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칫둠칫 ‘범내려온다’…낯선 수궁가 한번 접하면 ‘1일 1범’

이날치는 지금 가장 ‘힙’한 밴드로 꼽힌다. 등장과 동시에 주목받은 이 밴드는 판소리 ‘수궁가’를 네 명의 소리꾼(안이호 권송희 이나래 신유진), 두 명의 베이스(장영규 정중엽), 한명의 드럼(이철희)으로 선보이며 전에 없던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지난달 발매한 첫 정규앨범 타이틀곡 ‘범 내려온다’는 ‘1일 1범’신드롬의 주역이면서 강력한 중독성으로 ‘수능 금지곡’으로까지 꼽히고 있다. [매니지먼트 잔파 제공]

‘두둥 둥 두둥, 두둥 둥 두둥’ 4분의 4박자의 베이스와 드럼이 리듬을 타면, 객석에선 어깨가 들썩거린다. “범 내려온다 / 범이 내려온다 / 송림 깊은 골로 / 한 짐생이 내려온다”(이날치 ‘범내려온다’ 中) 첫 소절의 시작. 무대는 얼굴색이 달라진다.

소리꾼 이나래 권송희 신유진은 마치 토끼 간을 찾아 뭍으로 올라온 별주부를 집어삼키려는 범처럼 관객과 대치한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 때쯤 무대 양옆으로 춤꾼(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들이 등장한다. 힙합인지 솔인지, 디스코인지 스윙인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궁가’의 그루브는 춤추기에 제격이다. 댄스팀의 몸짓은 태초에 하나였던 것처럼 ‘착붙 (착 달라붙듯이 잘 어울린다’는 의미의 신조어)’이다. 전에 없던 무대에 유튜브는 뒤집혔다. Z세대는 기어이 무장해제. 이 기이한 밴드는 무대를 완전히 ‘씹어 먹었다’. ‘수궁가’의 해석과 영문 번역이 공유되니 ‘진짜 K팝은 여기 있었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 번 보면 멈출 수 없는 중독성에 바야흐로 ‘1일 1범’ 시대가 열렸다.

이날치는 등장과 동시에 주목받았다. ‘조선의 아이돌’이라는 수사를 달고 다닌 ‘씽씽’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주역들과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가로 활약해온 멤버들이 이날치로 외피를 바꿔 새로운 판을 벌였다. 영화 ‘곡성’, ‘부산행’, ‘암살’의 음악을 맡았던 영화 음악감독이자 어어부 프로젝트의 장영규를 중심으로 씽씽의 전 멤버 이철희(드럼), 장기하와 얼굴들 출신의 정중엽(베이스)와 안이호 권송희 이나래 신유진 등 네 명의 소리꾼이 뭉쳤다.

2018년 음악극 ‘드라곤킹’은 이들의 첫 만남이었다. “씽씽 활동이 끝나고 영규 형이 재밌는 거 한 번 해보자고 했어요.”(이철희) “처음엔 밴드 이름도 없었어요. 소리꾼들과 두 개의 베이스, 드럼이 모여 공연이나 한 번 해볼까 했던 것이 지금까지 온 거죠.”(정중엽) “그런데 클럽 공연한 날에 현대카드 언더 스테이지에서 콘서트 제의가 온 거예요.” (권송희)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팀을 만들었죠. 야, 빨리 이름 만들어 했던 거예요(웃음)”(이나래) “중엽이 오빠가 그랬어요. 아직 입학도 안 했는데 주목받는 느낌이라고.”(권송희)

지난달 첫 정규 앨범 ‘수궁가’를 발매하기까지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날치는 스스로를 ‘얼터너티브 팝 밴드’라고 부른다. 판소리와 베이스, 드럼이 어우러진 결과, 독특하고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탄생했다. “화성이 진행되면서 소리의 선율에 맞춰 가는 음악은 지금까지 너무 많이 해왔기에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어요. 판소리는 고수 한 명과 소리꾼이 있고 장단과 리듬으로 가는 음악이에요. 두 대의 베이스와 드럼이 고수 역할을 하며 리듬을 만들고, 화성에 갇히지 않고 각자의 길을 잘 가면 새로운 조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장영규) 밑바탕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수궁가’가 자리 잡았다. “춤을 출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 이날치 멤버들의 설명이다.

저마다의 분야에서 전문가였던 일곱 멤버가 모이니 앨범 작업 과정은 순조로웠다. 이나래는 “각자 해왔던 것들이 있어서인지 새로운 것을 만났을 때에도 쉽게 휩쓸리지 않고 내 것을 가지면서 조화로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물론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본에 충실하되, 가장 중심이 되는 가치를 해치지 않기 위한 과정이었다. 이철희는 “여럿이 모여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며 “판소리를 해치지 않으면서 음악이 잘 어우러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노고는 적지 않았다. “7~8분을 한 리듬으로만 끌고 가는데 잠시만 방심하면 리듬이 흐트러져요. 가장 심플한 리듬인데 연주는 너무 힘들죠.”(이철희) “서양 음계를 쓰면 튀는 느낌이 들어 점점 음을 안 쓰고 절제를 하게 돼요. ‘약성가’는 딱 세 음으로 하는데 그 연주가 쉽지 않아요.”(정중엽) “판소리와 밴드의 박자가 달라요. 밴드는 4분의 4박자이고 소리꾼들이 전통적으로 해오던 박자가 아니다 보니 새로운 그루브를 만들어가는 데에 오래 걸렸어요.” (이나래)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는 애초 느린 곡인데, 꾸밈음까지 소화하다 보니 2배속으로 돌린 듯 속사포처럼 빠른 랩 한마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너무 빨라 입이 안 돌아갈 때도 있어요.(웃음)”(이나래·권송희)

개개인의 색깔이 묻어나면서도 무대 위에선 하나로 조화를 만들어낸 이날치의 음악은 특별한 정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스피커를 터뜨리는 소리꾼들의 폭발적인 성량”, “보편화되지 않은 악기 구성”이 만들어낸 음악은 다양성으로 존재한다. 10·20대에게 이날치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일 뿐 전통에서 파생한 한 갈래도 아니다. 그저 지금 가장 ‘힙’한 밴드로 존재할 따름이다.

“이날치를 카테고리에 가두지 않고 음악 자체로만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희 음악은 국악도 아니고, 국악의 현대화나 대중화, 세계화를 위한 음악도 아니에요. 크로스오버도 아니고요. 그저 음악 자체로만 편견 없이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이날치)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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