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피해’ 쏟아지는데…여가부는 ‘뒷북성명’ 인권위는 ‘아직 침묵’

[헤럴드경제=박병국·신주희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에 나설 주체로 떠올랐지만, 사건 발생 일주일이 되도록 침묵을 이어 가고 있다. 여성가족부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쏟아질 동안 상부 기관 눈치만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나서야 뒤늦게 입장을 밝혔다. 경찰이 피고소인 사망에 따라 고소 사건을 종결시킨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다, 추행 의혹 피해자 측의 폭로로 수사 사건 유출 의혹까지 받고 있어 인권위가 ‘진상조사’를 진행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인권위는 박 시장이 지난 10일 숨진 채 발견된 뒤 극단적 선택의 이유로 ‘여비서 성추행 의혹’이 지목된 이후 피해자에게 쏟아진 2차 피해에도 15일 오전 현재까지 어떠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간 피해자 신상을 털려는 시도가 공공연히 이어졌으며, 특히 지난 13일 피해자 측 변호인 기자회견 후에는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폭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인권위 관계자는 직권 조사 여부나 관련 진정서가 접수됐는지를 묻는 헤럴드경제 질문에 “이제 진정 접수된 건이라 그 이상 말을 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알려 왔다. 하지만 인권위는 진정이 접수되지 않아도, ‘직권조사’를 통해 진상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 진정 사건은 ‘피해자의 동의’을 받아야 되는 절차가 필요하지만, 직권조사는 이 같은 조사가 필요없다.

인권위는 최근 ‘최숙현 사건’이 불거진 후, 인권위의 제도 개선 권고가 빨랐다면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서야 사과 내용이 포함된 입장문을 발표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체육계 성폭력 사건을 권고하기로 의결해 놓고, 7개월 동안 정작 권고문을 발표하지 않아 뭇매를 맞았다.

인권위가 정부 기관 내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 의혹 상황을 보고서도 어떤 입장을 내놓지 않는 것은 성폭력·성폭력 피해자 관련 주무 부처인 여가부의 행보와도 비슷하다. 서둘려 연대 성명을 내고 지지 의사를 표현한 여성단체와는 달리 여가부는 피해자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비판 여론이 거세진 지난 14일 오후에서야 입장문 형태의 보도자료를 통해 “고소인이 겪고 있을 정신적 충격과 어려움에 공감하며 안전한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면서 “피해자 보호 원칙 등에 따라 필요한 대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현재 성추행 의혹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할 주체로 부각되는 상황이다. 피고소인이 사망하면 사건이 종결되는 경찰의 수사와는 달리 인권위 조사는 피고소인의 사망 여부와는 관계없이 조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에는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은 박 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인권위에 진정서를 넣기도 했다. 권민식 사준모 대표는 통화에서 “형사 절차는 공소권 종결로 끝나는 상황”이라며 “국가 기관에서 인권 침해가 있었는지에 대한 여부를 인권위가 가려줄 것으로 보고 진정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피해자 측이 “고소와 동시에 피고소인(박 시장)에게 수사 상황이 전달됐다”고 주장하면서, 경찰은 ‘수사 상황’ 유출 의혹 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청과 서울지방경찰청도 진상 조사는 물론, 수사상황 유출과 관련한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활빈단은 지난 14일 박 시장에게 고소사실을 알리거나 흘렸다는 의혹을 받는 청와대와 그 관계자, 경찰청 등을 공무상비밀누설죄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다만 인권위의 직권조사 형태도 소극적일 수 박에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인권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권위 전직 고위 관계자는 “성추행 사건을 인권위에 진정을 해도 형사 사건과 마찬가지로 피의자를 조사하지 못한다”며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피해자 말을 듣고 ‘성추행’을 당했다고 결론을 낼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직권조사를 하든, 진정에 의한 조사를 하든 2차가해에 대한 조사 수준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이날 “(박 시장의 휴대전화에 대한)포렌식 수사와 더불어 고인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 확인을 위한 통신영장 신청 등 과정도 동시에 진행 중”이라면서도 “포렌식과 통신 수사는 변사 사건과 관련된 내용으로만 한정해 진행할 예정이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국민 10명 중 6명가량은 해당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음이 여론조사로 드러났다. 고소인 측의 기자회견 다음 날인 지난 14일 리얼미터가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4.4%는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조사가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29.1%, ‘잘 모른다’는 6.5%였다.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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