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멈춘 젠더시계·확고한 갑을…여의도 2030 보좌진의 국회생활

#.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 보좌진의 추천을 받아 비서로 채용이 된 A씨는 ‘정책 전문가’라는 부푼 꿈을 품고 국회에 입성했다. 입법 활동을 기대하며 밤낮없이 일했지만, 폐쇄적인 국회 분위기에 낙심했다. 지역구 현안을 연구하고 정책을 내놓기보단 의원을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관리만 도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 코로나19가 만든 취업난에 직면한 B씨는 되는대로 이력서를 넣다 보니 의원실의 ‘어쩌다 비서’가 됐다. 하지만 의원실에 손님이 찾아올 때면 매번 “여비서”라고 불린다. 비서중 여성 비율이 더 높다는데 왜 그렇게 불리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꾹 참는다. 다른 보좌관들까지 방에 올 때면 음료나 커피를 부탁해 기분이 나빠져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 사회에선 주52시간 근무제도가 정착되고 있지만, 정작 관련 법을 만든 국회에선 딴 나라 얘기다. 더욱이 막내 비서에겐 언제쯤 실현될지 요원하다. 노동강도가 높기로 유명한 의원실에 근무하는 C씨는 “밥 먹듯이 야근하고 새벽 출근, 주말 출근은 기본”이라고 했다. 그는 “휴가 없는 삶을 이미 받아들였다”며 “고용노동청에 신고하라는 친구의 말에 우리가 노동청을 감독하는 기관인데 노동청에 신고해도 되려나?”라고 반문했다고 말했다.

2800여명의 보좌진이 모여있는 국회 의원회관은 치열한 전쟁터다. 의원회관은 흔히 ‘300개의 작은 회사가 모여있는 곳’으로 칭해진다. 개별 의원실마다 분위기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헤븐팀이 만나본 보좌진들은 입을 모아 “의원실별 경쟁도 살 떨린다”며 “의원실별 계급도를 상중하로 나눈 파일까지 있을 정도”라고 설명한다.

여의도 옆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국회 의원회관은 ‘갑’과 ‘을’이 선명한 곳이었다. 의원실 분위기는 제각각일지 몰라도 막내인 이들에게 국회의 ‘갑을관계’는 그 어떤 곳보다 피부에 와닿았다. 한 비서는 “살면서 겪은 어떤 곳보다 갑질이 심하다”고 꼬집었다. 20·30대 국회 막내비서에겐 2000여명의 갑이 생긴 셈이기 때문이다.

의원실에선 300명의 의원뿐 아닌 각 의원실 보좌진 역시 또 한 명의 ‘갑’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보좌진들의 익명 게시판인 ‘여의도옆 대나무숲’에는 최근에도 수많은 의원과 선임보좌관의 갑질에 대한 울분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탈권위적인 분위기의 의원실은 의원회관 내부에서 ‘신의 직장’으로 화제가 된다.

국회의원 한 명당 의원실에는 9명의 공무원이 채용된다. 4급 보좌관부터 인턴까지 직급과 연봉은 다양하다. 두명의 보좌관과 비서관은 각각 상임위 등을 담당하는 ‘정책’과 그 외 업무를 책임지는 ‘정무’로 나뉜다. 그 밑의 비서 등은 ‘홍보’를 포함한 잡무를 도맡는다.

헤럴드경제 [헤븐]팀은 의원실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보좌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작=권해원 디자이너]
“남들 다 하니까”…국회 입성 필수조건 = SNS 능력

현실을 잘 모르는 의원들은 SNS 관리가 힘들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남이 하면 무조건 따라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영상을 무조건 ‘많이’ 만들어 올리기에만 집중할 뿐 전략 따위는 없다. 한 중진 의원실 비서관 C씨는 “솔직히 비효율적인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신입 보좌진 채용에 SNS관리 능력이 반영된다는 것이다. C씨는 “정책을 할 사람을 뽑는게 아니라 디자인하고 영상편집할 사람만 새로 뽑는다”며 “방송국도 아니고 편집자를 제 값을 주지도 않으면서 뽑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보좌관 채용 공고를 확인해보니 ‘영상 활용자·디자이너 우대’ 조항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잘못된 관행은 이어졌다. 채용 우대 조건이 유행 SNS에 따라 PPT활용 능력 우대에서 카드뉴스 그래픽을 위한 포토샵 능력 우대로, 그 다음은 유튜브 편집 능력으로 진화한 것이다. 보좌진들에 따르면 국회 입성의 유일한 통로인 ‘홍보’ 담당으로 들어온 젊은 보좌진들은 시간이 지나도 애초 꿈꿨던 정책을 다룰 수 없고 ‘제자리 걸음’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다른 중진 의원실 비서인 D씨는 국회의원들은 유튜브를 비롯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트위터, 밴드,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텔레그램까지 운영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의원실 관계자들은 ‘왜 그리 운영을 많이 해야 하냐’는 질문에 입을 모아 “남들 다 하니까”라며 “의원들은 (여러 SNS채널을) 운영하지 않으면 의원을 알릴 기회도 적어지고 도태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제작=권해원 디자이너]
‘국회의 꽃’ 국정조사 기간 보좌진의 피·땀·눈물이…

재선 의원실 보좌진 E씨는 국정조사가 두렵다. 국회의 ‘꽃’이라고 불리는 국정조사는 사실 보좌관들의 피·땀·눈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E씨는 “국정조사만 되면 연극대본을 짜듯이 질의서를 작성하느라 애를 먹는다”며 “의원실마다 분위기가 다른데, 직원들 다 같이 밤을 새는 방, 한 두 명만 남아서 일하는 방 등 여러가지”라고 했다.

그는 “국정조사 질의때 모시는 의원이 카메라 한 번이라도 더 받게 하려고 질의서에 ‘강하게 말씀해주세요’, ‘액센트를 주세요’ 등을 적어놓기도 한다”며 “우리가 의원들을 ‘아바타’라고 부를 정도”라고 했다. E씨는 “물론 주요 키워드만 적어도 알아서 잘 질의하는 의원들도 많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의원은 극소수”라고 덧붙였다.

한 법제사법위원회 의원을 보좌하는 정책 비서관 E씨는 “국정감사의 기본은 언론 동향을 살펴보면서 국민이 관심 가질만한 이슈를 뽑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7시에 출근해 밤 12시 넘어 퇴근한 기억이 있다”며 “현안질의서 작성은 자료를 소관 부서에 요구하는 일부터 PPT를 만드는 세부적인 일까지 하다보면 하루가 모자란다”고 했다.

[제작=권해원 디자이너]

인사청문회도 마찬가지다. 그는 “인사청문회 자체가 새벽 3~4시에 종료된다”면서도 “30~50페이지 분량의 질의서를 의원에게 줘도 인사청문회 내내 정쟁만 진행하느라 질문 한 두개도 못하고 끝날 때가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조국 전 장관 때는 인사청문회만 한 달 넘게 준비했다”며 “보통 주말엔 쉬자는 의미에서 월요일엔 청문회를 하지 않는 것이 관례인데 조 전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모두 월요일에 진행됐던 걸로 기억한다”며 회상했다.

휴가보장 의원실은 ‘꿈의 직장’…워라밸은 어디에

‘여의도 출근·입법공무원’이라는 화려한 겉모습 안에는 ‘깜깜이채용·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꿈꿀 수 없다’는 그림자도 있다.

한 재선 의원실 비서 F씨에 따르면 보좌진 채용에는 기준과 원칙이 없다. 공채 제도가 정착 됐으나 미리 뽑을 사람을 염두에 두고 있는 ‘말로만 공채’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F씨는 “보좌진의 채용과 면직은 의원과 선임보좌관이 사실상 전권을 행사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국회 보좌진들이 수북이 쌓인 서류를 읽으며 업무를 보고 있다. 그들에게 워라밸은 먼나라 얘기다. [헤럴드경제DB]

워라밸 역시 여의도에선 환상과 다름없다. F씨는 “정기 연차가 있는지 최근에 알았다”며 “지난 1년 간 휴가를 딱 3일 갔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휴가는 완전 의원 재량이라 연차를 보장 받아 쓰는 의원실은 거의 없다. 유일하게 휴가를 보장해주는 한 중진 의원실은 보좌진들 사이에선 ‘꿈의 직장’이라 불린다”고 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회 의원실의 부당한 제도, 갑질 등은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해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운영위에서 이같은 사안이 실제로 논의 된 적은 없다. 물론 각 정당의 ‘보좌진협의회’도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평가받는다. 운영위에서 국회 의원실 제도 개선을 꺼내드는 순간 동료인 국회의원을 저격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F씨는 “매번 보좌진협의회 회장을 선출할 때가 되면 ‘워라밸 보장·휴가 보장’ 등이 선거 공약으로 등장하지만 단 한 번도 해결된 적 없다고 들었다”라며 쓴웃음을 보였다.

“女직원과 눈 맞을까봐 전원 男보좌진으로 짜려했다”고?
한 국회 여성 보좌관이 출근하는 모습. [헤럴드경제DB]

잔존하는 ‘남성 중심 국회 문화’도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사실상 4년마다 구조조정이 일어나는 의원실에 여성이 출산·육아 휴직을 갖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초선 의원실 비서 G씨는 “한 중년 남성 보좌관은 여성 직원들만 보면 이른바 ‘작업을 걸며 집적거리는’ 사람이 있었다”며 “여성 직원을 동료로 보기보다는 작업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듯했다”고 말했다.

다른 초선 의원실의 비서 H씨는 “어떤 의원실은 보좌진 9명 중 8명이 남성”이라며 “원래는 전체를 남성으로 구성하려다 보여주기 식으로 막내 비서 한 명만 여성으로 뽑았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애초에 보좌진 전체를 남성으로 채용하려던 이유도 젊은 남녀 보좌진이 한 장소에 있으면 서로 눈이 맞을 수도 있다는 이유라 황당했다”고 말했다.

H씨는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는 “비서 비율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며 “그만큼 육아휴직 등을 쓰게 되면 여성 보좌진은 설 자리를 잃는다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제작=권해원 디자이너]

실제로 국회 내 페미니스트 단체 ‘국회페미’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8월 1일 기준 여성 9급 비서 비율은 63.3%에 달하지만 4급 보좌관은 8.6%에 불과하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남성 중심 사회가 더욱 공고한 것이다.

H씨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이에 따라 법안을 만들어내는 국회가 이렇게 보수적일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탄했다. ‘차별금지법’ 등을 발의하고 추진하면서 정작 본인들의 ‘젠더 시계’는 멈춰있다는 지적이다.

300개의 독립회사 모여있는 곳…이제 바꿔야

이런 상황에 대해 원내·외에선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 내부에선 중앙당·의원회관 차원의 자정적 노력을 요구했다. 한 보좌진협의회 출신 중진 의원실 보좌관 I씨는 “300개의 독립적인 회사가 모인 의원회관에 누군가 나서서 확고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관행적으로 연가를 신청 안하고 쓰는 식의 ‘깜깜이 연차사용’ 분위기를 없애고 연가를 신청하고 소비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각방 국회의원을 비롯한 중앙당, 원내 쪽에서 목소리가 나오고 그것이 국회 차원의 개선으로 이어져야 바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회 직원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안타까운 시선도 있었다. ‘직장갑질 119’에서 활동하는 최혜인 노무사는 “52시간제가 도입되며 오히려 대기업의 인사노무관리는 빠르게 정착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오히려 공공기관에서는 보수적이라는 특징 때문에 정작 내부를 돌보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 듯하다”며 “내부 실태조사부터 진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권력이 집중되는 곳인 만큼 실태 파악은 익명을 보장하는 식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헤븐〉 헤럴드 오븐: 헤럴드 젊은 기자들이 굽는 따끈따끈한 2030 이슈

김용재·홍승희 기자/heav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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