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은 가장 한국적인 스토리…사실 우리네 이야기”

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뒷 얘기

대학시절 부잣집 중학생에 수학 과외

다른교사 소개 해주려다 잘려서 못해

 

아시아 최초 아카데미 수상이자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불후의 위업을 달성한 봉준호 감독. 그를 세계 최고의 거장으로 우뚝 설 수 있게 한 작품인 ‘기생충’은 자신이 겪은 실제 이야기가 교묘한 그의 방식으로 상당 분량 반영돼 있다.

봉준호 감독이 일곱 번째 장편 ‘기생충’을 구상한 것은 2013년 ‘설국열차’ 후반 작업 때다. 그는 “부자와 가난한 자 이야기를 조금 더 일상에, 현실에 가까우면서 가장 기본 단위인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보고 싶었다”고 했다.

여기엔 그의 자전적 경험이 꽤 녹아 있었다. “(연세대 재학 시절) 부잣집에서 중학생 수학 과외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국어를 먼저 가르치고 있던 여자친구(지금의 아내) 소개로 과외를 했습니다. 그 학생에게 또 다른 미술 교사를 소개해주려 했지만, 내가 두 달 만에 과외에서 잘리는 바람에 결국 기택네처럼 침투하지는 못했습니다.”(관객과 대화 행사에서)

그는 지난 9일(현지시간)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영화 공부할 때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며 “마틴 스콜세지가 한 말”이라며 함께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그를 가리켰다. 이 발언은 자신의 ‘우상’을 향한 헌사이기도 했지만, 그가 영화 인생에서 기어코 실천한 말이기도 한 셈이다.

봉 감독은 2015년에 15쪽짜리 스토리라인을 썼고, ‘옥자’(2017)를 찍는 동안에는 한진원 작가가 드래프트(초고)를 썼다. 2017년 봉 감독이 다시 시나리오 작업을 맡아 4개월간 완전히 새롭게 고쳐 완성했다.

‘지하실 남자’ 근세(박명훈 분)가 죽고 뒤이어 대저택 지하실에 숨어들어 ‘기생충 살이’를 하고 있는 아버지 기택(송강호)과 아들 기우(최우식)가 마지막에 모스 부호를 주고받는 장면도 자기 경험에서 착안했다. 캐나다 밴쿠버에 머물 때 건널목에서 깜빡거리는 신호등을 보면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생각해냈다고 한다.

일상의 작은 경험이라도 그의 것이라면 예측 불허의 이야기로 변한다. 시상식에서 말했듯 “난 원래 좀 이상한 사람”이라며 그 스스로 인정하는 독창성에 사회에 대한 예리한 비판의식이 가미돼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을 완성한다. 그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강박적 성향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1988년 연세대 사회학과에 진학한 봉 감독은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면서 ‘노란문’이라는 학내 영화 동아리를 만들어 첫 단편영화 ‘백색인’을 연출했다. 1999년까지 충무로에서 조연출과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다 데뷔작 장편 블랙코미디 ‘플란다스의 개’(2000)를 냈으나 흥행엔 실패했다. 좌절하지 않고 같은 제작사와 손을 잡고 2003년 ‘살인의 추억’을 제작해 525만 관객을 모았다.

이후 봉 감독은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예술가 DNA는 집안 내력이다. 2017년 작고한 그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인 봉상균 씨, 외할아버지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천변풍경’을 쓴 월북 작가 박태원이다. 누나는 연성대 패션산업과 교수인 봉지희 씨다.

아내 정선영 씨는 그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인 ‘지리멸렬’(1994)에 스태프로 참여한 인연으로 1995년 결혼했다. 아들 효민 씨도 2017년 YG케이플러스의 웹무비 ‘결혼식’을 연출하며 영화감독의 길을 걷고 있다. 조용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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