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급증…한국 패션업계 ‘줄도산’ 공포

서울 명동거리 매장에 진열된 옷들을 구경하고 있는 시민 [연합=헤럴드경제]

국내 중소·중견 패션기업들이 잇달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함에 따라 패션업계에 줄도산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소비심리가 급속히 얼어붙자 매출이 급감하고 보유한 유동성은 계속 말라가 사업 유지가 어려워진 것이다. 올해 2분기 현금 흐름이 악화되는 패션기업이 늘면서 법정관리 신청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5일 서울회생법원에 따르면 성창인터패션은 지난달 17일 법인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이에 법원은 지난달 29일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내린 후 채권·기업가치 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성창인터패션은 1990년 고급 가죽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회사였던 영창실업의 자회사로 출발했다. 2002년 미국 브랜드 앤클라인의 국내 영업권을 승계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2005년 세컨드 브랜드인 AK앤클라인을 출시하며 사업을 확장하는 듯했으나 본사 방침으로 브랜드를 통폐합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됐다. 결국 2017년 여성복 부문을 은산유통에 매각하고 핸드백 사업부문만 남겼다.

성창인터패션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8% 증가한 310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8억8000만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지난해 기준 부채는 239억원에 이른다. 해외 패션 브랜드에 제품을 공급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인 성창인터패션은 해외 의존도가 높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재무구조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라는 악재까지 겹치며 한계에 직면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1위 선글라스 수입업체인 브라이언앤데이비드는 지난 3월 26일 법인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2004년 설립된 브라이언앤데이비드는 톰포드·몽클레르 등 해외 유명 선글라스 브랜드를 국내에 독점으로 들여오는 최대 수입업체로 성장했다. 국내 면세점과 백화점에서 각각 23개, 46개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규모를 키웠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매출이 95% 이상 감소했다. 브라이언앤데이비드는 지난해 매출 456억원, 영업손실 39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패션 산업을 지탱해온 중소·중견 패션기업들의 법정관리 신청은 증가하는 추세다. 해외 패션 브랜드 피에르가르뎅과 핸드백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국내에서 사업을 전개 중인 주영은 지난달 7일 기업회생 절차를 개시했다. 1988년 설립돼 발망·닥스 등 해외 유명 브랜드의 스카프와 머플러를 유통해온 예진상사도 지난 2월 11일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이외에도 모자 제조업체 다다씨앤씨, 여성의류 업체 데코앤이, 골프웨어 전문업체 너트클럽, 비엠글로벌 등이 법인회생 절차를 진행 중이다.

코로나19로 중소·중견 패션기업들의 어려움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전 세계 패션 시장은 제조·유통·판매·소비에 이르는 과정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돼 있어 하나가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붕괴될 수 있는 구조다. 올 들어 북미·유럽 패션기업 80% 이상이 매장을 폐쇄했고, 1분기 글로벌 패션의류기업의 평균 시가총액은 약 40%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OEM 업체는 글로벌 바이어의 주문 취소, 신규 주문 급감, 대금 결제 지연 등으로 유동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적을 발표한 상장 패션기업의 절반 이상이 적자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기업 운영에 필요한 고정비는 계속 나가지만 매출은 절반 이상 급감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는 패션업체들이 늘고 있다”며 “중소·중견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버틴다고 해도 최대 2~4개월”이라고 전망했다. 박로명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