 묵직한 첼로 선율로 환상적으로 구현해낸다면 기돈 크레이머의 바이올린으로 듣는 ‘Oblivion’ 은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가녀린 바이올린 현의 그 터질듯한 섬세함이 마치 남녀가 살이 맞닿아 불꽃이 튀는 듯한 그런 극도의 긴장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Gg__yDK-0rk

https://youtu.be/Gg__yDK-0rk

기돈 크레이머
기돈 크레이머가 1996년도에 발표한 ‘Homage a Piazola’ CD 커버

한 세대를 풍미하는 클래식 연주자들이 이렇게 탱고 음악에 빠져 오마주를 한 아스트로 피아졸라는 아르헨티나의 탱고 음악 작곡가 겸 반도네온 연주자입니다.

아르헨티나 아코디언이라 할 전통악기 반도네온은 탱고의 서글픈 단조를 극대화시키는 악기입니다. 그래서인지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에는 이 반도네온의 서글픈 멜로디가 주요 부분을 차지합니다.

탱고 음악을 듣다 보니 탱고를 소재로 한 영화는 뭐가 있을까? 급관심이 쏠렸습니다.

다양한 영화에서 탱고를 추는 영화들은 무척 많습니다. 대표적인 영화가 알 파치노가 눈먼 장님 역할을 했던 ‘여인의 향기’ 많이들 기억하실 겁니다.

장국영과 양조위의 동성애를 그린 ‘해피투게더’와 이 영화의 메이킹 필름이라 할 ‘Buenos Aires Zero Degree’, 에도 두 명의 남성이 탱고를 추죠.

멕시코의 전설적인 여성화가이며 사회주의 혁명가였던 프리다 칼로의 일대기를 그린 ‘Frida’에서도 프리다(셀마 헤이액)와 티나 모디티(애쉴리 쥬드 분)가 탱고를 춥니다.

양성애자이기도 했던 프리다와 티나 두 명이 추는 탱고는 클럽 남성들의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여성의 진한 키스로 마무리됩니다.

일본 영화 쉘 위 댄스를 리메이크했던 할리웃판 ‘쉘 위 댄스’의 리처드 기어와 제니퍼 로페즈의 탱고도 땀 흘릴 만큼 긴장되고 끈끈했던 탱고 리듬으로 기억됩니다.

영원한 로맨스그레이 리처드 기어라 그랬을까요?

하지만 위의 영화들은 탱고를 영화의 한 장면으로 차용했다고 할 수 있죠. 탱고를 영화 전면에 내세운 본격 탱고 영화를 꼽자면 전 단연코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탱고’를 추천합니다.

1999년도 아카데미 외국영화 노미네이트, 1998년도 칸느영화제 개막작 및 촬영상, 그 해 각종 영화제의 노미네이트와 수상을 휩쓸었습니다.

탱고 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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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또 하나를 추천하고 싶은데 샐리 포터란 여성 감독이 만든 ‘탱고 레슨’입니다. 탱고에 빠진 한 여성 감독의 성공적인 덕후질(?)을 그린 영화입니다.

본인 스스로 감독과 주연을 맡아 다큐로 찍어낸 생생한 탱고 덕후 입문기라고 할 수 있죠.

감독인 셀리 포터가 파리에서 탱고를 배우며 밤안개 흐르는 파리 시내 다리 밑에서 탱고를 추던 장면은 템포 빠른 음악과 함께 탱고 그 자체를 즐기며 음미할 수 있게 수려한 영상미를 자랑합니다.

제가 탱고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던 게 99년도. 전 왜 그렇게 그때 탱고에 빠져서 영화를 찾아보고 음악을 들으며 지냈을까요?

아마도 탱고의 그 숨막힐듯한 긴장감에 흠뻑 빠졌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2000년도에 ‘탱고’가 개봉됐습니다. 전 이 감격스러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돼 개봉 첫날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티켓팅을 하고 버거킹의 1층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며 오랜만에 눈부신 신촌 거리를 바라보았죠.

대학시절 그렇게 누비고 다니던 신촌을 의식적으로 오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던 그 시절이 자꾸 떠올라서… 하지만 예전엔 의식적으로 낯설게 하던 신촌을 당시에는 자주 찾았습니다. 과거에서 조금 자유로워졌기 때문일까요?

시간에 맞춰 좌석에 앉았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좌석은 텅 비어 있었고 열 두세명 남짓한 관객.

그나마 영화 중간에도 못 미쳐 두 쌍이 자리를 뜨면서 회오리바람처럼 거칠게 탱고를 추던 여주인공의 높다란 하이힐에 사람의 머리 그림자가 실루엣으로 얼룩졌습니다.

탱고는 19세기 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가난한 부두촌 보카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남미의 파리’라는 명성을 얻을 만큼 경제적으로 급속한 발전을 했지만 돈벌이를 위해 엄청난 이민자들이 유럽에서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할 싸구려 술집과 카바레 등이 번창을 했고 바로 이곳에서 탱고가 시작되었던 거죠.

아르헨티나의 싸구려 댄스 음악이던 탱고를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불게 만든 이가 바로 아스트로 피아졸라입니다.

자신의 탱고 음악을 기존의 탱고와 다르다는 의미의 New Tango, 스패니쉬로 Nuevo Tango라 이름 붙인 피아졸라는 “내게 있어 탱고는 발보다는 귀를 위한 것”이라며 영혼이 담긴 탱고 음악으로 클래식 음악가들의 예술혼을 불러일으킵니다.

영화는 아르헨티나의 역사적인 배경으로 탱고의 탄생을 말해줍니다. 이어서 흑백 조명에 맞춰 남성들이 격정적인 탱고 군무를 추는 것으로, 군부독재에 시달리던 현대의 아르헨티나 모습을 상징화시키고 있습니다.

고문과 대량 학살로 이어지는 군부 독재의 추악함을 고발하는 탱고 춤사위와 어둠을 가르는 여인의 비명이 극장 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이 암흑의 시대를 그들은 탱고로 견디었던 겁니다. 우리가 카바레에서 ‘짠 짠 짠’ 하며 남녀가 한 몸이 되어 스텝을 밟는 춤이라는 천박한 인식을 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에게 탱고는 삶의 유희가 아니라 처절한 몸짓이었던 거죠.

이 불편한 과거의 진실을 대면하기 싫어하는 영화 제작자들, ‘이제는 잊을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영화 제작자의 으름장을 영화의 주인공이자 영화 속의 감독인 마리오는 ‘누가 잊을 것을 결정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 한마디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습니다.

영화는 크게 탱고를 사회적인 억압을 해소하는 욕망의 배출구로 살펴보면서 개인의 욕망과 좌절, 그리고 끓어오르는 분노와 질투의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죠.

자신을 떠나버린 아내 라우라와 그녀의 새로운 연인에 대한 끓어오르는 질투가 붉은 조명 아래 탱고로 표현됩니다.

마리오는 떠나버린 아내와 그녀의 새 연인이 격정적으로 추는 탱고를 끓어오르는 질투심을 자제하며 바라보죠.

그리고 자신의 영화 속에서 그 남자를 칼로 찌르는 것으로 대리 배설을 합니다. 좌절된 욕망은 격심한 질투와 고통을 부릅니다.

그를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랑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좌절되었을 때, 가슴속의 고통은 너무 격심합니다.

가슴속에 치미는 불같은 덩어리를 삼키며 이성을 가장한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만 하는 고통을 저는 압니다.

하지만 또 알고 있죠. 시간이 지나면 그게 얼마나 서툰 사랑의 감정이었는지…

서툰 사랑의 감정이 바로 집착이란 걸, 그래서 좀 더 상대로부터 벗어나 객관적으로 그를 그리고 그녀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걸 말이죠.

마리오에게도 새로운 사랑의 대상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위험한 사랑이었죠. 영화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대는 마피아 두목의 애인, 엘레나…

애써 나이 든 이가 자신의 나이를 잊기 위해 삶의 활력소가 필요한 건 아닐까? 하는 자괴감도 갖지만 엘레나의 매력은 마리오에게 새로운 창작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나 위험한 사랑의 모험을 시작하죠.

마리오에게 새 연인 엘레나가 생긴 걸 알고 은밀하게 질투의 감정을 드러내는 라우라. 라우라와 엘레나, 그리고 라우라의 연인인 남자가 추는 트라이 탱고는 이 영화의 압권이었습니다.

두 명의 여자가 서로 스텝을 밟으며 한 명의 남자를 뺏고 다시 빼앗기다가 마침내는 셋이 어울려 스텝을 밟는 이 탱고는 삼각관계라는 진부한 치정과는 거리가 먼 삼각연애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죠.

우리는 흔히 한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가 커플을 이루는 것을 연애라고 일컫죠.

하지만 세상에는 한 명의 여자와 남자로 커플이 이루어지는 그 이면에 또 다른 은밀한 짝짓기를 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은밀함은 욕망의 극대화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불륜의 사랑이 더 짜릿하고 더 극적이고 이 세상에 다시는 내게 올 수 없을 것 같은 불같은 그런 사랑으로 포장됩니다.

이런 욕망이 극대화된 은밀한 짝짓기를 다른 파트너가 알고 있으면 그건 트라이 러브가 되는 거겠죠.

끊임없이 자신들의 사이에 누군가를 끼워 넣었던 보봐르와 사르트르처럼… 헨리 밀러와 아나이스 닌, 그리고 준 밀러처럼…

그렇게 섬세하게 사랑의 감정을 즐기면서 사는 삶이 되겠죠. 그것 때문에 괴롭다면 섬세한 사랑의 감정을 즐기는 게 아니므로 그 위험한 삼각연애를 그만둬야 되겠고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는 말했습니다. ‘스탭이 엉키는 게 바로 탱고다’.

전 이 엉킴을 인생이 관계에 의해 엉키고 사랑의 감정이 단순하게 일방통행 되지 않고 미묘하게 꼬이는 것이라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인생 자체가 엉킴의 연속이란 말로 받아들였죠.

하지만 아무리 알 파치노의 말처럼 엉키는 게 인생이고 사랑이라 하더라도 좀 심플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말이죠.

P.S

탱고 배우기는 저의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것도 아르헨티나에서 6개월 살면서 배워보기.

너무 무리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전 탱고를 배우는 것도 포기했습니다. 몸이 아무래도 말을 안들을 것 같다는 핑계(?)를 갖다 붙이면서 저에게 약간의 최면을 거는 겁니다.

6개월은 너무 심하다. 비자 문제도 있고… 어쩌고저쩌고…

전 대신 아일랜드에서 한 달 살아보기를 버킷 리스트로 바꿨는데… 흠… 이건 좀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제 맘만 먹으면 말이죠. 몇 년 전 살짝 더블린이랑 골웨이 맛보고 온 깜냥으로 좀 더 자료도 찾고 아주 오지게 준비해서 갔다 오렵니다.

응원과 채찍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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