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스토리] ‘저는 배우 유아인으로 활동중인 엄홍식입니다’

2014년 시작한 창작자 아지트 ‘스튜디오 콘크리트’

물물교환 통한 작품 순환 프로젝트 ‘1111’ 실험중

유아인의 꿈은 ‘자유’다. 온전한 자유. 모든 것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감정을 흠뻑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10대부터 스크린에서 살아온 그에게 대중은 자신이 원하는 것 만을 읽어낸다. 아름다움, 패션, 스타일, 엣지, 감각…. 영리하게도 이 청년은 그러한 소비에 자신을 소진시키지 않고 스스로에 집중한다. 그리고 지인들과 작은‘사고’를 쳤다. 그는 말한다. “즐거운 판을 만들었으니 놀러오세요” [스튜디오 콘크리트 제공]

유아인(33)은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화면에 비친 잘생긴 혹은 예쁜 피사체가 ‘자아’를 가지고 뾰족한 이야기를 던져놓기 시작했을 때 부터다. 일부는 환호했고, 일부는 꺼려했다. 그에게는 ‘자의식 과잉’이라는 딱지와 ‘개념 연예인’이라는 수식어가 함께 다닌다. 그런 그가 이제는 문화예술계에서 작은 실험을 한다.

지난 11월 초, “저는 배우 유아인으로 활동 중인 엄홍식입니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메일이 도착했다. 2014년부터 시작한 창작자집단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1111〉로 명명된 프로젝트를 통해 “관람-체험-소장에 그치던 예술 콘텐츠 소비 방식이 혁신되길 바라며, 한국 문화예술계와 더불어 한국인의 삶의 방식과 가치체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달콤하고 패기 넘치는 선언이다. 미술관에선 기획력 넘치는 전시를 만난지 오래됐고, 시장에선 투자가치가 있는 작품만이 손바뀜을 거듭하며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대안공간에선 그림을 팔고, 작가와 독립기획자는 점점 설자리가 좁아지는 빈사상태 직전의 지금 한국미술계를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해 인터뷰를 청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정신이 번쩍드는 늦가을 어느날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그를 만났다. 배우가 아닌 예술가이자 기획자, 디렉터로서의 엄홍식을. 아니 이 모든 타이틀에서 자유로운 인간 엄홍식을. 짧게 깎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그는 맑은 미소로 인터뷰에 응했지만, 〈1111〉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나지막한 음성이 파르라니 떨렸다. 특유의 조심스러움과 진정성이 묻어났다.

-스튜디오 콘크리트, 설립한지 5년 됐다고 들었다. 어떤 곳인가?

▶처음 시작은 주변의 지인들이었다. 한 명 한 명 예술가로 작업자로 각자의 삶을 추구하는 지금의 형태도 좋지만 크루를 형성해서 우리 무언가를 도모 해보자, 이런 제안을 제가 그들에게 하면서 시작했다. 같이 작업하는 창작자들이 모여서 만든 집단, 공간, 아지트였다. 그런데 그 공간에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사건들이 생기고, 그런 움직임이 세상으로 옮겨가더라. 어느 순간, 친구들의 시점에 감동했고, 그들의 작업을 세상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론 5년간 학교를 다닌거 같다. 10대 때부터 경제활동을 하다보니 학업적으로 파고들거나 아카데믹하게 가져가기가 쉽지 않다. 여기 있는 친구들은 전부 전문가다.

 

2014년 시작한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오프라인 실험장’ 그 자체다. 특정한 목적을 갖고 탄생한 공간이 아니었기에 갤러리, 브랜드 전시장, 공연장, 파티장으로 변화하면서 다양한 예술작업과 실험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16회의 개인전, 18회의 협력전, 2회의 초대전을 개최하며 예술문화콘텐츠 전시장으로 자리매김해다. 엄홍식의 설명대로 ‘스튜디오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야심차게 시작한 프로젝트〈1111〉에 대해 설명해달라.

▶집단행위 퍼포먼스라고 할 수도 있다.(하하) 기본적으로 우리가 내 놓은 물건, 작품, 부동산 지분, 사업체 지분, 또 다른 참여자들의 물건이 서로 물물교환을 한다. 그 시작은 지금 전시하고 있는 권철화 작가의 작품이다. 권작가의 작품이 마음에 들면 돈을 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떤 것을 내놓으면 된다. 권작가가 자신의 작품과 해당 물건의 가치가 교환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서로 바꿔 갖는거다.

-기본적으로 작가의 작품을 물물교환으로 구매한다는 컨셉인데, 왜 이러한 실험을 하는가?

▶이시대 작품의 가치가 생성되고 사라지고 하는 과정을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가치상승을 추구해야 하는데 그게 단순히 등가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에 그칠 것인가. 그렇다면 작품은 무엇인가. 누군가의 시간과 공과 취향과 정체성, 이야기가 들어간 이 작품은 무엇일까. 이것의 가치는 어떻게 판단되고 매겨지고 소개될 것인가. 이시대의 작품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반영하고 있는 이야기, 이것을 향한 사람들의 욕망.

▶권철화 작가의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그의 작품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소속작가로, 여기서 개인전도 하고 작품도 판매하지만 그의 작품이 너무 좋아 팔고싶지 않을 지경이다. 저 이상으로 이 작품의 진가를 알아 볼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그래서 작가에게 제안했다. “지난 전시처럼 모두 완판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너의 작품의 가치를 많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사람들이 너의 그림을 공정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안을 만들어보자”고.

 

프로젝트〈1111〉은 1년간 이어진다. 지난 11월 11일 라이브 방송을 통해 출범을 밝혔고, 권철화작가의 개인전 ‘탱고’에 나온 작품이 그 시작점이다.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전시되는 기간동안 누구나 와서 작품을 보고,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오는 1월 1일 열리는 온라인 플랫폼에 자신의 물건을 하나 내놓으면 된다. 같은 미술작업일 수도 있고, 음악 한 편이 될 수도 있고, 자작 시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이 평가한 권작가 작품의 가치에 상응하는 물건이면 된다. 공모와 경매를 통해 물권의 이전이 확정되면, ‘물물교환을 통해 순환하는 집단전시’형태로 내년 11월 11일에 선보일 예정이다.

 

-작품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지 않고, 다른 가치로 교환한다는 건 무척이나 흥미롭다. 가치는 계량화가 불가능하니까. 그러나 동시에 한계가 있지 않나 싶은데.

▶맞다. 한계가 있다. yBa가 있었고, 뒤샹 현상이 있었듯 개인적으론 온라인 시대에 걸맞는 아주 파괴적 현상을 젊은이 다운 로큰롤 정신을 담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참여자들의 동의를 얻어야하니…. 판을 갈아엎는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 재미있게 노는 판을 만들테니, 들어오고 싶으신 분은 들어오세요’라는 톤앤 매너를 선택했다. 지금 제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자세다. 타협이라 부르면 타협일 수도 있다. 나 혼자 감정을 뿜어내고 뱉어내는게 아니라, 객기나 치기가 아니라 실효성을 가지는 행위로 이어갈 수 있도록 실질적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 노화의 시작인가?

-재미있는 프로젝트지만 쉽지 않아보인다. 또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한데.

▶돈에 대한 의구심에서 출발했다. 돈 때문에 죽고 싶었던 때도 있었고,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느낌을 가졌던 적도 있었다. 뭐가 너무 많은데 하나 하나가 소중하지 않아서 도대체 나의 정체는 무엇인가 싶기도 했다. 삶의 롤러코스터 속에서, 내가 영유하고 향유하는 것이 정답으로 믿고 살아가는 자본주의 경제질서가 과연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나? 이 의문은 나만 갖는 건가? 나는 여기서 이탈하겠다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자본주의 인간으로,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저항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러나 예술에서 판은 하나 만들 수 있겠지 싶었다.

-소위 잘 나가는 연기자이고, 스타다. 안정적으로 편하게 살 수도 있지 않나?

▶편하지 않다. 마음이 안편했다. 수도 없이 마음을 버리고 무의식에 빠져 살아왔다. 명함, 외모, 패션 다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마음이 헛헛한, 걸리는 이유는 뭘까. 아무리 좋은 이야기가 오가도 불편한 건 뭐지 싶었다. 대리석이 깔린 집을 뛰어다니다 무릎이 점점 아파오는 아이러니에, 옷은 정말 많지만 그래서 옷을 고르는데 시간이 오래걸리는 모순에, 비싼 음식이라고 과연 이것들이 나를 살리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 내 삶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배우라는 직업은 최고다(하하).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아무것도 안 될 수도 있다. 배우로 살다보니 주변에 일어나는 현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인간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내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습관이다. 내 직업적 소명의식이다. 그리고 이시대에 가장 결여된 게 소명의식 아닐까.

-그렇다면 예술의 소명의식은 무엇일까. 예술가의 소명의식이라고 해도 좋겠다.

▶온라인 세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낭비하고 있다. 그저 기술을 따라가고 맞춰가고 있다. 빠르고 편하고 더 손쉽게 뭔가를 생산해낸다. 이렇게 생산성에 몰두된 인간에서 다시 한 번 우리안의 예술성을 깨워내는 것, 그것이 지금 시대 예술가들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프로젝트 〈1111〉과 연관해 이야기한다면, 창작자들끼리 서로의 작업을 주고 받으며 특별한 관계를 맺는 건 오랜일이고 자연스런 일이다. 서로 시조를 읊어주고 선물 하는 데 돈이 필요한건 아니지 않나. 예술가들이 세상에 대해 느끼는 영감을 작품으로 풀어내고, 이것을 동시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해야한다.

-도대체 꿈이 뭔가

▶자유. 온전한 자유.

 

엄홍식의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미술품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지 않고, 등가의 가치를 가진 물건으로 교환하겠다는 것. 가치와 가치가 만나 더 큰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것. 그리고 이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환영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발언을 크게 한적은 없지만, 침묵하고 살아가는 게 더 힘들다”는 그는 “대리석 발린 집을 하나 더 사는 것보다 소명을 발현하기 위한 일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밟아야겠다”고 했다.

인터뷰도 영화 촬영일정이 빡빡한 가운데 잡혔다. 내년엔 두 편이 개봉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고민들이 연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털어놨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영감이 이곳에 전이된다고. 배우로 인정받는 건 무척이나 중요하지만 또 이런 ‘작업’을 하는 것도 분명 엄홍식을 지탱하는 한 축이리라. 시 한 편, 그림 한 장, 노래 한 곡의 가치를 흠모할 줄 아는 이 낭만청년이 가져올 변화가 기대된다. 엄홍식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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