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토양서 오너家 과감한 투자…삼성SDI 세계신화 일궜다

①1970년 4월 이병철(왼쪽 두번째) 선대회장과 일본 NEC의 고바야시(오른쪽) 사장이 가천공장 건설현장을 방문한 모습. ②1979년 4월 삼성SDI의 전신 삼성전관공업이 만든 국내 최초 20인치 TV용 컬러브라운관. ③2004년 11월 세계 최대 102인치 PDP 개발. ④삼성SDI 전기차용 배터리. [삼성SDI 제공]

1일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삼성SDI의 반세기는 우리나라 전자 소재·부품 기술 국산화의 역사로 기록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삼성SDI는 브라운관에서 디스플레이, 배터리로 업(業)을 3번이나 전환하면서도 줄곧 글로벌 1위 기업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지난 50년 내내 소재· 부품 국산화에 주력한 끝에 치열한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세계 정상의 입지를 굳건히 할 수 있었다.

그 배경에는 이병철 선대회장부터 3대째 이어지고 있는 삼성 오너가의 과감한 결단과 통찰력이 있었다.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임직원들의 일치단결과 도전 의식도 50년 세계 신화의 공신들이다.

▶이병철 선대회장, 척박한 토양서 소재·부품 씨앗=이병철 선대 회장은 1960년대 중반 전자산업 진출을 준비하면서 ‘소재에서 부품과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완전 국산화를 이뤄 종합 전자회사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세우고 삼성SDI의 전신인 ‘삼성-NEC’ 설립을 주도했다.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완제품을 넘어 부품 및 소재, 장비가 중요하다는 것을 60년 전부터 간파한 것이다.

1970년 일본 NEC와의 합작회사 ‘삼성-NEC주식회사’로 출범한 삼성SDI는 브라운관을 첫 사업을 시작했다. 삼성SDI의 역사 중 40년간 디스플레이 최강자로 자리잡게 된 배경이다. 1984년 컬러브라운관 1000만대 생산체계 구축으로 세계 브라운관 시장을 제패한데 이어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과 액정표시장치(LCD)부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까지 섭렵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이 선대회장이 제2차 오일쇼크 당시 다른 업체들이 투자를 망설일 때 “세계 최대 브라운관 제조사로 도약하기 위해 세계 브라운관 시장의 10%인 연 1000만 대 생산체제를 갖춰라”고 지시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컬러브라운관 수요가 폭증하며 삼성SDI는 1993년 컬러브라운관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이 선대회장은 또 울산과 수원에 수십만 평의 공장부지를 선정했다. 수출을 염두에 두고 부산항과 가까운 울산, 최대 소비시장인 서울에 인접한 수원을 낙점한 것이다. 그는 삼성 비서실을 통해 진공관 마운트를 시작으로 흑백브라운관에 이어 컬러브라운관으로 사업을 확대해 가는 과정에서 도전적인 목표를 제시하면서 경영진을 이끌었다.

▶이건희 회장, ‘안전성’ 혁신으로 업그레이드=삼성SDI는 브라운관 사업으로 시작해 디스플레이를 거쳐 현재는 배터리 기반 에너지와 첨단소재를 영위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 과정에서 1974년 삼성전관공업주식회사로, 1985년에는 삼성전관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했고 1999년부터는 삼성SDI를 사용하고 있다.

창립 이후 매출은 10만배 성장했고 임직원 수는 창립 당시 682명에서 현재 2만7000여명으로 약 40배 늘었다. 지난해에는 창사 이래 최초로 매출 10조원(10조974억원)을 돌파하며 ‘10조 클럽’에 가입했다.

1990년 중후반부터는 배터리를 차세대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삼았다. 삼성SDI는 1994년 그룹내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등에 흩어졌던 배터리 사업의 중추를 맡았다. 배터리는 디스플레이와 연관성이 0에 가까워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SDI의 기술력과 함께 ‘안전성’을 각별히 신경썼다. 배터리 업의 개념은 안전으로 규정하고 배터리의 품질과 안전을 각별히 챙겼다. 삼성SDI 경영진들은 ‘1st Safety, 2nd Safety, 3rd Safety’를 배터리 사업의 경영지침으로 삼았다.

1997년 배터리 개발에 착수한 삼성SDI는 이듬해 IMF 파고를 만났지만 위기일수록 공격투자라는 DNA로 배터리 사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이에 힘입어 배터리 사업을 본격화한 지 10년 만인 2010년 소형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2008년에는 소형 배터리 경쟁력을 기반으로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에 진출했다. 현재는 한국·중국·유럽에 3각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BMW와 폭스바겐을 비롯한 주요 완성차 고객군을 확보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 톱5다.

삼성SDI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넘어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제품 개발을 통해 성장하는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진 소·부·장 육성 의지=소재, 부품, 장비에 대한 육성 의지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거쳐 이재용 부회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배터리를 미래 성장사업으로 낙점하고 각별히 챙기고 있다. 이 부회장은 최근 천안사업장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 부회장과 만나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기술 개발 동향, 삼성SDI의 품질과 기술력을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 이 부회장은 완성차 업체 최고경영진과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수주를 측면 지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용 부회장은 전날에도 반도체 장비 자회사를 찾았다. 그는 “불확실성의 끝을 알 수 없다. 갈 길이 멀다”며 “지치면 안된다. 멈추면 미래가 없다”고 강한 도전의식을 주문했다. 이같은 행보는 소재·부품·장비 분야를 육성해 국내 산업 생태계를 더욱 굳건히 하겠다는 의지로 평가됐다. 천예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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