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릿 ‘우한폐렴’에 골머리…“빙산 피하는 타이타닉호 선원 처지”

2003년 사스 때 시장상황 확인 분주

주가 악영향 우려 속 경제전망 수정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 트레이더가 지난 28일(현지시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우한 폐렴의 전세계적 확산으로 글로벌 금융 중심지 뉴욕의 전문가들은 이 폐렴이 향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로이터=헤럴드경제]

[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이 급속 확산하면서 글로벌 금융 중심지인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이하 월가)에도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투자자의 자산을 운용해 수익을 내야 하는 입장에선 짙어지는 불확실성에 운신의 폭이 줄어들고 있다. 경제·금융 전문가들은 조만간 경제성장률 수정 전망치를 내놓기 위해 시장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월가 전문가들은 우한 폐렴 확산에 맞딱뜨리면서 투자포트폴리오 조정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와 유사점을 찾아내기 위해 분주하다.

일단 표면적·숫자상으론 우한 폐렴이 주식시장엔 악재가 아닌 걸로 판단된다. 사스가 당시 감염자 8100명·사망자 774명 등 피해를 냈지만, S&P500 지수는 연간 26% 상승하는 등 주가엔 최고의 해였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일부에선 우한 폐렴도 주식 매수의 기회가 될 거라고 관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낙관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사스 사태가 2002년 11월 시작됐을 때 S&P500지수는 49% 폭락했다. 닷컴버블과 9·11테러로 인한 영향이었다. 애초 더 나빠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사스 국면을 지나면서도 주가가 올랐다는 분석이다.

우한 폐렴 전개 상황은 다소 다르다. S&P500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우한 폐렴 사태가 나기 직전엔 22였다. 2018년엔 16이었던 데서 크게 오른 것이다. 미국 소비자심리가 좋고, 서비스산업도 양호한 데다 미·중 무역분쟁 완화로 중소기업도 경제성장에 기여할 걸로 점쳐지는 등 시장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상황에서 전염병이 돌발한 셈이다.

로리 칼바시나 RBC캐피털마켓의 미국 주식 전략책임자는 최근 블룸버그TV에 “투자자들은 글로벌 경제회복에 대한 증거에 목말라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이런 희망을 바이러스와 바꿔야 하는 건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당장 우한 폐렴은 소비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경제부문에 타격을 줄 전망이다. 미국에서도 감염자가 나왔다는 소식에 S&P500지수가 지난 24일부터 27일까지 2.5% 하락한 건 이를 반영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직까진 미국엔 피해가 미미하지만, 확산 추세 제어에 실패하면 미국 경제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지난 10년간 소매부문에서 150만개의 일자리가 추가되는 등 대면(對面)이 필수적인 업무가 여전히 많다.

식당·상가·극장 등의 종사자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피해가 본격화하면 실업급여신청건수·고용통계에 반영될 수 있다는 추론이다. 리즈 안 찰스슈밥의 최고투자전략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경제성장률 재조정이 조만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W베어드앤코의 마이클 안토넬리 시장전략가는 투자자와 월가 전문가를 바다 속 빙산을 찾아내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한 타이타닉호 선원에 비유했다. 그는 “난 선거, 부채, 이자율 등 수없이 많은 전망보고서를 읽는다. 그러나 이건 다 알려진 빙산”이라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글로벌경제 회복에 위협이 될 거라고 한 보고서가 한 건이라도 있었나. 없었다. 이게 진짜 리스크”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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