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의 나라 사로잡은 ‘김치 시즈닝’…“김치 고정관념 깨고 싶었어요”

- 필리핀에서 대박 낸 ‘K-푸드’ 전도사 안태양 푸드컬처랩 대표 - 김치 고정관념 깬 ‘김치 시즈닝’으로 시알 혁신상 수상 - “비건, 글루텐 프리, 논-GMO에 유산균 넣은 한국의 대표 소스”

[리얼푸드=고승희 기자] “누가 김치를 가루로 먹어?”

‘김치 파우더’를 만들겠다고 하자, 열에 아홉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치라고 하면, 신선한 배추를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야 정석. 김치를 가루로 먹는다는 것은 한국인에겐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마존에서 ‘김치 주스’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해도 말이다.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안태양 푸드컬처랩(Food Culture Lab) 대표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었다. 12번의 실패 후 완성된 13번째 제품은 안 대표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 스스로 세운 엄격한 기준도 충족했다. 비건(완전한 채식) 제품이자, 글루텐-프리(Gluten-Free)이면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사용하지 않은 ‘논(NON)-GMO’다. 거기에 유산균까지 더했다. 김치 시즈닝은 ‘K-푸드’ 전도사로 불려오던 안 대표의 ‘피, 땀, 눈물’로 완성된 역작이었다.

최근 열린 ‘시알 인디아 2019(SIAL INDIA 2019·인도 국제식품박람회)’에선 그간의 노고를 보상받았다. 전 세계 26개국, 175개 제품이 출품한 혁신대회에서 ‘김치 시즈닝’은 은메달을 받았다. 함께 참가한 한국 식품업체 중 유일한 수상이다. ‘향신료의 나라’를 사로잡고 돌아온 안태양(34) 대표를 만나 지난 이야기를 들었다.

안태양 푸드컬처랩 대표의 ‘김치 시즈닝’은 최근 열린 ‘시알 인디아 2019′에서 혁신상 은메달을 수상했다.

▶ ‘제2의 스리라차’ 꿈 꾼 K-푸드 전도사=‘김치 시즈닝’은 하루 아침의 결과물이 아니다.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로 일찌감치 동남아시아 시장을 경험한 안 대표의 오랜 꿈이 녹아있다.

사실 안태양 대표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먼저 알려진 K-푸드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다. ‘월세 보증금’ 300만원을 모조리 털어 시작한 필리핀 야시장에서의 떡볶이 장사로 연매출 10억원 대를 달성했다. 여동생과 함께 꾸린 ‘서울 시스터즈’(Seoul Sisters) 떡볶이 집은 8호점까지 뻗어나가며 ‘한류의 성지’로 주목받았다. 자매의 탁월한 감각을 알아본 굴지의 중국 기업은 이들에게 스카우트를 제안했다. 안 대표는 서울 시스터즈 브랜드를 가지고 GNP트레이딩으로 합류, 5년 넘게 신사업부문 본부장으로 근무하며 연타석 홈런을 쳤다. 안 대표가 만든 2개 브랜드(오빠치킨, K펍 비비큐)는 12개 매장으로 확장, 필리핀 전역에서 ‘K-푸드’ 붐을 일으켰다.

필리핀 야시장에서 시작해 연 매출 10억 원 대를 올린 ‘서울 시스터즈’ 떡볶이 [푸드컬처랩 제공]

동남아 시장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안고 돌아온 안 대표는 2017년 푸드컬처랩을 설립했다. 출발은 K-푸드의 해외 시장 진출을 돕는 컨설턴트였으나, 목표는 더 멀리 있었다. “해외에서 외식업을 하거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을 넘어 한국 음식이 가야할 다음 스텝은 뭘까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제2의 스리라차’ 소스를 만드는 것은 안 대표의 오랜 꿈이었다. 미국 내 아시안 푸드를 파는 곳엔 너무나 당연하게 자리 잡은 ‘스리라차 소스’를 보며 “우리도 스리라차 소스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소스로 직접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 목표였어요.” 그것이 K-푸드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스리라차 소스처럼 활용도가 다양한 소스, 피자나 파스타는 물론 자기네 음식에 곁들일 수 있는 소스를 만들고 싶었어요. 한국 음식이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한국 소스’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으로요.”

안태양 대표는 2010년 필리핀에서 떡볶이 사업을 시작하며 일찌감치 K-푸드 전도사로 주목받았다.

안 대표는 해외에서의 ‘김치 사랑’에 주목했다. ‘발효식품’ 김치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인의 ‘건강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2017, 2018년 미국 푸드 트렌드 톱5에 김치가 들어가있을 만큼 인기였어요. 미국 호주 인도 현지 회사들도 김치를 만들고 있어요.” 그렇다고 김치를 만들 수는 없었다. 대신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김치엔 배추가 들어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렸다. “김치가 아닌 다른 형태로 만들어보자”는 ‘엉뚱한 상상’이었다.

“김치를 소금이나 설탕처럼 파우더 형태로 만들면 어떨까,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김치의 매운맛과 발효식품의 강점만 남기고, 젓갈이나 기존의 짠맛을 제거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렇다면 김치를 좀 더 가볍게 즐길 수 있고, 더 많은 소비가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시알 인디아에 참석한 안태양 대표

▶ 해외 식품 트렌드 다 잡은 ‘김치 시즈닝’=안 대표의 목표는 김치로 만든 ‘만능’ 파우더였다. 가루로 만들어 어디든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이동의 편리성’, 어떤 요리에도 곁들일 수 있는 ‘확장 가능성’을 우선 가치로 뒀다.

그 과정은 ‘산 넘어 산’이었다. 김치를 가루로 만든다는 것도 도전이었는데, ‘김치 시즈닝’을 완성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걸음을 늦췄다. “비건, 글루텐 프리, 논(NON)-GMO일 것. 이 세 가지를 갖추지 않으면 미국 메인스트림에 진입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트렌드가 됐거든요.”

하루에 20~22시간씩 일을 해도 풀리지 않는 숙제는 있었다. “‘비건 김치’를 만들기 위해 젓갈을 빼니, 김치가 가진 고유의 맛이 사라지더라고요.” 고심이 깊어졌다. 대신 김치시즈닝은 세 가지 종류의 고춧가루를 넣어 강렬한 ‘한 방’을 느끼게 해주는 매운맛을 담았다. “해외 트렌드가 어중간한 매운맛이 아닌 확실히 매운맛을 더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거든요.” 거기에 일반 소금이 아닌 천일염을 넣고, 다시마 가루와 표고버섯 가루로 천연의 감칠맛을 더했다. “최대한 자연적인 맛과 블렌딩을 찾으려고 했어요.”

시알 인디아에서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박람회가 이어지는 3일 내내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팝콘이나 치킨에 뿌려먹고, 샐러드를 만들고, 겉절이까지 담가 먹을 수 있는 ‘김치 시즈닝’에 너도나도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웠다. “활용도 높은 시즈닝인데, 유산균까지 한 번에 먹을 수 있다고?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냐고 너무 혁신적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김치 시즈닝은 ‘향신료의 나라’ 인도에서도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치 시즈닝은 이미 더 멀리 나갈 채비를 마쳤다. 프랑스, 베트남의 유통회사와 계약해 현지 마트에 입점하고, 아마존에서도 판매할 계획이다. ‘서울 시스터즈’가 나가는 길에 새로운 이정표가 또 하나 세워졌다.

“내년까지 국내 농수산물을 기반으로 만든 김치 시즈닝과 같은 제품이 다섯 가지 정도 나올 예정이에요. ‘메이드 인 코리아’로 선보이는 제품들이죠. 더 큰 비전은 전 세계 어디를 가나 그 사람들의 주방 찬장을 열었을 때 우리의 제품이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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