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은 만큼 뺄 자신 있다면, 고흥을 찾아라

제철 삼치회, 들깨탕·병어무침 등 ‘남도한상’ 어리굴젓·풋고추열무김치등 밑반찬도 별미

산해진미의 ‘미식여행’…1박2일도 모자라 나로도·거금도·형제섬의 수수한 풍광 일품

오른쪽 형제섬들 옆으로 해가 지는 모습. 김성진 기자/withyj2@heraldcorp.com
유자농원, 요즘은 수확을 앞둔 고흥의 특산물 유자가 잘 익어 진한 향을 풍기고 있다.
고흥 봉래산 삼나무숲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GNC21 제공]
우주발사전망대 뒤에서 바라본 일출.
고흥 다도해회관 삼치회 상차림.

방심했다가 제대로 한방 먹었다. 호남 지역을 돌아보는 남도여행을 하려면 사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거리가 멀다거나 산이 높다든가 하는게 아니다. 과연 돌아오는 끼니마다 ‘얼마나 잘먹나 보자’고 별러왔던 것 같은 식당의 산해진미 전술을 이겨내야하기 때문이다. 맛있다고 다 먹다간 한두 체급 올라가는 건 각오해야하니 다이어트 중인 사람들에겐 남도여행은 초인적인 인내력을 요한다. 그렇다고 입맛 당기는 요리들을 남겨놓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니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밥, 국, 김치에 반찬 한두개 정도만 나오는 소박한(?) 밥상을 볼 수 없는 호남 지역을 많이 가봤지만 전라남도 고흥은 그 중에서도 다섯손가락 안에 들만큼 풍성한 식탁을 매번 마주하게 된다. 아직 꺼지지도 않은 배 때문에 거센 숨을 몰아쉬면서도 숟가락을 멈추지 못하는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 어쩔수 없으니 일단 먹고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보성과 여수 사이 남해바다로 뻗어나간 고흥반도는 서울에서 가려면 제법 멀다. 광주에서 갈만한 보성이나, 공항이 있는 여수와 달리, KTX로 2시간40분 거리의 순천에 내린 뒤 차로 1시간 가량 달려야 이른다. 소록도, 나로도 등 다도해 끝자락까지 가려면 한참을 더 가야한다. 고흥은 한때 24만명 가까이 살 만큼 큰 고장이었고 산과 바다의 물산이 풍부해 부자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도시로 많이 빠져나가 7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 팔영산, 마복산, 봉래산 등 수수하지만 전망이 일품인 산들도 좋고, 다도해 속에 내려앉은 거금도 나로도 소록도 등의 노을도 사랑스럽다.

음식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마침 삼치철이기도 하지만 나로도에는 삼치회를 내는 식당들이 많다. 고흥군은 다도해회관, 서울식당, 대동식당, 남도맛집, 순천식당, 진미회관, 진보횟집 등이 터를 잡은 이 지역을 삼치요리거리로 조성해놓았다. 고흥방문의 해를 선언한 2020년을 앞두고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기 위한 고흥군의 방안중 하나다.

나로도항은 예로부터 삼치로 유명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파시가 열렸고, 삼치의 어업전진기지로 삼았다. 나로도 삼치를 최고로 쳤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보통 구이로 먹지만 산지인 나로항에서는 귀한 회를 먹을 수 있다. 살이 부드러워 씹을 새도 없이 넘어가는 삼치는 청정해역 거문도와 나로도 근해에서 주로 잡히는데, 나로도는 재래식인 채낚기로 잡고 있다. 10월~2월이 제철로 가을철 나로도 수협 위판장에는 갓 잡아 올린 삼치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삼치회는 김에 싸서 묵은지랑 먹으면 맛이 더하다. 최근에는 삼치고추장조림이 개발돼 많은 식당이 내놓고 있다. 고흥 특산물인 유자를 이용한 유자삼치구이도 향기롭다. 현지 사람들은 “예전에는 30~40㎝짜리는 가축사료로 쓰고, 60~70㎝는 되야 사람들이 먹었다”고 했다.

몹쓸 삼치회때문에 술 한잔 안할 수 없다. 다음날 아침 해장국에 밥 한술 뜨려고 허름한 식당에 들어섰다. 계란프라이와 13가지 반찬과 황태해장국이 떡 벌어지게 차려졌다. 7000원. 깔깔했던 입맛은 어디로 가고 나도 모르게 밥 한공기 더 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옛 고흥군청 앞에 있는 압구정식당은 철판구이로 인기가 높다. 낙자(낙지의 방언), 돼지고기, 게지(키조개 관자의 방언), 콩나물 등으로 매콤하게 먹는 음식으로 술 안주로 제격이다. 다 먹은 뒤 양념에 밥을 볶은 뒤 김가루와 날계란을 얹어주는 것도 남길 수가 없다. 메인 요리도 좋지만, 밑반찬으로 달려나오는 어리굴젓과 고흥 토속음식인 풋고추열무김치도 여러 접시 비우게 만든다.

주인장에게 어리굴젓을 좀 살 수 없느냐고 물어봤지만 그날 그날 필요한 양만 무쳐내고, 서울까지 가져가면 맛이 변한다며 정중하게 거절해 아쉬움을 남겼다. 굴이 제철일때 사서 바로 냉동했다가 필요한 만큼 꺼내쓰기 때문에 맛이 싱싱하다.

이밖에도 남도한상차림을 내는 곳에 가면 들깨탕, 병어무침, 낙지탕탕이, 서대밀가루구이 등 대처에선 먹기 쉽지않은 다양한 음식들을 즐길 수 있다.

먹는 것만 찾아 다녀도 1박2일이 짧기만 하지만 푸드파이터가 아닌 다음에야 눈요기도 해야하지 않을까.

남도의 그림같은 노을을 보면 또 한잔 술과 음식 생각이 나겠지만 어쩔수 없다. 고흥군 끄트머리에 있는 동일면 섭정마을에는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형제섬’이 있다. 인기 예능프로 촬영지로 잘 알려진 이 곳은 18세기 연잉군(영조)의 세자책봉을 주장하다 나로도와 남해로 유배된 노론의 이건명 이이명의 사연이 서려있다고 한다. 같은 뜻을 품었던 사촌형제는 병고와 외로움, 적막함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이후 사람들은 이 섬을 형제섬이라 부른다.

물때를 잘 만나면 섬까지 다가갈 수도 있는데, 이번엔 시기가 안맞아 해변에서 일몰을 봐야했다. 노을을 등지고 조용히 그림자를 드리우는 자그마한 형제섬, 그걸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고흥바다의 일출, 일몰이야 어느 정도 예상했다해도 봉래산의 뾰족뾰족한 삼나무, 편백나무숲은 흔치 않은 풍경이었다.

봉래면 외나로도에 있는 봉래산은 완만해 보이지만 땀 깨나 흘려야 오르게 된다. 정상에는 봉화대가 있고 다도해의 수려한 경관과 인근 선죽도까지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삼나무와 편백나무 3만주 가까이를 심어 조성한 숲은 쭉쭉뻗은 나무와 바늘같은 잎새가 이국적이다. 81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숲이 훼손되지 않았고 2016년 산림청이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했다.

포두면에 위치한 마복산은 멀리서 보면 많은 말떼가 엎드려 있는 것 처럼 보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공감하기는 조금 어려웠지만…. 물개바위, 거북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은 경관 때문에 소개골산(小皆骨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내산마을에서 출발하여 마복사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 돌아 10분 정도 가파른 능선을 오르면 탁 트인 너럭바위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을 보며 바람을 맞는 맛이 일품이다.

고흥의 특산물 중 하나가 유자다. 기후에 민감한 유자재배지로 적합해 전국 최고의 유자 생산량과 재배면적을 자랑한다. 고흥을 비롯해 전남 완도와 진도, 경남 남해와 거제 등 남해안 지역이 대부분이다. 고흥의 유자는 다른 지방의 것보다 향과 당도, 맛이 훨씬 뛰어나다고 인정받고 있다.

고흥에서도 풍양면과 두원면 유자를 쳐주는데 풍양면 한동리에 숲을 이루고 있는 유자공원에서는 유자향기를 만끽하면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전망대, 산책로, 탐방로, 약수터, 쉼터 등의 시설로 조성된 공원으로 공원 입구 쪽에는 유자공원 특산품 전시판매장이 있다.

고흥 유자 재배의 역사, 특성, 약리효과 등 고흥유자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유자제품으로 생과, 유자쥬스, 유자청 등 가공제품을 비롯한 고흥지역의 우수한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유자농원 관계자는 “태풍탓인지 지난해보다 유자가 적게 달려 아쉽다. 그래도 이번 주부터 수확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거금도는 소록도 바로 밑에 위치한 섬이었으나 2011년 거금대교로 이어져 육지가 되었다. 고흥의 섬 중 가장 큰 섬으로 조선시대의 도양목장에 속한 방목지의 하나로 ‘절이도’라 했으며 일설에는 큰 금맥이 있어 ‘거금도’라고 불렀다고 한다. 거금도는 이팝나무, 참식나무, 육박나무 등 난대수종의 보고로, 해안도로 드라이빙 코스로도, 숲 체험 코스로도 좋다.

거금대교는 세계최초 번들형 5경간 연속 사장교로서 소록도체험 견학과 나로도 우주산업 및 관광기능의 연계를 통한 지역발전 촉진하기 위해 건설되었으며, 국내 최초로 차량과 자전거·보행도로 2층 복합 와렌트런스 교량이다.

고흥=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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