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기업살리기·고용유지 초점…1만원 공약은 좌초

14일 새벽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제9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 결과 브리핑을 취재진이 경청하고 있다. 이날 전원회의는 근로자위원들의 집단 퇴장으로 공익위원들이 낸 안으로 표결에 부쳐졌다. 찬성 9표, 반대 7표로 채택된 내년도 최저임금은 시급 기준 8720원으로 최종 의결됐다. [연합]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8590원)보다 1.5%(130원) 오른 8720원으로 사상 첫 1%대 인상을 기록한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내걸고 집권초기 최저임금 인상 드라이브를 걸었던 문재인 정부가 역설적이게도 1988년 최저임금제 시행 이후 33년만에 역대 최저 인상률을 기록하게 됐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 1만원 공약도 실현이 힘들어졌다.

14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1.5%로 결정된 것은 결국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증가보다 이들의 노동자 고용유지와 기업살리기에 방점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 0.1%,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 0.4%, 근로자 생계비 개선분 1.0% 합산한 공익위원안이 가결된 것으로 사실상 동결에 가까운 인상률을 기록한 만큼 동결 또는 삭감을 주장한 경영계의 손을 들어준 격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고용충격이 지금보다 심했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의 2.7%인상보다 인상폭이 크게 줄어든 수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분석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첫 3개월인 올해 3∼5월 국내 취업자 감소 폭은 87만명으로, IMF 외환위기 첫 3개월인 1998년 1∼3월의 103만명에는 못 미친다. 그러나 최저임금 심의를 주도한 공익위원들은 외환위기 때는 대기업중심의 구조조정으로 정규직이 대량 해고로 내몰렸지만, 코로나19 사태의 고용충격은 최저임금의 영향을 주로 받는 비정규직, 임시·일용직, 특수고용직 등 취약계층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 고용감소가 최저임금 인상 탓이라는 주장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한 영세사업장의 감원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대체로 동의한다. 따라서 코로나 상황속에서 이들 저임금 노동자의 고용유지를 우선 목표로 최저임금 인상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가장 먼저 조정하는 비용이 노동력인데 최저임금이 기대 이상으로 올랐을 경우 초래될 수 있는 노동시장의 일자리 감축 효과가 노동자 생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훨씬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최임위가 최저임금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를 외면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는 줄잡아 수백만 명에 달한다. 최임위에 따르면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와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토대로 추정한 결과, 현재 임금수준이 시급 8720원에 미치지 못해 내년에 임금을 올려야 하는 노동자는 93만~408만명(최저임금 영향률 5.7~19.8%)으로 추산됐다.

이런 가운데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내년에도 확대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1.5% 인상은 사실상 동결 혹은 삭감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2024년까지 단계적으로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 등 산입범위가 확대되면 사용자는 실제 임금을 그만큼 덜 올려주고도 최저임금 위반을 면할 수 있게 된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1.5%에 그침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사실상 좌초됐다. 현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까지 최저 임금 1만원 공약을 달성하려면 내년 심의에서 14.7%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앞으로 최소 1∼2년 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고려하면 내년 심의에서도 높은 인상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최저임금 1만원의 실현은 다음 정부로 넘어가게 됐다. 김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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