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톡스-대웅 ‘승자없는 치킨게임’?…주름살 깊은 K보톡스

보톡스 업계가 깊은 시름에 빠졌다. 국내 첫 보톡스 제품인 ‘메디톡신’은 품목허가 취소라는 벼랑 끝에 몰렸다. 국내 보톡스 제품 중 처음으로 미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고 미국 시장에 진출한 ‘나보타’는 미국 수출에 브레이크가 걸릴 위기에 처했다. 보톡스 업체들에게 악재가 겹치자 업계에서는 전체 보톡스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 “대웅제약, 메디톡스의 영업비밀 침해”=지난 6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진행된 ‘보툴리눔 균주 및 제조기술 도용’ 예비 판결에서 ITC는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 ‘나보타(미국명 주보)’가 관세법을 위반한 불공정경쟁의 결과물이라며 미국 시장에서 10년간 수입을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메디톡스 측에 따르면 ITC는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 공정은 보호되어야 하는 영업 비밀인테 이를 대웅제약이 도용했다는 것이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국내 토양에서 보툴리눔 균주를 발견했다는 대웅제약의 주장은 명백한 거짓임이 입증됐고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을 도용해 나보타를 개발한 것이 진실로 밝혀졌다”며 “영업비밀 도용이 확인된 미국 ITC의 예비판결은 번복된 전례가 흔치 않기 때문에 이번 예비 판결은 최종 결정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메디톡스는 이번 판결 결과를 토대로 ITC 소송 외에 국내에서 진행중인 민사소송 및 형사고소 등으로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균주 및 제조기술 도용에 관한 혐의를 밝힌다는 계획이다.

▶대웅 “납득할 수 없는 결정, 11월 최종 결정에서 뒤집힐 것”=예비판결 결과가 나오자 대웅은 즉각 강하게 반발했다. 예비판결이 나온 6일 대웅은 미 ITC의 예비결정은 자국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한 정책적 판단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ITC 판사의 예비결정은 그 자체로 효력을 가지지 않는 권고사항에 불과하다”며 “메디톡스의 제조기술 도용, 영업비밀 인정은 명백한 오판임이 분명하므로 이 부분을 적극 소명하여 최종판결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웅은 이런 메디톡스의 소송전이 결국 메디톡스에게 아무런 소득이 없으며 나보타의 미국 진출을 막아 미국 기업인 엘러간만 도와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ITC의 예비판결이 최종적으로 번복되는 경우는 많지 않아 나보타의 미국 수출길에 큰 변수가 생겼다. 나보타는 국내 보톡스 제품 중 처음으로 2018년 미국 시장에 진출에 성공했다. 지난 해부터 판매된 나보타는 매 분기 1320만달러(약 153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1년여 만에 미국 내 점유율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ITC의 판결대로 10년간 수입이 금지되면 타격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5년간 이어진 ‘메디톡스-대웅’ 악연…소송 비용으로만 700억원 써=두 기업의 악연은 2015년에 시작됐다. 당시 두바이에서 열린 국제 피부미용 컨퍼런스에서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의 균주가 자사 균주와 동일한 계열이라는 것을 알고 대웅에 염기서열 공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대웅은 자사가 사용하는 균주는 국내에서 발견한 것이라며 공개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메디톡스는 2016년 자사의 균주를 도용했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이어서 민사 소송도 제기했다.

하지만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서 소송은 장기전이 됐다. 그리고 메디톡스는 지난 해 미 ITC에 소송을 제기했다. 메디톡스와 미국 파트너사인 엘러간(현 애브비)은 대웅제약과 미 파트너사인 에볼루스를 미 ITC에 제소하면서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이 담긴 기술문서를 대웅이 부당한 방식으로 취해 나보타를 제조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소송이 길어지고 무대가 미국으로까지 확대되면서 두 기업이 그동안 소송비용으로 지출한 금액은 상당하다. 업계에 따르면 대웅이 약 400억원, 메디톡스가 약 300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메디톡스는 미국에서의 희소식과 달리 국내에서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메디톡스의 메디톡신 3개 제품의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확정했다. 이에 메디톡스는 행정소송으로 대응했지만 지난 9일 법원이 메디톡스의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며 품목허가 취소 효력이 발생했다. 메디톡신의 품목허가 취소가 최종 확정되면 메디톡스는 기업 매출의 40%가 넘는 제품을 잃게 된다.

▶업계 “승자없는 패자만 나오는 것 아니냐”=이처럼 대표적인 두 보톡스 제조사가 각각 큰 위기에 처하면서 업계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 ITC 소송은 예비판결이 최종 판결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예전 애플과 삼성처럼 뒤집힌 사례도 있어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다만 이런 두 기업의 다툼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나보타의 수출이 막히면 가장 이득을 보는건 미국 기업(엘러간)이 될 것”이라며 “결국 승자없는 패자만 생기면 국내 보톡스 업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아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손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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