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출서류 15만건·증인 4100명…‘숫자’로 말하는 국감전쟁

해마다 반복되는 여야 사활건 국감 풍경

의원 한 사람당 자료 평균 504건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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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개 정부 부처 및 공기관 등 국정감사 대상 기관에 요청한 제출서류 종류만 15만개, 의원들이 펴낸 보도자료는 약 3200여개, 약 한달 여간의 국감을 위해 여의도 국회의사당, 또는 국감 현장에 출석해야 하는 증인은 4100여명….

지난해 국정감사의 규모를 엿볼 수 있는 숫자들이다. 지난 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올해 국감 역시 다르지 않다.

국회도 국회의원도 정보기술(IT)화 되면서 사람 키 보다도 높은 A4 용지로 산처럼 쌓인 예전 풍경은 사라졌지만, 태블릿PC와 스마트폰으로 다루는 정보는 훨씬 더 많아졌다.

7일 국회에 따르면, 실제 국감을 위해 국회의원들이 제출을 요구한 자료 건수는 지난해 15만581건에 달했다.

상임위에 중복된 소속된 의원들을 감안하면 의원 한사람 당 평균 504건이 넘는 자료를 요구하고 제출받은 것이다.

불과 3년 전만해도 400건이 채 못됐던 것을 고려하면, 국정을 감시하는 의원들의 눈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또 손은 더 빨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정감사는 국회가 회기 중의 법정 기간 동안, 행정부의 국정 수행이나 예산 집행 등 국정 전반에 관해 상임위원회별로 법정된 기관에 대해 실시하는 감사를 말한다. 헌법 제61조와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근거가 마련됐다.

국감은 정기국회 집회일 이전에 감사 시작일부터 3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해 감사를 실시한다. 국정감사를 받는 대상 기관은 ‘정부조직법’ 등에 의한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기타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감사가 필요하다고 의결한 기관 등이다.

우리 헌법은 제정 초기부터 국정감사 제도를 규정했다. 하지만 과거 독재 정권 아래 국정감사는 유명무실한 요식행위로 끝나거나, 심지어 유신헌법 이래 16년간 폐지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지금과 같은 3권 분립과 견제의 원칙이 살아있는 국정감사는 6공화국 헌법의 등장부터다.

국정감사를 특히 ‘야당의 놀이터’라 부르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평소 정보 접근이 쉽지 않았던 행정부 및 권력기관의 내막을 알아볼 수 있는 몇안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 이 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대안을 내놓는 의원은 단숨에 정치권 스타로 도약하기도 한다.

한번에 7분 정도, 하루에 길어야 20분 내외인 자신의 질의 시간에, 장관과 또 기관장들이 꼼짝없이 “잘못했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날카로운 질의를 던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수십만개의 자료요청, 또 몇 박스분의 실물 자료, 그리고 24시간 불꺼지지 않는 보좌관들의 사무실 등 몇박자가 어우러져야 가능한 일이다.

국감장에서 눈길을 사로잡으려다보니 매년 국감장에선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지기도 한다. 지난해만 해도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한복을 입고 문화재청장에게 질의했고,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벵갈고양이를 들고나오기도 했다.

국회의원 선거를 5개월 여 앞둔 상황에서 열리는 올해 국정감사는 특히 더 열기가 뜨겁다. 단순히 선거 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마지막 국감이라는 것 뿐 아니라, ‘조국’이라는 대형 변수가 더해진 까닭이다. 지지율 측면에서 수세에 몰려있던 야당, 그리고 우위를 점했던 여당의 입지는 선거 몇 개월을 앞두고 단숨에 뒤바뀔 수도 있는 정치 상황이다. 이런 점을 국감장에 나서는 의원들도 잘 알고 있기에 창과 방패의 싸움은 치열하게 전개될 수 밖에 없다.

민주당, 자유한국당 대표들이 국감에 앞서 총선 출정식을 갖고 현판을 내걸며 사생결단의 각오를 표한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30일 당 국정감사 종합상황실 현판식에서 “‘살리자 민생활력’, ‘만들자 경제강국’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면서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검찰개혁을 해내는 것”이라고 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지난달 26일 “이번 국회는 조국 파면과 정권의 무능, 부도덕을 만천하에 알리는 국회가 돼야 한다”며 “조국 제2의 인사청문회라는 규정하에 모든 현안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조국 개인 게이트가 아니라 정권 게이트로 번져가는 부분을 면밀히 밝혀야 한다”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포인트는 다르지만, 당의 운명을 건 국감 출사표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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