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방역 수칙 ‘아프면 쉬기’ 법제화 검토에 직장인들 “현장 모르는 소리”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사거리에서 ‘징검다리 황금연휴’를 마친 시민들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날부터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시행하던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 속 거리두기(생활방역)’로 전환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지난 6일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체계를 ‘생활 속 거리두기(생활방역)’로 전환한 정부가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 등 관련 핵심 수칙의 법제화 등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정부 발표에 “현장을 전혀 모르는 소리” 등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도 근로 문화와 인식의 전환은 물론, 세심한 제도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7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전문 기관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아프면 3~4일 집에서 쉰다’는 정부의 코로나19 생활방역 행동 수칙에 대해 응답자 50%가 ‘무급이어도 쉰다’고 답했다. 그러나 ‘출근한다’와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각각 31.3%, 18.7%나 됐다. 직장인 절반가량이 ‘유급이 아니라면 집에서 쉬기 어렵다’고 응답한 셈이다.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듯 직장인들은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 수칙 법제화 논의 중”이라는 정부 발표에 대해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 될 것”이라며 난색을 보였다.

대기업 내근직 2년차 직장인 A(30) 씨는 “대기업으로 분류된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이런 회사에서도 아프다고 3~4일 쉬는 게 쉽지 않다”며 “3~4일 집에 있기 캠페인을 한다고 해도 그것을 장려할 수 있는 회사가 얼마나 될 것이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직장인들의 생활상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3~4일 자리를 비우면 업무 성과를 못 내게 되고 인사 고과도 달라지는 등 피해가 나한테 돌아와 결국 쉬는 데도 눈치가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타트업 기업 신입사원 B(27) 씨도 “실효성도 없고, 와 닿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쉬려나? 근데 나는 아닐 텐데’라며 가볍게 흘려듣게 되는 정도의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2~3월에 코로나19로 뒤바뀐 일정 탓에 입은 피해를 지금 복구하고 있는데 누가 아프다고 쉴 수 있겠나. 재택근무가 가능한 환경이라면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직장인들은 ‘아프면 집에 3~4일 머물기’가 법제화된다면 강력한 법적 효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8년차 직장인 C(35) 씨는 “아파도 일해야 하는 게 직장인이고 몸 아픈 거보다 지금 물건 나가는 게 우선인 곳이 회사인데, 실효성이 있겠나”라며 “강력한 법제화 수준이 아니라 권고에 그친다면 간이 부은 사람이 아니고선 쉽게 아프다고 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D(30) 씨 역시 “공공기관이다 보니 코로나19 관련한 병가나 연차 등 조치는 자유로운 편이지만, 지금도 야근을 밥먹듯 하는데 실제 가능한 정책일까 의문이 들긴 한다”며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무급으로 쉬라고 하면 쉬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법적인 강제성이라도 있어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정부가 말하는 생활방역 수칙이 도입이 되려면 유급으로 도입돼야 직장인들이 실제로 쉴 수 있다”며 “아울러 휴가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줬을 경우에 대한 처벌도 확실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도 연차 휴가를 못 쓰게 하면 2년 이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지만 처벌을 안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코로나19 감염 위험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고 위험이 남아있는 만큼, 아프면 쉴 수 있다는 문화와 인식의 전환도 정부가 촉진해야 할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최혜인 노무사도 “시작하자마자 이도 저도 아닌 게 들어오면 사문화되다시피 해 이후 논의를 촉발시키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많은 회사가 병가를 규정하고 있긴 하지만 대체로 ‘병가를 줘야 한다’가 아니라 ‘병가를 줄 수 있다’로 규정돼,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인 것처럼 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 문구를 하나하나 손보거나, 아주 낮은 수준일지언정 일단 며칠이라도 유급으로 병가 휴가를 도입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이고 세심한 방향으로 검토해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강립 중앙재난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지난 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생활방역 핵심 수칙 법제화와 관련해 “일부는 법제화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수칙 가운데 사회적 논의와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부분이 아프면 3~4일간 일터에 가지 않는 내용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내용은 정부 내 협의도 필요하고, 정부 내 협의만으로 가능하지 않은 부분으로 이해한다”며 “우선적으로는 정부 내에서 협의를 먼저 진행하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po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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