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산책] 징고이즘의 부활

배타적 민족주의, 편협한 애국주의를 의미하는 ‘징고이즘(Jingoism)’은 1870년대 러시아의 부상에 대한 영국 등 서구의 반발심리와 경계감을 표현한 노래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리는 싸우지 않길 원하지만 ‘징고(Jingo)’에 의한 것이라면 예외지!”라는 당시 유행한 노래에서 징고는 ‘예수(Jesus)’를 의미했다. 이후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과 언론이 이 말을 사용하면서 다른 민족이나 국가에 대한 경멸과 전쟁을 불사하는 외교 강경론과 맹목적 애국주의를 표현하는 용어가 됐다.

약 150년 전에 등장한 징고이즘이 21세기에 부활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미국과 중국의 무역·경제전쟁으로 고개를 들더니, 올해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전염병 확산과 이로 인한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국제사회는 물론 외교무대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올해 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과 일본·한국 등 아시아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할 당시 많은 동양인이 유럽·미국·호주 등에서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동양인에 대한 혐오와 경멸을 부채질했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곳곳에서 인종차별적 테러에 시달렸다. 최소한 정치·외교적으로 인종차별을 범죄행위로 취급했던 서구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정치적으로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코로나19에 대한 초기 대처가 미흡했다는 내부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화살을 중국으로 돌리면서 갈등이 첨예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노골적 반감을 드러내며 2년여 동안 무역·경제전쟁을 펼쳤다. 이제 중국과의 단교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등 전선을 외교·정치·군사·이념 부문으로까지 무한 확장하며, 한국 등 우호국들에는 동맹 참여를 압박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제조업의 ‘본국회귀(리쇼어링)’ 등 자국 중심의 반세계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모두 징고이즘의 부활을 시사하는 현상들이다. 이런 변화는 단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나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에 의한 일시적 현상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그 근저엔 과잉 생산으로 인한 자본 축적의 한계 등 누적된 자본주의의 모순과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국 패권의 위협 등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잠재돼 있던 불안감이 코로나19 사태와 경제위기를 계기로 노골화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경향이 코로나 이후 뉴노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국수주의와 전체주의가 부상하면서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던 100여년 전 상황과 유사하다. 당시 경제위기에 직면해 각국은 국제 공조를 내팽개치고 각자도생을 위해 보호무역을 강화했고, 그것이 오히려 경제난을 부채질해 세계가 대공황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실업과 경제난에 대한 대중적 공포가 극단적 국수주의인 파시즘을 낳았고, 2차 세계대전으로 치달았던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는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미국 등 국제사회의 리더십은 실종됐다. 오히려 다른 민족이나 국가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확산하고, 일부 정치인은 여기에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거는 양상이다. 코로나19보다 무섭고 위험한 징고이즘이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과거 대공황이나 전쟁의 역사와 교훈을 되짚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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