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기업 도약 삼성…스웨덴 발렌베리家·포드·미쉐린 선진기업경영모델”

[헤럴드경제 천예선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대국민 사과에서 밝힌 ‘4세 경영권 승계 포기’ 선언은 100년 기업 ‘뉴삼성’으로의 도약을 위한 핵심 비전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부회장은 이날 “제 아이들에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않겠다”며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이며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이 부회장의 이같은 대국민 사과는 과거와 확실히 단절하고 미래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1월 삼성전자 50주년을 기념해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100년 기업을 만들기 위해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자”는 비전의 청사진을 내놨다는 분석이다.

재계 1위 삼성그룹의 총수인 이 부회장의 이날 파격 선언은 창업 3~4세로 이어지는 한국 경제계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국내 5대 그룹 가운데 자녀에 경영권 승계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기업은 삼성이 사실상 최초다. 신동빈 ‘데그룹 회장이 2015년 호텔’데 상장을 준비하며 3세 세습경영을 하지 않겠다는 내부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국민 발표와 같은 수준은 아니었다. 현대중공업그룹(정몽준)와 코오롱그룹(이웅열)의 경우도 현재 오너가 대주주로 남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취하고 있지만 자녀들이 계열사에 남아 경영수업을 받고 있어 경영승계 수순으로 읽힌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자녀에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국내 20대 그룹 중 최초일 것”이라며 “이 부회장의 오랜 생각이 이번 대국민 사과에서 공식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이번 사과는 ‘100년 기업’ 삼성의 청사진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 부회장은 ‘소유하지만 지배하지 않는다’는 경영원칙으로 유명한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을 롤모델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발렌베리 가문은 1856년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을 창업한 뒤 160년간 5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온 회사다. 현재 마르쿠스 발렌베리 SEB 회장은 발렌베리 가문의 5대 후계자다.

발렌베리 가문은 ‘가족경영’을 기반으로 하지만 계열사 경영을 능력있는 전문 경영인에게 일임하며 독립경영을 확실하게 보장하고 있다. 지주회사인 ‘인베스터’가 그룹을 지배하고, 인베스터는 발렌베리 가문이 세운 재단이 소유하는 구조다. 이 재단에 자회사들의 경영 수익이 배당으로 지급되고 이는 다시 사회에 환원된다. 발렌베리 가문이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발렌베리그룹은 지주회사인 인베스터AB 아래 통신장비업체 에릭슨,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 중공업 업체 ABB 등 100여개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 시가총액 40% 가량을 차지해 자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삼성과 비슷하다.

삼성과 발렌베리 가문은 2000년대 초반 이건희 회장 때부터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03년 삼성전자와 삼성경제연구소에 발렌베리 그룹의 지배구조와 사회공헌 활동 등의 연구를 직접 지시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이 부회장은 작년 12월 방한한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과 만나 인공지능과 5G 등 미래 핵신 신기술 사업에 대한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이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한다’는 철학으로 4세 경영 승계 포기를 천명하면서 발렌베리 가문 방식 뿐 아니라 포드, 미쉐린, BMW 등 세계 유수의 가족경영 장수 기업들의 승계방식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미쉐린은 1889년 설립 이후 4대째 이어오면서 '미쉐린식' 가족 경영과 매니징 파트너십 경영으로 유명하다. 매니징 파트너에는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모두 오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부회장의 이번 승계 포기 결단이 국내 기업들의 승계 작업에 새로운 논의를 일으키는 신호탄일 될 것을 보고 있다.

이홍 광운대 교수(경영학)는 “부의 세습과 경영 세습은 구분해야 한다”며 “이재용 부회장의 이번 발언은 선진국형 패밀리 비즈니스(가족기업)의 재단 형태 논의를 우리 사회에 증폭시키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경제계가 세대를 거듭할수록 지금 방식으로는 승계에 한계가 있다”며 “재단화 시켜 승계문제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같이하는 통합적인 거버넌스로 정상적인 사회환원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단기 성과에 급급하는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이경묵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전문 경영인이 경영을 하게 되면 한국은 집단 지도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아 큰 변화나 혁신을 하기 쉽지 않다”며 “노사관계로 내부 구성원들의 입김도 강해 전문경영인 체제의 성과가 나쁜 일본처럼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재단이 의결권 행사를 3%밖에 못하게 돼 있다”며 “능력있는 전문경영인은 장기집권 할 수 있도록 재단을 통한 오너가의 임명권 강화 길을 터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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