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김필수] 동학개미와 원유개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투자의 귀재’로 불린다. ‘오마하의 현인(賢人)’이라고까지 추앙된다. 그와 점심 한 번 먹으려고 수십 억원을 내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IT버블도, 금융위기도 거뜬히 헤쳐 나온 그가 코로나19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난 2일 버크셔해서웨이 온라인 주총에서 버핏은 “코로나19로 인해 올 1분기에 497억달러(약 60조580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고 털어놨다. 델타 등 미국 4대 항공사에 투자한 게 화근이 됐다.

“남들이 두려워할 때 욕심을 내라”던 버핏도 지금은 주춤하고 있다. “매력적인 투자 대상을 찾지 못했다”며 1373억달러(약 167조원, 1분기말 현재)의 현금을 그냥 들고 있다. 그도 두려운 것이다.

한국 개인투자자들은 버핏과 달리 용맹스럽다.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1월 20일 이후 3개월여 동안 무려 26조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일부 ‘단기 빚투(빚내서 단기투자)’조짐이 있지만, 대개는 자기 돈으로 장기투자하려는 개인들로 여겨진다. 그러기에 외국인투자자에 맞선 ‘동학개미’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왜 패배로 끝난 동학운동에 빗대느냐는 지적이 있지만, 혼연일치된 움직임을 상징하는 표현 정도로 받아 주자. 여하튼 필자도 일관되게 동학개미를 지지해 왔다. 부동산 자금 등까지 옮겨온, 일종의 ‘머니 무브(money move)’여서 전열이 유지된다면 이번에는 외국인을 이길 것이란 이유에서다. 지금까지 조짐도 나쁘지 않다. 내 돈으로 길게 투자하기에 쫓길 필요가 없고, 삼성전자 등 가치주를 집중매수했기에 버틸 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틈새가 없을 순 없다. 26조원의 순매수 물량이 다양한 가격대에 진입한 터라, 진입 가격대를 회복하면(소폭 이익이 나면) 대오를 이탈하려는 투자자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두 부류의 동학개미가 있다는 얘기인데, 결국엔 장기투자 개미들이 단기차익투자 개미들을 제치고 최후의 승자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요즘엔 ‘원유개미’가 더 핫하다. 동학개미와는 전혀 다른 종(種)이다. 현물도 아니고, 선물도 아니고, 원유선물 관련 증권에, 그것도 실제가치보다 10배까지 비싼 가격에 베팅하는 게 투자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 변동폭을 2배, 3배로 키우는 인버스(하락에 베팅)·레버리지(상승에 베팅)까지 장착하니, 가히 ‘광풍(狂風)’이라 할 만하다. 원유선물ETN에 앞서 사달이 난 유가·금리DLS·DLF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전문가들은 한국 개인들의 공격적인 파생상품 투자에 혀를 내두른다. 미국 등 해외에선 드문 일이어서다.

동학개미와 원유개미가 이렇듯 엄연히 다른데, 얼마 전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동학개미’를 폄하한 건 의아하다. 윤 원장은 “‘동학개미’는 투기세력의 일종인데, 이름을 너무 좋게 지어줬다”며 “결국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지난해 DLF 사태 때도 “DLF는 일종의 갬블(도박)”이라고 말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동학개미의 이례적 장기투자 행보는 응원받을 일이다. 증권가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고, 일부는 승리를 점친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 수장이 찬물을 끼얹었다. 또 DLF가 도박이라면 감독기관이 제재하거나 시정해야지, 남일 말하듯 낙인만 찍을 일은 아니다. 잘해도 지적받고, 못하니 외면받는, 천덕꾸러기 개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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