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애의 스크린에서 삶을 묻다] 다르게 기억되는 과거들 / 프랑스여자

한국에서 개봉한 ‘프랑스여자’가 독립영화로서는 드물게 잔잔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독립영화의 흥행 기준으로 불리는 1만명 관객을 개봉 일주일만에 돌파했다. 6월20일 기준 1만7천270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 6월4일 개봉했으니 전국에서 하루 1천15명 정도가 이 영화를 관람한 셈이다. 코로나 정국에서 독립영화가 건져올린 결과라는 점에서 이 숫자의 의미가 눈물겹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귀때기로 활약한데 이어 ‘부부의 관계’에서 쉴 새 없이 바람을 피던 회계사로 나와 눈도장을 강하게 찍었던 김영민, 전원일기의 영원한 복실이 김지영의 독립영화 출연으로 개봉 전 미디어의 주목을 받은 영향도 있을 듯하다.

프랑스 여자

김희정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영상미는 잔잔하지만 어딘지 미숙한 느낌을 주는데 이것 또한 의도된 듯하다. 미숙하지만 순진하고 열정의 어린 싹이 살아 숨쉬는 듯한 영상들이 장점이다. 아마 이 주제를 세련되게 연출하고 영상을 뽑았다면 아련한 느낌이 없어져 가슴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훨씬 작았을 듯했다.

‘프랑스여자’는 한때 배우를 꿈꿨지만 파리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프랑스인과 결혼해 정착해 살고 있는 미라의 한국 나들이 이야기다. 20년 전 배우의 꿈을 안고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함께 공부했던 옛 동료들을 만나는 간단한 플롯으로 구성돼있다. 

미라는 파리로 연기공부를 떠났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고 연기 대신 동시통역대학원을 다니며 프랑스에서 한국 관련 일을 하며 외국 생활에 정착하게 된다. 꿈을 위해 떠난 유학이지만 어쩐 이유인지 꿈은 이뤄지지 못했고 연기를 갈망하며 아카데미를 다녔던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다고 고백한다. 

미라는 비록 지금은 연기를 하고 있지 않지만 꾸준히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료들과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영화제 참석을 위해 혹은 연출을 위해 파리에 방문하게 되면 이들 동기들은 미라에게 연락해 파리에서 만나면서 꾸준하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미라는 동시통역대학원의 후배와 바람이 난 프랑스인 남편과 이혼을 하고 한국을 찾는다. 프랑스인 남편은 미라를 좋아했던 게 아니라 그저 이국적인 아시안 여성에게 관심이 많았던 걸 알게 된 것이다. 다시 사랑에 빠진 여자가 똑같은 한국 여자, 그것도 미라의 후배다.

프랑스 여자-1충격을 받은 미라는 이혼을 하고 한국을 8년만에 찾게 된다.한국에 오자마자 잘 나가는 여성감독으로 카리스마 작렬중인 영은과 연극계의 연출자로 꾸준히 연극을 제작하고 있는 성우를 만난다. 이들은 아카데미를 함께 다녔던 동료 중 가장 친했던 사이이기도 했다.  

영화는 미라와 영은, 성우, 그리고 2년전 자살한 해란 등 4명의 과거가 교차되면서 서로 다르게 기억되고 잊혀지는 사실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끊임없이 잊혀진 기억 혹은 무의식 속에서 스스로 삭제한 기억을 확인하고 물어보는 미라는 과거에 갇혀 사는 인간형이다. 꿈을 갖고 외국행을 선택했지만 꿈도 생활도 뜻대로 이뤄진 것이 없다.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은 과거의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이들과 해후하면서 위안받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들을 만나고 들어오면 과거의 어느 순간 기억 속으로 홀로 들어가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이 기억들은 꿈일까? 아니면 망상일까? 혹은 사실일까? 미라만의 조각조각 난 기억의 편린들일까? 

영화 속에서는 아무도 미라의 불안정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미라는 타국에서 한국인으로 살다가 프랑스인 남편과 이혼을 하고 나서야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좌절, 현재 이 꿈을 이루고 사는 동료들에 대한 선망을 감추지 않는다. 경계인, 주변인으로 살고 있으나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뜨겁다. 하지만 차분히 나를 다스린다.

프랑스 국적의 한국 여자, 꿈을 이루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살아내야 하는 미라는 삶의 중심에 스스로 빗장을 걸고 주변인으로 살아가며 스스로를 옥죈다. 경계인의 삶을 살아가면서 말이다.

미라가 계속 해란에게 집착하는 것은 해란의 자살이 자신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는 죄의식이 남아 있어서다. 해란과 성우는 서로 사귀는 사이였지만 성우는 원숙한 누나인 미라에게 남모를 연정을 계속 구애중이다.

파리로 떠나기 전 바다를 보고 싶다면서 함께 떠난 여행을 기억하지 못하는 미라와 이를 일깨워주는 성우, 이 두 사람의 연인도 아닌 친구도 아닌 애매한 관계 속에서 홀로 전전긍긍하던 해란은 자해소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정작 해란의 자해는 그 누구에게도 이유가 알려지지 않는다. 다만 감정의 기복과 변덕이 심한 여배우의 기질로 치부된다. 미라만이 자신과 성우가 키스하는 것을 본 해란이 자해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이도 그저 미라만의 추측이다. 미라는 이를 해란에게 확인하고 싶지도 않고 말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개인적인 너무나 개인적인… 그래서 더 프랑스 영화 같은 작품, 영화, ‘프랑스 여자’다.

우리는 누구와 서로 다르게 기억되는 과거들을 갖고 있을까?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떠오르는 옛 기억들이 나를 어지럽힌다.

이명애/자유기고가·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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