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시사] 공부해서 남 주기

“판사님, 강의 1분 만에 마감됐어요.”

2020년 6월 10일 10시9분 개인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네이버 ‘채무자회생법 강독’이라는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소속 변호사들로부터 ‘채무자회생법’ 강의 신청을 받았던 모양이다. 신청을 오픈하자 바로 마감이 된 것이다.

서울지방변호사에서 ‘채무자회생법’ 강의를 시작한 지도 벌써 4년째, 강의횟수로는 8회에 접어들었다. 처음 강의를 시작한 것은 사법연수원 제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신임 변호사로서는 전통적인 송무시장에서의 경쟁이 쉽지 않았다. 사법연수원 교수를 마치고 창원을 거쳐 수원에서 파산부장을 하고 있던 참이라 제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채무자회생법을 공부할 것을 권했다. 아직은 도산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도 많지 않아 괜찮은 분야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채무자회생법에 관한 자료가 적고 처음 접하는 제자들이 혼자 공부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쓴 ‘채무자회생법’(법문사)을 기본으로 창원 파산부장 시절 외부 강의용으로 만들었던 PPT를 활용해 강의하기로 했다. 제자들과 새내기 변호사들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에서 무료로 강의하고, 수강생들로부터도 수강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2017년 7월 처음 강의를 개설할 때 강의와 자료집에 대한 수요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수강 신청은 오픈하자마자 마감됐고 자료집도 순식간에 소진되어 추가로 찍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주관하는 채무자회생법 강의는 6개월 정도의 간격을 두고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강의마다 수강 신청에 대한 열기는 식지 않았다. 강의 때마다 수강생들이나 지인들에게 듣는 질문이 있다. “왜 힘들게 만든 자료들을 공개하고 바쁜 일정 쪼개가며 강의를 하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한동일 교수의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한 교수는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에서 공부해서 남 주기에 대해 “저는 어려서부터 학교와 집에서 ‘공부해서 남 주냐?’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하지 못했던 대답을 지금은 자신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공부해서 남을 줘야 하는 시대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더 힘든 것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의 철학이 빈곤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한 공부를 나눌 줄 모르고 사회를 위해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중략)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과 달라야 하는 지점은 배움을 나 혼자 잘 살기 위해 쓰느냐, 나눔으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워서 남 주는’ 그 고귀한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성인이 아닐까요?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인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지식을 나누고 실천할 줄 모르면 지성인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아직 법관으로서 무게를 짊어질 수 있을 만큼 연륜이나 법조인으로서 철학은 부족하지만 한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내가 아는 것을 남에게 나누어준다는 자세를 갖추고, 지식인에서 나아가 지성인이 되려고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지금도 ‘채무자회생법 강독’ 카페나 개인적인 메일로 전국에서 도산 절차 관련 많은 질문이 들어온다. 시간이 촉박한 경우도 있지만, 시간을 내어 연구하고 검토한 후 가급적 신속하게 답을 주고 있다. 경우에 따라 책을 조금 찾아보면 알 수 있는 질문도 있지만, 질문자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것이므로 질문에 답을 해주고 있다.

이를 통해 개인적으로도 많이 배우고 성숙해가고 있다. 저서 ‘채무자회생법’의 내용이 풍부해지고 질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많은 분의 질문을 통해서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도산과 관련된 모든 지식과 정보의 저수지가 되고 있다.

좋은 정보나 아이디어는 공유할수록 그 가치는 커지는 것이다.

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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