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웃음소리 들리는 듯…추억 속 폐교로 떠나는 ‘시간여행’

‘힘 자랑 하지 말라’는 고흥에 가면, 배를 타나 싶었는데 금방 내리는 작은 부속섬 연홍도가 있다.

50가구 남짓 사는 이 작은 섬에 들어서면 두개의 심장을 가진 축구황제 박지성의 벽화가 그려져 있고, 조금 더 들어가면 박치기 제왕 김일의 역동적인 모습도 그려져 있다. 모두 고흥 태생으로, 우주선 발사대와 함께, 이곳에서 힘 자랑하지 말아야 할 근거가 되는 주인공들이다.

고창 책마을해리 만화학교

선착장을 벗어나기 무섭게 소라 조각, 자전거 하이킹 조형물이 있고, 얕은 고개를 넘으면 폐교된 금산초 연홍분교를 꾸며 2006년 문을 연 연홍미술관이 있다. 교실 두 칸이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고, 아담한 갤러리카페가 들어섰다. 운동장 터는 정크아트 작품으로 채웠다. 전시물은 미술관에 머물지 않고 선착장에서 마을 골목, 포구로 이어지며 섬을 수놓는다.

졸업생에게 폐교의 설움은 한순간. 연홍미술관 같은 곳으로 변신해 있을 때 더 큰 반전매력으로 다가 온다.

한국관광공사는 26일 ‘폐교의 재탄생&추억의 학교 여행’이라는 테마로 6월 추천 가볼 만한 곳을 선정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누리집(korean.visitkorea.or.kr) 내 안전여행 ‘생활 속 거리두기’ 수칙과 여행 경로별 가이드를 미리 숙지하는 것은 이 시국, 필수다.

고흥 연홍도

▶고흥 연홍도 미술관 되다=연홍도 선착장 근처엔 공룡뼈를 연상케하는 철골 조각품이 설치돼 있고, 골목, 골목에는 담장을 캔버스 삼은 그림과 조형물, 마을 사람들이 살아온 세월이 담긴 사진이 여행자를 반긴다. 섬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울긋불긋한 마을 지붕이 푸른 다도해와 닿고, 연홍도둘레길에서는 곰솔 숲, 좀바끝 등 섬의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연홍도는 2015년 전남 ‘가고 싶은 섬’에 선정되고, 2017년 ‘지붕 없는 미술관’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예술의 섬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근 거금도 남단 해안도로는 익금해수욕장, 오천몽돌해변 등 풍광을 제공하고, 노벨평화상 후보 마가렛-마르안느 할머니가 40년 헌신한 소록도가 가깝다.

두타산 중턱에 있는 삼척미로정원

▶삼척미로정원=동해 바다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해발 1353m나 되는 두타산의 5부능선쯤 자락에는 삼척시 미로초등학교 두타분교가 있었다. 지금 이곳은 산중 투명카약 타는 산수 일체형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이름을 들으면 게임 미로(迷路)를 떠올리기 쉽지만, ‘늙지 않는다’는 뜻의 미로(未老)이다. 꽃과 나무 사이로 난 소담한 산책로를 거닐 때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니 미로(未老)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 투명카누 풀장은 운동장 한가운데 만들어져, 졸업생은 감동이고, 여행자는 아주 특별한 레저이다.

인근 천은사는 이승휴가 자주적 사관의 역사책 제왕운기를 탈고한 곳이다. 나라의 제사에 쓰는 두부를 만든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삼척미로정원의 두부 만들기 체험은 특별하고 품격있다. 도계유리나라와 하이원추추파크 또한 삼척 내륙 여행의 명소다. 한국 철도사에 단 하나, 하이원추추파크의 스위치백 체험을 안하면, 삼척 안간것이다.

▶영월 미디어기자박물관=영월 한반도면의 미디어기자박물관은 영월의 28개 박물관 중 가장 색다르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1일 기자 체험’은 아담한 야외 전시장에서 시작된다. 현장 기자들의 보도사진을 전시하는 공간에 때마침 ‘6월 민주항쟁 사진전’이 한창이다.

전시실에서는 현장 기자들의 손때 묻은 전시물을 보고, 헬리캠과 드론 등 최신 장비를 활용해 기자 체험을 할 수 있다. 적지 않은 혹세무민·진실오도 기자들이 반성해야 할 요즘, 참된 기자의 모습을 배운는 것 역시 의미있다.

박물관이 자리 잡은 한반도면은 영월 한반도 지형으로 유명하다. 길쭉하게 튀어나온 숲과 모래톱을 남한강 지류 평창강이 휘감아 도는 모양이다. 청령포, 관풍헌, 장릉 등 단종 관련 유적들까지 둘러보면 아이와 떠나는 역사 기행으로도 손색이 없다.

덕포진교육박물관 교복체험

▶김포 덕포진교육박물관=1996년 김포에 문을 연 덕포진교육박물관은 어릴 적이나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7000여 점이나 되는 전시품이 옛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기억 속에만 남아있던 물건들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게 해준다.

풍금 연주에 동요 함께 부르기, 학창 시절 이야기 나누기, 교복 체험 등으로 추억에 젖고, 아이들과 세대공감을 할 기회를 얻는다.

박물관과 이웃한 김포 덕포진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격전이 벌어진 조선 시대 진영으로, 덕포진을 거쳐 손돌 묘까지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구 김포성당과 솔숲이 아름다운 김포성당,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김포아트빌리지도 가볼 만 한 곳이다.

홍천아트캠프

▶홍천아트캠프=홍천 화상대리 동화마을에 자리한 홍천아트캠프는 폐교된 내촌초등학교 대봉분교를 2012년 10월 리모델링해 숙박·수련 시설로 꾸몄다. 동창회나 동문회, 기업 워크숍 장소 등으로 인기 있으며, 가족 단위 여행객도 알음알음 찾아온다.

이름 덕분에 음악·미술 동호회를 비롯해 예술인이 연주회와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나무판자가 깔린 복도와 내무반처럼 꾸민 숙박 공간에서 40~50대는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고,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인다. 운동장 주변에는 커다란 은행나무와 밤나무가 그때 그 시절을 증명하듯 서 있는데, 얼마 전 종영한 KBS1 드라마 ‘꽃길만 걸어요’의 촬영 무대가 되기도 했다.

홍천아트캠프 건너 마을 앞을 흐르는 내촌천은 여름철엔 다슬기와 메기, 장어, 쏘가리가 많이 잡혀 천렵과 낚시를 하러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수타사산소길 역시 홍천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고창 책마을해리

▶고창 책마을해리= ‘누구나 책, 누구나 도서관’이라는 책마을해리의 모토 답게, 이곳에 가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시인학교, 만화학교, 출판캠프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껏 선보인 책이 100여 권에 달한다. 책 읽기에서 더 나아가 읽고 경험한 것을 글로 쓰고 책으로 펴내는 과정을 체험하는 것이 핵심이다.

책마을해리에서 출간한 책을 구경하고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는 북카페 ‘책방해리’, 금방이라도 톰 소여가 뛰어 내려올 것 같은 느티나무 위 ‘동학평화도서관’, 소규모 공연과 영화제가 열리는 ‘바람언덕’, 책 한 권을 다 읽기 전엔 못 나오는 ‘책감옥’, 마음껏 뒹굴며 책 세계로 빠져드는 ‘버들눈도서관’ 등 다양한 공간들이 있다.

가수 송창식이 30년째 강추하는 고찰 선운사와 고창읍성, 상하농원은 필수코스이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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