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현대음악’ 어깨에 올라타다

이희문, 장영규, 추다혜가 활동한 민요 록밴드 씽씽은 ‘조선의 아이돌’로 불리며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을 결합한 새로운 장르의 음악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다. 현재는 해체했다. [이희문컴퍼니 제공] [이희문컴퍼니 제공]

‘전통’이라는 단어에는 으레 고정관념이 따라다닌다. 낡고 오래된 것, 보존해야 하는 것. 요즘의 전통은 놀랍도록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판소리는 팝으로 태어났고(이날치), 잡가는 재즈(한국남자)와 만났다. 군례악은 랩(방탄소년단 슈가)에 녹아들었다. 박물관에 전시될 법한 음악들이 발칙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음악의 문법은 깨졌고, 전통은 ‘힙’해졌다.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의 만남이 심심치 않게 늘고 있다.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의 만남이 심심치 않게 늘고 있다. 가수 이선희는 최근 발매한 16집 앨범의 동명의 타이틀곡 ‘안부’에 북과 거문고 등을 사용했다. 방탄소년단 슈가는 ‘어거스트 디(Agust D)’라는 활동명으로 지난 5월 공개한 믹스테이프 ‘D-2’ 타이틀곡 ‘대취타’를 통해 군례악을 소개하며 전 세계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장르의 융복합은 밴드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국악이 주전공인 음악인들과 대중음악인이 만나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미국 공영방송 라디오 NPR ‘타이니 데스크’에 한국 뮤지션 최초로 출연해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은 민요 록밴드 씽씽의 등장과 해체 이후 이날치, 악단광칠, 이희문과 프렐류드, 추다혜차지스 등의 밴드가 최근 눈에 띄고 있다. 씽씽에서 함께 활동했던 어어부프로젝트 출신의 장영규와 정통 소리꾼 이희문, 추자혜가 각자의 길을 걸으며 서로 다른 음악색으로 존재감을 발하는 중이다. 소리꾼 이자람은 전통을 분해하고 재해석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이날치는 지금 가장 ‘힙’한 밴드로 꼽힌다. 등장과 동시에 주목받은 이 밴드는 판소리 ‘수궁가’를 네 명의 소리꾼(안이호 권송희 이나래 신유진), 두 명의 베이스(장영규 정중엽), 하명의 드럼(이철희)으로 선보이며 전에 없던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매니지먼트 잔파 제공]

전통음악의 변화가 시작된 것은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다. 송현민 음악평론가는 “1980년대부터 국악과 대중음악의 만남이 있었다”며 “민중음악에 국악이 소재로 활용되면서 국악가요가 나온 것을 시작으로 각종 지원사업이 추진되며 국악과 대중음악의 만남이 활발해지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소영 음악평론가도 “1990년대부터 홍대 앞 인디신에서 황신혜밴드, 어어부프로젝트처럼 국악의 정서를 받아들이며 수용하는 문화가 간헐적으로 지속됐다”며 “물밑에서 오랜 작업이 이뤄진 것들이 자생적인 대중문화의 힘과 정서를 수혈받아 국악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 간의 결합으로 나타났다”고 봤다.

눈에 띄는 활약은 2000년에 접어들어 나타났다. 송 평론가는 “인터넷 문화가 발전하며 국내에 월드뮤직이라는 개념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사람들도 다양한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감수성이 바뀌게 됐다”며 “특히 자국의 전통음악을 현대화하는 작업은 비단 우리나라만 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며 2000년 이후 더욱 활발한 활동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고래야 [플랑크톤뮤직 제공]

2010년 데뷔한 고래야도 전통음악에 대중음악을 접목한 밴드로 주목받았다. 전통 국악기인 대금, 거문고와 퍼커션, 기타와 같은 서양 악기에 보컬이 얹어진 고래야는 그간 월드뮤직 밴드로 불리고 있다. 이러한 정체성으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고, 최근엔 씽씽에 이어 ‘타이니 데스크’에 출연해 주목받았다. 고래야의 리더 안상욱은 “2010년 정도만 해도 퓨전국악을 하는 팀은 그리 많지 않았다”며 “음악계의 지속적인 시도와 이를 장려하는 정책으로 10년 이상에 걸쳐 꽃을 피우며 현재와 같이 다양한 분야의 음악인들이 의미있는 결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주목받는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이 어우러진 밴드(앙상블)의 음악에선 중요한 공통점이 눈에 띈다. 이 평론가는 “가장 큰 특징은 원형이 잘 살아났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타 퓨전은 국악기를 쓰지만, 가락은 서양음악을 쓰는 반면 판소리나 민요를 부르며 변형하지 않고 대중음악과 결합하니 더 새롭고 이국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슈가의 ‘대취타’도 마찬가지다. 군례악 ‘대취타’를 고스란히 가져오면서 지금의 감각과 리듬을 입은 랩으로 다시 태어난 이 곡은 “과거와 현재의 색다른 시너지를 낸”(이소영 평론가) 사례다. 고래야 멤버 김초롱(퍼커션) 역시 “음악을 만들 때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한국의 전통 장단을 변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치 멤버 이철희(드럼)도 “판소리를 해치지 않으면서 음악이 잘 어우러지도록 작업한다”고 했다.

이희문 [이희문 컴퍼니 제공]

밴드의 전면에서 관객과 만나는 보컬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송 평론가는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국악에서 나온 앙상블에 스타적 퍼포먼스를 지닌 프론트 보컬이 없었는데 현재는 대중에게 간판스타 역할을 하는 프론트 보컬이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씽씽의 이희문, 이날치의 네 명의 소리꾼(안이호 권송희 이나래 신유진)은 대표적 사례다. 2016년 판소리 ‘춘향가’를 접목한 앨범을 발표한 두번째달은 당시 국립창극단의 김준수와 현재 ‘팬텀싱어’로 인기가 높아진 고영열을 일찌감치 영입해 호흡을 맞췄다. 송 평론가는 “보컬 중심의 앙상블이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데에 큰 역할을 하는 만큼 향후에도 프론트 보컬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봤다.

퓨전국악이나 국악과 타장르의 만남은 꾸준히 시도됐어도, 그간 대중의 관심은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씽씽이나 이날치와 같은 밴드의 성취는 ‘대중의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송 평론가는 “이전과 달리 현재의 음악신은 굉장히 다양화·다분화 돼있고, 관객의 다양성이 성장한 시대”라고 말했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월드뮤직’ 감수성을 지닌 시대로 진입”하며, “세상에 없는 새로운 음악을 찾는 다양한 취향을 가진 마니아들이 나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정 가수나 장르로만 편향된 것이 아니라 어떤 새로운 음악에도 귀를 여는 ‘준비된 대중’은 대중음악계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밑거름이 된다. 송 평론가는 “음악의 변화와 대중의 정서, 양 박자가 맞지 않으면 어긋나지만 지금은 음악과 대중의 변화가 함께 하면서 시너지를 냈다”고 말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국악의 변화를 시도한 이 음악들은 ‘전통’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전통음악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색다른 장르의 음악도 시작됐다. 송 평론가는 “국악계의 다양한 인물들이 인디밴드로 진입하거나 국악계가 인디 뮤지션을 영입하고, 국악을 중심으로 한 다른 장르가 생겨나는 것은 앞으로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음악들이 지속가능성을 가지기 위해선 보다 많은 시도가 필요하다. 이 평론가는 “수요가 발생하고 문화 생태계 서식지에 뿌리내리려면 종이 번식해야 한다”며 “반짝이는 한 두 팀의 인기로는 갈 길이 멀다. 시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더 많은 팀이 등장해 다양성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날치와 같은 밴드의 최근 인기는 전통의 코어를 잘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며 “전통을 잃어버리면 결국 타장르에서도 전통음악을 찾을 이유가 없다. 전통의 중요성을 지키고 보존하면서 퓨전은 퓨전대로 존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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