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 없는 초저물가, 글로벌 현상 치부하기엔 너무 낮다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재난지원금 효과를 뺀 근원물가는 여전히 역대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부터 지속된 초저물가 추세가 코로나 사태로 장기화하는 모양새이다.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라는 평가다.

2일 발표된 '6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식료품·에너지 제외지수(근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0.2% 상승했다. 수입승용차(3.9%), 소파(12.1%), 식탁(10.8%) 등 내구재 물가가 반등한 영향으로 근원물가는 지난 5월(0.1%)보다 0.1%포인트 올랐다.

근원물가의 하락 추세가 고착화되는 모습이다. 지난해 연간 0.7% 오르는 데 그쳤고, 올 들어 1월 0.8%, 2월 0.5%, 3월 0.4%를 기록하다 4~5월엔 0.1%까지 추락했다. 지난 1999년 12월 0.1%의 상승률을 기록한 이후 월 수치로 21년 만에 최저치였다. 6월에는 0.2%로 소폭 올랐지만 여전히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연간으로도 2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1~6월 근원물가의 전년 누계비 상승률은 0.4%에 불과하다. 지난달 25일 한국은행도 예상보다 가파른 하락 추세를 감안해 올해 근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0.7%에서 0.4%로 하향 조정했다. 연간 -0.2%의 근원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던 1999년 이후 가장 낮은 셈이다. IMF 외환위기 수준까지 물가가 떨어진 것은 그만큼 경기가 얼어붙었다는 의미다.

근원물가는 소비자물가에서 국제유가, 농산물 값 등 예측이 어려운 공급 측 요인을 뺀 수치로 수요 측면에서 기조적인 물가 추세를 살펴볼 수 있다. 지난달 전체 물가를 0.0%로 끌어올린 국제유가 반등, 긴급재난지원금 소비에 따른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 등을 제외한 물가 수준인 셈이다.

단순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세계적인 초저물가 현상으로 치부하기엔 우리나라의 근원물가는 지나치게 낮다. 게다가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인 지난해부터 이러한 현상이 시작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1분기 기준 한국보다 근원물가가 낮은 국가는 36개 회원국 중 3개 국가뿐이다. 포르투갈(0.2%), 스위스(0.2%), 이스라엘(0.4%) 등이다. 일본은 한국과 동일한 0.4%를 기록했다.

가장 최신 자료인 5월 물가를 봐도 마찬가지다. 5월 기준 한국의 근원물가(0.1%)는 35개 회원국 중 5번째로 가장 낮았다. 같은 달 전체 소비자물가가 11번째로 낮았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순위다.

앞으로 1년 동안 물가가 얼마나 오를지 예측하는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지난달 기준 전월비 1.6%로 역대 최저치를 이어가고 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면서 수요 압력이 적은 상황"이라며 "핵심 문제는 근원물가가 추세적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근원물가의 장기 추세가 하향 곡선을 그리면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며 "우리는 코로나19 발생 이전에도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고, 장기화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kwater@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